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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Sep 22. 2022

우주여행 같은 건 가고 싶지 않아

에세이_단상

“우주여행을 간다면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질문을 받았다.

바로 답이 나왔다.

‘우주여행 같은 건 가고 싶지 않아...

정말 가기 싫어!!’

정말이지 그냥 여행도 버거운 내게

우주는 너무 아득하고 무겁다.

그 너무함에 답답해져 답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답은 아름답고 타당했다.

소중한 사람들이 담긴 사진 앨범,

애착이 담긴 무언가, 아주 길고 어려운 책,

정확한 우주선 사용 설명서, 영화 <그래비티>,

심지어 아이패드도.

여기서 우주여행의 전제 조건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것과 같이

뭐든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한다는 것이겠지?

학습된 불안인가?

동행이 있다 해도

왠지 다 죽거나 홀로 떨어질 것만 같다.

갑자기 그 너무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만 빼고) 홀로 저 광활한 곳,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외로워졌다.

이렇게 스케일이 작은 나도 그런대로 좋지만

고민하다...

정 그렇다면 '립밤과 핸드크림'을 챙길까 한다.

우주선의, 우주의 습도는 모르지만

일단 그것을 챙겨야

온몸을 벅벅 긁지 않을 것 같다는,

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이유를 대본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정을 주고 친해지고 마는 것도

낯선 것이었지만.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 치다

‘이러면 안 되겠지, 나만 크지 않겠지.’라는 불안에

마치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 마냥

다시 앞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보면 함께 할 것들도 있긴 했다.

우주여행도 결국 그런 것 중 하나일까?

우주에서 혹은 우주와도 친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가 우주와 같이 머나먼 곳은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작아진 것 같아

힘이 쭉 빠졌다가,

이내 지금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

이 지구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본다.

그래서 우주 같은 곳에는 영영 가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서도

언젠가 영국에서는

마음껏 <해리포터>와 <어바웃 타임>을 따라 하고,

발리에서 요가를,

하와이  해변에서는 훌라 춤을 배우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를,

쿠바에서는 살사를 추고,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에서는

끝없을 모든 것들을 오래 보다

인생 샷을 건지겠다는,

그런 마음들이 아직 있으니

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고 안도해본다.     


나에겐 너비 15cm, 높이 17cm의

작은 가방이 있다.

책과 자잘한 것들을 많이 지고 다녀

보통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돈이 아까워 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큰맘 먹고 그 가방을 꺼내 작은 속을 채워본다.

꼭 들어가는 것은

일단 카드 지갑은 빼고,

카드 한 장, 만 원 한 장, 민증,

무선 이어폰, 손소독제,

립밤 그리고 핸드크림.

오랜만에 든 가방은 당연히 평소보다 가벼워

발걸음과 어깨가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워도

이것들이라면 마음이 든든하다.

이것들만 있으면

어디든 내가 아는 일상처럼

쾌적한(주부습진이 난다거나 메마른 입술을 씹어대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최소의 것을 챙기나 보다.

하지만 정말 오로지 혼자

머나먼 곳으로 가게 된다면

가장 그리울 것, 간절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촉각의 안락함이라니!!

말고,

더 멋있는 것을, 거창한 것을 답하고 싶어 진다.
 

오뉴블(여성 교도소 수감자들의 생활을 그린

미드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의 줄임말)의 수감자들은 징계, 나아가 독방행을 감수하고

각자 중독되었던 것, 쾌락을 얻는 것을 구하려 애쓴다.

빨간 립스틱, 검은 아이라이너, 밀주, 요거트,

초콜릿, 마약, 담배, 록 음악이 담긴 아이팟...

48시간의 귀휴를 얻은 주인공 파이퍼는

정신없이 할머니 장례식 겸 남동생의 결혼식을 치르면서도,

그토록 간절했던 진짜 커피를 음미하고

술을 들이마시고 거리에서 햄버거를 먹고

가까운 사람들과 닿고 닿는 즐거움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결국 내 몸이 느끼는 즐거움, 편안함이 답인 걸까?

드라마로 예습해 본 감방은

오로지 혼자 견디기는 힘든 곳이었다.

해서 음모와 배신이 무궁무진해도

지치지도 않고 뭉치고, 헤어지고 다시 뭉친다.

그럼에도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하는 감방이지만

이곳에서도 '정도껏'이 없는 악은 사라지고 만다.


긴 시간 속 결코 이전과 같은 ‘나’로

나올 수 없는 그곳, 감방.

질문을 바꿔본다.

‘내가 감방에 간다면 가장 가져가고 싶은 것은?’

이제 막 예습을 시작한 입장에서

감방은 자유의지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우주여행보다 신중해지고

뭐라도 답하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결국 다 부질없고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이상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는 진부한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여행에서 립밤과 핸드크림을 마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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