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권목 Sep 10. 2022

9월 아침 산책

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

아침 5시 30분 창문을 연다.

찬 바람을 맞으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하늘이 보인다.

아직 어둑한 하늘의 구름 사이로 비치는

오묘한 분홍 주황빛들...

그럼 ‘지금이야!!’하고 서둘러 본다.

조금만 늦어지면

완전히 다른 하늘 아래를 걷게 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

도대체 몇 시에 나오시는 건지

이미 파장 상태의 어르신들을 마주한다.

(최근 이른 달리기를 하다 깨달았다. 그들은 새벽 4시에도 5시에도 존재하여 어둠을 함께해준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혹은 홀로 ,

혹은 반려견과 함께 새벽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과 한 번 어둑한 새벽

산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아침 산책을 시작한다.


 이 시간 때쯤 사랑둥이 관종 고양이 한 마리가

천을 내려다보며 사색을 한다.

생각에 빠진 녀석의 뒤통수가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려본다.

언젠가 이곳에 나타난 녀석은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거나 부르는 것 같으면 간식이 없는데도 꼬리를 들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비비적거린다.

한 할아버지는 그런 녀석이 걱정되었는지

좀 떨어져서(차마 바로 옆에서는 못하신다.)

괜히 발을 구르며 “이렇게 하면 도망가야지!!”라고 교육을 시키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 건 이미 다 안다는 듯이

할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본 후

다시 길거리에 널브러져 눕는다.

고양이에게 썩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도

이 녀석이 이렇게 길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을 때마다

죽은 건지 산 건지 걱정을 한다.

사색을 계속하게 둘까 한 번 불러볼까 고민하다 결국 “뚱띠야~”하고 불러본다.

이내 다가온다.

바람 때문인지 평소보다 식어 있는 녀석의 뒤통수를 긁고 쓰다듬다

충분한 듯 보여 홀로 아쉬움을 품고 갈 길을 간다.


 비슷한 시간대에 나오면

비슷한 개들과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

오늘도 어떤 개는 능숙하게 반려인과

속도를 맞춰 걷고

어떤 개는 뛰다 못해 날아다니고

어떤 개는 아련한 모습으로

주인의 품에서 눈만 뜨고 세상 구경을 한다.

역시 오늘도 어떤 사람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리듬으로 열심히 걷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또 어떤 사람은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땀내며 뛴다.

나도 뛰어볼까 싶어 1분 정도 따라 뛰다

그냥 빠르게 걷기로 한다.

'오늘은 달리기가 아니라 산책을 하러 나왔어.'

유유히 하늘을 보고 찬 공기를 느끼며

산책하고 싶어 나왔는데

남을 따라 덩달아 속도를 높이게 된다.

이 상태로 집에 가면 일찍 일어난 보람 없이

다시 눈을 감고 싶을 게 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숨 가쁜 아침도 나쁘지만은 않다 생각하며 열심히 걷는다.


 아침 산책을 함께 해주는 건

온갖 상념들과 노래다.

이것들이 있어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지만

가끔은 이 시간만이라도 이것들 없이

그냥 보이는 것들을 보기만 하고 

정신을 번쩍 들게 차가웠다

곧 기분 좋게 시원해진 공기만 느끼며 걷고 싶다. 노력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상황과 기분에 따라 같은 산책을 하더라도

어떤 때는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어떤 때는 걸어도 풀리지 않는 피곤함을 품고 온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이

오늘 하루를 결정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완전히 떠서 오래된 아파트를 비춘다.  

이럴 땐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명대사 대신,

‘파란 하늘과 햇빛만 있으면

어디든 아름다울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낡은 아파트도 으스스한 버드나무도

쓰레기 소각장 기둥도

파란 하늘과 햇빛만으로 의미를 두고 싶어 진다.


 아무리 걸어도 풀릴 리 없는 어깨와 목을 느끼며 ‘내일은 꼭 산책 대신 요가를 해야지.’ 다짐하지만 아마 내일도 산책을 택할 것이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걷기 좋은 계절이

벌써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 즐거운 혼잣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