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물3, 군에서 누군가에 쓴 편지
누군가 했던 말을 아주 잘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아무나는 아닐 테죠.
그가 말을 했던 공간과 그 곳의 분위기, 이를 테면 온도와 조도 같은 것이, 산만하고도 정교하게도 같이 떠올라요. 그 말을 구성하던 텍스트 역시 그래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문체를 구성하는 그의 삶의 모든 작은 일부까지 떠올려요. 언어습관부터 ‘이 사람이 이걸 좋아했었지’, ‘이곳을 자주 갔었지’와 같은 것을 말이죠. 기억 속의 어투에는 그때 오가던 감정들이, 어조에는 우리의 얽힌 관계들이 묻어나죠.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더라도 전 이 순간을 그리워해요. 이제는 더 이상 재현될 수 없기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몇 번씩이나 곱씹어요. 없음의 공식이죠. 아쉬움은 늘 승리하니까. 당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날들이 궁금하기도 해요. 그래도 먼저 물을 일은 없어요. 여유 있는 날, 한낮에 걸었던 성북동 거리를 그리워하듯, 딱 그 정도로 내 곁에 없어 아쉬운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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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잃은 사람의 목소리를 재현해주는 인공지능 기계의 광고가 나왔어요. 엄마를 두고 일찍 떠난 어린 딸과의 마무리 인사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증강현실 속 세계도 구축되고 있습니다. 제가 기술을 배운다면 나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듭 짓지 못한 과거를 눈앞의 현실로 데려오는 일을.
인간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일까요? 과거를 억지로 눈앞의 현실로 재현한다는 것이. 애초에 이것은 다 거짓인 것일까, 아직 고민은 많아요. 물론 과거에 매몰되어 앞을 보는 눈을 멀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기에 일련의 작업이 상당히 숭고(?)한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고, 습관처럼 소비될 기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날을 세우고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지나간 순간들 앞에 바로 서 마주보고, 정리를 해서라도 훌훌 털고, “이제는 갈길 가야죠.” 할 수 있도록. 과거의 것을 재현할 수 있으니 영원토록 눈 앞에 둘 수 있다는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못다한 말, 못해본 것을 마무리 짓고 성이 풀릴 수 있기를 바라요. 일종의 한이 될 수도 있는 것을 풀어줄 수 있게요.
어차피 어느 정도는 환상 속에 살아야할 삶이지 않던가요?
저는 미련이 많고 후회가 많은 사람이에요. 삶의 5할 정도는 과거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네요.
먼 바다에 나가면 별이 잘 보여요. 뱃생활이 정말 힘들었을 때도 밤에 나가 별들 보면 백해무익하지는 않구나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제가 어렸을 때 먼나라 말들을 배우지 않고 별들을 먼저 봤다면 이공계열에서 천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잘 지내시죠? 얼른 출타제한이 끝나서 카페에 앉아 있고 싶어요. 함께해주셔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떠신가요? 잘 지내시죠? 아픈 곳 없이 건강하세요.
2020-04-04 (토) 12:50
민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