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물5, 군에서 누군가에게 쓴 편지
비 오는 날 산을 타니 신발이 모두 젖어버렸어요. 그래도 물을 한껏 머금은 들풀의 냄새를 맡는 건 기분이 참 좋답니다. 잎새 위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좋고요.
어버이날인데 부모님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게 조금 걸려요. 핑계라지만 아무래도 모두 좀 애매했거든요. 휴가 나가면 엄마랑은 서울 식물원에 가보려고요. 아버지는 간단하게 안주해서 저녁에 술 한잔하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풀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정확한 시기나 계기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건 아마 우리 엄마 덕분일 거예요. 우리 엄마는 식물 박사에요. 어려서부터 같이 산책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마다 “이건 이런 풀이야.”, “언제 즈음 꽃을 피우는데 향이 아주 좋단다.”, “노란 꽃 말고 붉은 꽃도 피고 하얀 꽃도 피는데 엄마는 노란 꽃이 가장 예쁜 것 같아.”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 근처에 법당에 가 삼배를 드리고 나왔어요. 한 연인이 갑작스레 입을 맞췄던 사찰 계단 한편에는 매번 다른 꽃이 핀 화분이 놓여 있어요. 저번에 폈던 울릉국화는 다 졌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활짝 핀 하얀 꽃송이 사이에 벌들이 노닐고 있더라고요. 바로 아래에 있는 초등학교에 핀 라일락은 그 향을 바람에 태워 흘려보내요. 꽃술에 코를 박고 몇 번이고 큰 숨을 들이쉬면 꼭 엄마가 그러던 모습이 생각나 기분이 좋아져요.
거리가 있는 동네의 카페를 향해 걸어요. 분명 아직도 객지인 이곳이지만 카페로 향하는 그 길 만큼은 이제 조금 지겨울 정도죠.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옥상과 담장, 대문 앞에 아무렇게 놓인 화분들을 한번씩 살펴봐요. 공터에 꾸밈없이 자란 들꽃도 보고, 몰랐던 화단을 발견하기도 해요. 요즘 들어서는 이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언제 꽃을 피우는 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고 얼마나 더 자랄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 도처에 놓이기에 쉽게 지나쳤지만 언젠가 보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늘 곁에 푸르게 있는, 옅은 향과 미약하고도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 이들.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생각을 하는 나날들이에요.
저는 라일락과 프리지아의 향을 좋아해요.
2020-05-09 (토) 18:08
민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