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마셜-시카고
좋은 뮤지컬 영화는 (개인적으로) 감상 후 영화에 나온 음악을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레미제라블>을 다 보고 나서 ‘룩 다운~ 룩 다운~’이나 ‘원 데이 모어’를, <헤드윅>을 보고 나선 ‘슈가 대디 브링 미 홈’을 중얼거리는 걸 보고 두 영화는 내 마음속에 좋은 뮤지컬 영화로 남았다.
<시카고>를 보고 나서 ‘올 댓 재~~~~~즈’라고 노래하는 걸 보면 이 영화도 좋은 뮤지컬 영화다.
이 영화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 미국의 Windy City,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화려한 무대의 스타를 꿈꾸는 벨마 켈리 (캐서린 제타존스)는 결혼한 몸이지만 극장과 연줄이 있(다고 생각하)는 프레드와 불륜 관계다. 그러나 프레드는 단순한 가구 판매원에 불과했고 이에 화가 난 벨마는 불륜 남을 총으로 쏴 버린다. 우연처럼 그날은 벨마의 우상이자 시카고 최고의 스타 록시 하트(르네 젤 위거)도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피운 남편을 쏴 죽인 날이기도 하다.
함께 감옥에 담긴 벨마와 록시. 벨마는 동경했던 록시와 친해지고 싶지만 시카고의 여제에게 벨마는 존경을 표하지만 록시의 관심은 자신의 감옥 탈출뿐이다.
감옥 간수 마마 모턴 (퀸 라틴파)은 처음엔 록시에게 우호적이었지만 자신의 이득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자 벨마에게 무패 변호사 빌리 플린 (리처드 기어)을 소개해준다.
빌리 플린의 전략에 의해 풀려난 벨마. 그러나 벨마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아차린 그녀의 남편 에이머스 하트(존 C. 라일리)는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당한 벨마는 록시와 함께 환상의 듀오를 결성해 무대에 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원래 1926년 부패한 사법 제도와 범죄자가 유명세를 떨치는 현실을 풍자한 이야기의 동명의 연극이 원작이고, 뮤지컬 초연은 1975년 6월 3일이었다. 영화는 2002년에 제작했으니 스크린으로 옮겨지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림 셈이다.
영화 <시카고>의 성공으로 (4500만 달러로 제작, 전 세계 3억 원 흥행) 그 이후로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던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드림걸스>, <레미레자블>, <오페라의 유령>, <헤어 스프레이>, <맘마 미마!>, <라 비 앙 로즈>. (물론 <라 비 앙 로즈>는 브로드웨이 원작 뮤지컬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바이블 나무 위키에서는 이 뮤지컬 <시카고>에 대해
"뮤지컬 입문자는 위키드나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화려한 무대 연출, 경쾌한 분위기를 연상하고 시카고를 관람해선 안 된다. 시카고는 스펙터클한 무대 연출은 거의 없으며, 넘버들도 보면 알겠지만 다 재즈라 보통 한국 사람들의 취향인 죽죽 뻗어나가는 시원한 성량의 곡도 없다. ... 본인이 웅장하거나 스펙터클한 연출, 혹은 시원시원한 뮤지컬 곡들을 원한다면 시카고는 그렇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뮤지컬과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시카고>를 본다면 누구라도 이 매력에 빠질 것이다.
당시 임신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몸매로 빼어난 연기와 열창을 보여준 캐서린 제타 존스, 뾰로통한 표정과 살짝 나온 볼로 백치미와 이기적인 인물을 소화한 르네 젤 위거, 신사의 탈을 쓰고 제대로 된 속물 연기를 선보인 리처드 기어까지 셋의 연기만으로 2시간의 영화는 꽉 찬다.
사실 뮤지컬 영화는 좋은 음악만으로도 좋은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다. 농구 선수가 농구만 잘하면 좋은 농구 선수인 것처럼. (다만 인성이 뛰어나거나 지역 사회에 공헌을 많이 한다면 사랑받는 선수, 훌륭한 선수로 격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시카고에는 나름이 해학과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시카고를 가장 돋보기에 만드는 것은 재즈와 결을 함께 하는 스토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즈의 장점은 무엇인가. 즉흥성이다. 3분을 공연하기로 했지만 연주자의 느낌에 따라 곡을 새롭게 해석해 30분간 연주를 이어가고 30분의 곡이지만 15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음악이 재즈다. 그래서 악보에 있는 대로 연주를 하는 재즈 연주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메인 연주자가 새롭게 곡을 해석해서 끌고 나면 나머지 세션들도 그에 맞춰 정말 새로운 음색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래서 오리지널 재즈 연주는 같은 곡을 연주해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벨마와 록시의 인생을 보면 변덕스러운 재즈와 같다. 오닉스 클럽의 최고의 스타에서 자신의 남편을 죽여 감옥에 온 록시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석방을 꿈꾸지만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다.
배관공의 아내인 록시는 감옥에 가게 되지만 빌리 플린의 전략에 의해 스타가 된다.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자 거짓 임신 소식을 이용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둘은 다시 만나 시카고를 대표하는 듀오 가수로 데뷔한다. 최고의 스타였던 록시의 인생을 처참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록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변주를 통해 다시 스타로 발돋움한다.
벨마는 보잘 것 없는 배관공의 아내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살인으로 인해 배관공의 아내보다 더 처절한 감옥수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성공한 스타에서 조금은 잊힌 인물로, 거기서 다시 록시와 함께 듀오로 대중에게 복귀한다.
사실 뮤지컬 영화에서 촘촘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납득이 되는 스토리에 좋은 음악 정도면 훌륭한 뮤지컬 영화니까. 그러나 록시와 벨마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파도가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시카고>가 재즈에 기반을 둔 영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즈를 기반으로 했는데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갔다면 따분했을지도 모른다.
<시카고>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들, 화려한 의상, 뮤지컬적인 연출 등의 볼거리도 풍부하다. 하지만 영화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재즈 같은 그녀들의 삶이 없었다면? 마이클 조던을 잃은 시카고 불스 같지 않았을까?
PS- <시카고>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은 'we both reached for the gun'이다. 노래도 좋고 스토리에 딱 맞는 곡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진짜 인형처럼 춤추는 르네 젤 위거의 춤이 정말 매력적이다.
이정현의 '줄래'가 생각나기도 하고
김완선의 '사랑의 골목길'이 생각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