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서

by 신호수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의 질을 확인한다. 너무 텁텁하지 않은가가 가장 중요하다. 대개 공기는 건조하다. 따라서 물을 공격적으로 들이켜고는 눈을 비빈다. 실컷 비비고 나서야 그만 둬아햠을 깨닫는다. 방 벽에 붙여놓은 것들을 한 번씩 살펴본다. 난 살면서 잘한 일이 곧잘 없는데, 이 벽을 꾸밀 때는 포스터를 수집해두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들은 당연하게 무척이나 애정한다. 그중엔 10년이 넘은 사랑도 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나를 지탱해준 작품들에게 문득 감사함을 느낀다. 이 사랑을 보면,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은 있을 지도 모른다⏤뭐 이런 실용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한다.

그날 들을 CD를 골라 CDP에 끼워넣고나서야 정신을 조금 차리며, 오늘은 뭘 해야하는지를 기억해낸다. 어떻게하면 그 일들을 쫓기 듯 하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그렇게 대강의 계획을 세운 뒤에 밥을 먹을지 말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금 먹을지, 이따가 먹을지, 무얼 먹을지, 먹지 말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요즘 좀 살이 쪘기 때문이다. 얼굴이 둥글다. 원래도 둥글었지만 더 동그래졌다. 둥근 것이 왜 나쁜지도 모르는 채로 증오한다. 하지만 결국엔 밥 먹을 이유를 찾아서 밥을 먹는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어느 사주가의 말을 떠올린다. 난 정녕 그런 중요한 힘이 없단 말인가, 하고서 음식을 씹는다.

어쨌든 옷장 문을 열 정도의 힘은 있으니 일단은 되었다. 어떤 날은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곤 하는데, 또 어떤 날은 운 좋게 한 번에 짝이 맞춰진다. 사실은 마냥 운 때문이 아니다. 포스터 모으 듯 옷을 수집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 중 유독, 어쩌면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것. 취향에 대한 고집. 그러니까 취향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취향을 고집하는 일이 흔들리지 않는다. 취향은 변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알맹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를 이루는 것은 고집과 수집일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나갈 힘은 없어도 문 안의 것을 지키는 힘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거면 되었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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