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나오면 꼭 하루는 새벽에 편지를 읽어요.
고등학교 때 전원 기숙사 학교에서 생활하며, 그때부터 편지를 익히 주고받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중간고사를 앞두고, 혹은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각종 기념일에 짧은 포스트잇 메모로 시작해서 생일날이나 수능을 백일 앞두고 각종 봉투에 빼곡히 적어둔 편지까지! 각종 텍스트를 자습실 책상에 올려두고 수줍게 도망가는 귀여운 문화가 있었답니다. 때론 작은 오해로 시작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편지를 쓰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애들은 두루두루 잘 지내다가도 자주 싸우고 서로를 따돌렸죠.
부대에 와서도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이때 받은 편지는 애틋하고 감사해요. 훈련소 때는 텍스트가 그렇게 간절했어요. 교관이 책도 못 읽게 했거든요. 그 짧은 다섯 줄짜리 문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시라도 한편 함께 보내주면 편지 종이를 오려 군복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침대에 누워 계속 웅얼거리며 외웠죠. 텍스트가 정말 잘 읽히고 소화도 잘 되었어요. 각각 다 다른 사람이 보내준 그 시 3편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요.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일할 때에는 편집자분의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이때의 편지를 읽다 보면 “아… 작가 되지 않더라도 글을 잘 배워둬야겠구나! 식상하지 않는 따뜻한 문장을 쓰는 건 필요한 재능이구나.”라고 생각했죠. 힘을 줘서 꾹꾹 눌러쓴 편지의 힘을 늘 체감하고 있지만 이것은 꽤 오랜 시간 구태여 상기하지 않으면 자주 까먹고 그래요.
편지를 꽤 많이 모아뒀어요. 부대와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받고, 가끔씩 지나간 애인과 가까운 사람들, 가르쳤던 학생들과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들께 받은 편지들. 또 의외의 인물들에게 받은 한 장 한 장이 너무 소중하더군요. 막상 써 놓고 못 부친 편지도 많아요. 미안한 마음이 지나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그럴 수도 있더군요. 멋진 사람에게 스스로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때론 편지가 되려 이기적인 감정 전달의 수단으로 밖에 역할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못 보낸 편지도 있어요. 이럴 때는 참 편지가 어려워요. 수취인이 정해지지 않은 편지도 많아요. 함정에서 근무할 때에는 이 특수한 환경에서 지닌 애틋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는데, 전할 사람이 없어 편지로 남겨뒀거든요. 이때 쓴 대부분의 편지는 거의 밀봉을 시켰지만, 봉투가 부족해 넣어두지 못한 몇 장을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되게 재밌어요. 문체도 쓰는 방식도 지금과 많이 달라요. 재밌어서 그 편지를 한 장씩 까보다 보면 그 편지들도 결국은 돌고 돌아 저를 위해 써둔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때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해요. (뭐 사진이나 영상, 그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죠.) 제가 쓴 편지가 생소한 이유도 이로 인해서이겠죠. 이들이 써준 편지도 그때의 그만이 당시의 제게만 쓸 수 있는 문장들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참 소중해요. 이 편지를 읽고 있으면 되게 무겁고 값진 보물을 가진 기분에요. 몇 번의 휴가 때마다 반복해서 읽지만 건조하다만 힘이 나서 외로움을 물리친다거나, 덕분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날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과 글자와 문장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간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요.
특별한 상황이 오지 않아도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자 해요. 어느 날 갑자기 우체통에 꽂혀 있던 누군가로부터 온 편지를 아버지가 퇴근길에 들고 와 식탁에 올려두면 꽤나 설레지 않을까요?
요새 온라인으로 사진 강의를 들으면서 <이미지 언어>에 대한 개념이 잡히고 이해하고자 하고 있어요. 이미지는 분명 사진과 영상 매스미디어가 크게 관할할 부분이지만!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던 과거에 비해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는 시대에서, 텍스트의 앞으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은 핸드폰 창에 떠오르는 사진과 엽서 뒷면에 그려진 빛바랜 그림의 감흥이 다르듯, 노란 말풍선 속 카톡 메시지와 흑연 냄새가 나는 편지도 역시 그렇겠죠.
이 발행물을 쓰려고 준비하면서부터 예전부터 받아왔던 편지의 답신을 쓰고 있어요. 물론 당시에도 바로 답장을 보냈겠지만, 지금 제가 쓰는 답신은 또 다른 느낌일 테니까. 리스트를 쭉 정리해두긴 했는데 참 많아서 염두가 안 나요. 하루에 두 명 이상에게 편지를 쓰면 마음이 온전히 안 담길 것 같은 불안함도 있고, 막상 썼는데 정말 별 내용이 없을까 봐… 고등학생 때 쓰던 편지와 같이 ‘난 너의 그런 점이 참 좋아.’, ‘우리 주말에 외출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앞으로도 잘 부탁해’에서 크게 발전되지 않을까 봐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 그래도 편지는 받으면 늘 기분이 좋은 쪽으로 싱숭생숭하니까요.
또, 더는 답변을 쓸 수 없는 사람에게 정말 사랑으로 가득 찬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이 편지는 지금도 잘 열어보지 못하는데, 저는 누군가를 이렇게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