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장칼국수 한 그릇
세 살 무렵부터 할머니는 내게 ‘엄마’였다.
작은 체구에 주름진 손, 늘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서 있던 그분은
나를 위해 국수를 자주 해주셨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장칼국수였다.
우리 집은 된장을 참 좋아했다.
가난한 형편이라 뭐든 된장을 넣어 먹었는데,
그래서인지 된장 냄새는 내게 늘 ‘집의 냄새’였다.
겨울이 오면 마당의 된장독이 꽁꽁 얼고,
그 냄새가 골목마다 퍼졌다.
그 냄새만 맡아도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하며 늘 말씀하셨다.
“민지야, 이건 손맛이야. 손으로 해야 맛이 나.”
그 손맛이 어떤 맛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한 그릇의 따뜻함만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할머니는 점점 기운이 없어지셨다.
예전처럼 부엌에서 반죽을 하지 못했고,
칼국수 냄비 대신 약봉지가 식탁 위를 채웠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괜히 짜증을 냈다.
“할머니, 왜 자꾸 아파요…”
말끝에 묻은 서운함과 두려움을
그땐 표현할 줄 몰랐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불쑥 말씀하셨다.
“민지야, 우리 장칼국수 먹으러 가자.”
순간 망설였다.
예전엔 늘 집에서 해주시던 건데,
이제 밖에서 사 먹어야 한다니 괜히 마음이 먹먹했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동네 장칼국수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된장 냄새와 칼칼한 국물 향이 코끝을 찔렀다.
우린 곱빼기 한 그릇을 시켜 나눠 먹었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고,
김치 몇 조각을 조용히 드셨다.
그때 사장님이 힐끗 우리를 보며 말했다.
“실수로 면을 좀 더 삶았어요. 드셔보세요, 양이 모자랄 것 같아서요.”
할머니는 고맙다고 인사하셨고,
그제야 젓가락을 드셨다.
국물을 한 모금 드시며
“아, 이 맛이야…”
하고 미소 지으셨다.
그날의 장칼국수는 유난히 짭조름했다.
국물에 섞인 된장 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눈물이 조금 섞였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릇을 다 비우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그 한 그릇은
할머니가 내게 사주신 마지막 밥상이었다.
이제 할머니는 많이 아프시다.
예전처럼 국수를 삶지도, 장칼국수를 드시지도 못하신다.
그런데도 나를 보면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민지야, 나중에 우리 또 장칼국수 먹자.
내가 사줄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목이 멘다.
그날의 장칼국수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식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된장 냄새만 맡아도 눈물이 난다.
그건 단지 음식이 아니라,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우리 기윤 씨.
그날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그 미소,
그리고 그 따뜻한 한 그릇의 온기를
평생 잊지 않을게요.
내 겨울이 추울 때마다
그 장칼국수를 떠올리며 다시 버텨요.
한 그릇의 장칼국수가
세상의 모든 위로보다 따뜻했어요.
그건 단지 국수가 아니라,
할머니가 내게 건넨 마지막 사랑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