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솔 산문집 '오늘은 가을이 조금 지겨워요'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던 날들>
너도 모르게 네 생각을 하는 날들이 있었지
죄스러운 마음에 뒷자리에서 너의 뒤통수만 지켜보던 낮들이 있었고
지난날을 떠오리며 나를 뉘우치는 밤들이 있었지
어떤 밤은 그저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지.
그러지 말걸, 듣기만 하지는 말걸.
다시 너를 만난 그 어느 날
네가 내게 와준 그 긴 긴 어느 날
나는 그날 밤하늘에 감사인사를 보냈다
가시를 벗은 두 단단한 밤톨이 맞닿으며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던 하얀 방
가을도 아닌데 고소하고 따뜻하고 폭실폭실했던
고마워
너 살아내주어 고마워
우리 살아내주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