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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May 16. 2024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너는 네가 엘리트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의 의미는?


글쓰기를 좋아하며 2017년에 내게 비트코인을 사라고 추천해 주었던 고시생 K가 있었다. 그는 정말 정말 똑똑했다. 누가 봐도 동네 신동 st. 말도 어쩜 저렇게 똑 부러지게 잘하고 아는 것도 많은지 신기했지만 나는 비트코인을 사지 않았더랬다. 진주에서 면접 준비하겠다고 부랴부랴 입성한 고시촌에서 공부 이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 년여쯤 지나고 평창올림픽에서 시보를 할 때 거의 모든 단톡방에서 지인들은 가자! 가즈아를 외쳤다. 나도 돈을 복사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안되더라도 체험은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뒤늦게 코인에 올라탔을 땐 막차였다. 나는 파견수당을 모아 모아 100만 원 정도 넣어보았고 그것은 매우 빠른 시일 내 50만 원이 되었다. 나는 50만 원을 인출해서 로봇청소기를 샀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청소기를 잘 안 써서 엄마에게 드렸다. 원래는 100만 원만큼 효도했을 텐데 절반으로 줄어서 왠지 엄마에게 미안했다. 인출하지 않고 남아있던 아주 적은 금액은 잊고 살았다. 최근 친구가 코인이 많이 올랐다고 좀 벌었다고 자랑을 하길래 단출한 빗썸지갑을 열어보니 900% 올랐더라. 원금은 50원이고 500원이 되어있었던가? 아프다. 50만 원을 남겨두었어야 하는데. 500원이 다시 900%가 오를까? 세상이 요지경이라 모를 일이다. 귀인을 알아보지 못한 맛은 내 몫이다.




  당시에 나는 별 뜻 없이 모두가 행정고시, 기술고시라고 하니까 고시 준비, 고시 공부, 고시생, 고시출신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썼다. 고시생 K는 물었다. 




  "너는 고시를 공부하고 있니?"




  그의 말의 취지는 우리는 5급 공채 기술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시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는 권위를 경계해야 된다는 의미였다.




  그렇다. 왜 5급 공채만을 고시라고 부르냐. 7급 공채와 9급 공채, 또 다른 경채들도 많이 있고 다 똑같이 시험을 본다. 어떤 면에서 7급 공채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잘 모르지만 영어도 보고 국어도 봤던가. 과목들이 내겐 영 익숙하지 않다. 기술직들은 또 좀 다르겠지만 어느 날 다른 직급의 공채 수산직 교재를 봤을 때 문제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으로 수산 관련 분야의 대학을 나오고 공부를 하신 분들이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객관식 문제들은 5급 공채를 준비하며 봤던 서술형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공부하던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지만 서술형은 정해진 한 가지 답이 없으니까 쓰다 보면 답이 나오기도 하고 부분 점수도 있다.





  "우리가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당시의 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면서 수의대의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사회에서는 다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려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사용된 용어인 엘리트는 긍정적인 의미였다.




  똑똑한 우리 딸로 자랐으나 사실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많았고, 그들 너머에는 또 다른 세상도 있었다. 펜대를 굴려 먹고사는 것은 농사짓던 조부모님과 자영업을 하던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착취의 의미를 내포하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화이트칼라로서 직장을 구하고,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서류를 만드는 일들은 종이로 만든 견고한 성을 짓는 것과 같아서 뼈대에 종이를 덧바르고 덧바르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이호랑이는 크고 무서워서 개인이 그와 싸우려면 많은 시간과 피로를 담보해야 한다. 하지만 체계가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면 화이트칼라의 일들은 한순간에 힘을 잃는다. 




  종이를 다루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엘리트로 인식되는 그룹들은 그룹 전체를 지키기 위한 룰을 만들고 집단행동으로 실력행사를 하기도 한다. 비단 엘리트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 공동체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나는 어떨까. 나의 사회성은 어디를 향했을까? 나의 '공채'동기들과의 저녁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배타적이었을까? 내 자아가 너무 비대한 것은 아닐까? 어린놈의 공무원이 지역에 갔을 때 동네에서 방귀 좀 뀌는 어르신들이 나오는 게 맞을까? 




  공무원 조직은 너무나도 잘 조직화되어 있다. 조직은 사람이 굴리는 게 아니고 시스템이 굴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규칙이 존재한다. 고래사무관이라는 글을 썼지만 정부부처에는 가로등 사무관도 있고, 전기킥보드 사무관, 과거사 사무관, 나무의사 사무관, 심지어 분뇨 사무관도 있다. 이는 하는 일이 똥 같아서가 아니라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결국 규칙 위에서 규칙을 다듬어가며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그 규칙들을 바꾸거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할 때면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 시스템은 결국 일을 집단지성이 고민하게 한다.



  

  내 의견은 그렇다. 조직이 갖는 의미는 하나가 되어서 한 가지 일을 위해서 모두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만큼 많은 질문들과 의견을 종합해서 가는 것이 아닐까? 공무원 조직은 엘리트 집단이 아니어야 한다. 비록 상명하복이라는 '윗사람이' 조직을 굴리기에 편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지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시간이 가고 Generation 알파가 오는 이 시대에 조직 문화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의식하고 맞는 변화와 의식하지 못한 채 맞는 변화는 크게 다를 것이다. 새로 입사한 쟤는 왜 저래? 요즘 애들은 다 저래?라는 질문을 끊어내지 못하는 당신! 아마도 시간이 가면 저 선배는 왜 저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나도 '누가 시켰다, ' '누구의 지시사항이다.'라는 지시에는 되는 방법을 찾는다. 대부분 조직 내에서 윗사람이 시키는 일들은 미적거리지 말고 결과를 내라는 것인데, '하기 싫습니다.' 또는 '안될 것 같습니다.'는 K-공무원ly non acceptable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다. 걸림돌을 해결하는데 영원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할 수 없다). 하지만 의견을 조회하기 위한 회의라도 해보겠다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질문해야 하고 걸림돌이 정확히 뭔지, 일을 벌였을 때 비록 지금은 잠깐 뽀대 나는 정책으로 보일지라도 당신의 후임자는 어떤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윗사람에게 꼭 알려줘야 한다. 이상한걸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 건 때로는 미덕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지시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개똥철학 (?) 개똥생각 (?) 을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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