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을 간다면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질문을 받았다.
바로 답이 나왔다.
‘우주여행 같은 건 가고 싶지 않아...
정말 가기 싫어!!’
정말이지 그냥 여행도 버거운 내게
우주는 너무 아득하고 무겁다.
그 너무함에 답답해져 답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답은 아름답고 타당했다.
소중한 사람들이 담긴 사진 앨범,
애착이 담긴 무언가, 아주 길고 어려운 책,
정확한 우주선 사용 설명서, 영화 <그래비티>,
심지어 아이패드도.
여기서 우주여행의 전제 조건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것과 같이
뭐든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한다는 것이겠지?
학습된 불안인가?
동행이 있다 해도
왠지 다 죽거나 홀로 떨어질 것만 같다.
갑자기 그 너무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만 빼고) 홀로 저 광활한 곳,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외로워졌다.
이렇게 스케일이 작은 나도 그런대로 좋지만
고민하다...
정 그렇다면 '립밤과 핸드크림'을 챙길까 한다.
우주선의, 우주의 습도는 모르지만
일단 그것을 챙겨야
온몸을 벅벅 긁지 않을 것 같다는,
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이유를 대본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정을 주고 친해지고 마는 것도
낯선 것이었지만.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 치다
‘이러면 안 되겠지, 나만 크지 않겠지.’라는 불안에
마치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 마냥
다시 앞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보면 함께 할 것들도 있긴 했다.
우주여행도 결국 그런 것 중 하나일까?
우주에서 혹은 우주와도 친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가 우주와 같이 머나먼 곳은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작아진 것 같아
힘이 쭉 빠졌다가,
이내 지금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
이 지구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본다.
그래서 우주 같은 곳에는 영영 가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서도
언젠가 영국에서는
마음껏 <해리포터>와 <어바웃 타임>을 따라 하고,
발리에서 요가를,
하와이 해변에서는 훌라 춤을 배우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를,
쿠바에서는 살사를 추고,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에서는
끝없을 모든 것들을 오래 보다
인생 샷을 건지겠다는,
그런 마음들이 아직 있으니
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고 안도해본다.
나에겐 너비 15cm, 높이 17cm의
작은 가방이 있다.
책과 자잘한 것들을 많이 지고 다녀
보통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돈이 아까워 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큰맘 먹고 그 가방을 꺼내 작은 속을 채워본다.
꼭 들어가는 것은
일단 카드 지갑은 빼고,
카드 한 장, 만 원 한 장, 민증,
무선 이어폰, 손소독제,
립밤 그리고 핸드크림.
오랜만에 든 가방은 당연히 평소보다 가벼워
발걸음과 어깨가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워도
이것들이라면 마음이 든든하다.
이것들만 있으면
어디든 내가 아는 일상처럼
쾌적한(주부습진이 난다거나 메마른 입술을 씹어대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최소의 것을 챙기나 보다.
하지만 정말 오로지 혼자
머나먼 곳으로 가게 된다면
가장 그리울 것, 간절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촉각의 안락함이라니!!
말고,
더 멋있는 것을, 거창한 것을 답하고 싶어 진다.
오뉴블(여성 교도소 수감자들의 생활을 그린
미드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의 줄임말)의 수감자들은 징계, 나아가 독방행을 감수하고
각자 중독되었던 것, 쾌락을 얻는 것을 구하려 애쓴다.
빨간 립스틱, 검은 아이라이너, 밀주, 요거트,
초콜릿, 마약, 담배, 록 음악이 담긴 아이팟...
48시간의 귀휴를 얻은 주인공 파이퍼는
정신없이 할머니 장례식 겸 남동생의 결혼식을 치르면서도,
그토록 간절했던 진짜 커피를 음미하고
술을 들이마시고 거리에서 햄버거를 먹고
가까운 사람들과 닿고 닿는 즐거움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결국 내 몸이 느끼는 즐거움, 편안함이 답인 걸까?
드라마로 예습해 본 감방은
오로지 혼자 견디기는 힘든 곳이었다.
해서 음모와 배신이 무궁무진해도
지치지도 않고 뭉치고, 헤어지고 다시 뭉친다.
그럼에도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하는 감방이지만
이곳에서도 '정도껏'이 없는 악은 사라지고 만다.
긴 시간 속 결코 이전과 같은 ‘나’로
나올 수 없는 그곳, 감방.
질문을 바꿔본다.
‘내가 감방에 간다면 가장 가져가고 싶은 것은?’
이제 막 예습을 시작한 입장에서
감방은 자유의지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우주여행보다 신중해지고
뭐라도 답하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결국 다 부질없고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이상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는 진부한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여행에서 립밤과 핸드크림을 마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