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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06. 2017

왜 우리나라엔 석유가 안 날까.

폴 토마스 앤더슨 -There Will Be Blood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데우스>에는 전쟁이 사라진 이유를 재밌게 설명한다.

전쟁이 드물어진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생각조차 못할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 기업, 개인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전쟁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과도 같은 미친 짓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강대국들은 무력충돌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세계경제가 물질 기반 경제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탈바꿈했다. 전에는 부의 원천이 금광, 밀밭, 유전 같은 물질적 자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 부의 원천이다. 유전과 밀밭은 전쟁으로 정복할 수 있지만, 지식은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없다.



맞는 이야기다. 르완다가 휴대폰과 노트북 제조에 많이 쓰이는 콜탄을 콩고로부터 약탈해서 1년 동안 번 돈인 2억 4,000만 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중국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굴지의 첨단 기술 기업들과 협력해 그들의 제품을 제조함으로써 단 하루에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절은 금광, 유전 같은 물질이 부의 원천이었다. 



19세기 말 미국. 대니얼 플레인뷰는 은광에서 사고를 당해 제대로 걷지 못해도 자신이 발견한 은괴 인증을 받기 위해 자갈밭은 기어갈 정도의 사나이다. 이후 석유 업자로 변신한 그는 큰 성공을 거둔다.


 어느 날, 리틀 보스턴에서 온 ‘폴 선데이’라는 청년이 그에게 찾아와 석유가 나오는 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정보를 산 대니엘은 아들 ‘H.W'와 리틀 보스턴에 가 주변 땅을 사들인다. 이 과정에서 ‘폴 선데이’의 형 ‘일라이 선데이’와 협상이 매끄럽지 않게 진행된다. 그러나 석유가 나오면 일라이의 교회에 5천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대니엘은 주변 땅을 ‘거의’ 매입 한 후 석유 시추를 시작한다. 결과는 대성공.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스가 분출해 당시 작업 현장을 구경하던 H.W는 사고를 당해 귀가 먼다. 일라이는 석유가 나오자 약속한 5천 달러를 요구하지만 대니엘은 일라이를 구타하며 내쫓는다. 
   
사랑하던 아들이 장애인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한 사나이가 자신을 대니엘의 이복동생이라고 소개한다. 생김새도 제법 닮았고, 어린 시절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를 꽤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을 곁에 두고 사업을 진행한다. H.W는 장애와 아버지의 이복동생 출현으로 아버지와 거리감이 커지자 질투심에 집에 불을 지른다. 대니엘은 H.W를 서부에 있는 농아 학교로 보내버린다. 



피붙이라는 믿음으로 동생과 사업을 진행 중에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형제. 대니엘은 동생에게 어린 시절과 고향에 대해 물어보지만 헨리는 피곤한 듯 대답을 회피한다. 이에 타고난 사업가의 감각이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헨리를 겁박하자 그는 순순히 사실을 말해준다. 우연히 대니엘의 진짜 동생을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복동생의 일기를 갖고 있었던 덕분에 이런 연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격분한 대니엘은 가짜 이복동생의 머리통에 총을 쏘고 땅에 묻고 그 자리에서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 땅 주인은 대니엘을 깨운다. 그 땅은 리틀 보스턴에서 그가 매입하지 못한 지역이다. 송유관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임대를 요구하지만 일라이 교회에 독실한 신도인 땅 주인은 교회에 나가 죄를 씻고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공을 위해 교회에 나간 대니엘은 일라이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사업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그리고 결국 대니엘은 송유관을 건설해 백만장자가 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파멸한 듯 보인다. 선데이 가문의 막내딸 메리와 결혼한 H.W에게 “넌 내 아들이 아니야. 고아였어. 넌 바구니의 사생아야.”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H.W는 당신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드린다며 집을 떠난다. 
   
그 뒤 저택에 마련한 볼링장에 술에 절어 뻗어 있는 대니엘에게 일라이가 찾아온다. ‘제3계시교’의 독실한 신도 소유의 광활한 개발지를 10만 달러에 팔겠다며 말이다. 대니엘은 일라이에게 “네가 가짜 선지자임을 인정하고 하느님은 미신이다.”라고 외친다면 투자를 하겠다고 대답한다. 일라이는 “나는 가짜 선지자이고 하느님은 미신이다.”라고 여러 번 외치자 만족한 대니엘은 그 땅에는 이미 석유가 없다고 말한다.     


밀크셰이크처럼 주변 땅에서 석유를 쪽쪽 빨아먹었다고 조롱하자 일라이가 대니엘에게 대든다. 이에 격분한 대니엘은 일라이의 뚝배기를 볼링 핀으로 깨 부순 후 마침 내려온 집사에게 "다 끝냈네(I'm finished)"라고 대답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There Will Be Blood>은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에서 3위를 기록한 역작이다. 라디오헤드의 멤버 조니 그린우드가 OST 작업을 했고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기도 하다. 

라디오헤드에서 간지를 담당하고 있는 조니 그린우드

이 영화는 시작하고 나서 대니엘 플레인뷰가 사인을 하기 전까지 10분 넘게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 그 짧은 시간에 감독은 주인공의 성격, 집념, 사업의 변화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혼자서 탄광에서 일하는 대니엘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사고를 당했음에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은괴 인증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그는 성공에 엄청난 집념을 가진 사내다. 또한, 미국의 한탕주의가 은(혹은 금)에서 석유로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도 세계경제는 석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미국이라는 국가의 원동력은 석유와 에너지 관련 기반 산업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는 석유 때문이다. <There Will Be Blood>에서 대니엘의 아들 이름이 H.W라는 것은 석유 사업을 금전적 발판으로 대통령직까지 수행한 41대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와 아들 조지 W 부시가 연상된다. 대를 이어 석유 사업을 한다는 것까지 묘하게 부자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 부의 원천을 혼자서 거머쥐기 위해 행동하는 대니엘은 어떤 의미에선 존경스럽다. 스크린에 비치는 그가 악역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제3계시교라는 절대악이 있어서 대니엘의 악한 면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 제목인 <There Will Be Blood>는 ‘그곳에 피가 있을 것이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 그곳은 어디인가. 석유가 나는 곳이다. 영화 초반, 중반, 후반 모두 석유가 있는 곳에서 인명사고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대니엘에게 그다지 중요해보지 않는다. 표면상 인자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를 위해 다친 사람을 걱정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까지 내팽개치고 그가 마지막에 보고 있는 것은 뿜어져 나오는 검은 황금이다. 
하지만 혈흔이 보이는 장면은 일라이 선데이와 만나는 마지막 장면뿐이다. 

 성(性) 마저 주일을 뜻하는 일라이 선데이가 상징하는 ‘제3개시교’는 영화의 여러 대립구조 중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형이상학적인 신, 종교와 형이하학적인 기름과 돈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하는 것은 대니엘이다. 이는 석유를 채굴하는 도중 일어난 사건들과 맞물려 미국인들의 정서와 미국의 역사를 비유한다. 
   
미국은 우리나라만큼이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나라다. 그리고 미국만큼 전 세계의 평화에 관심 없는 강대국은 찾기 힘들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얻고 선서를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개신교를 믿지만 그들은 신의 말씀처럼 살지 않는다. 성경을 들고 미국 땅을 밟은 청교도들이 인디언을 다룬 역사와 채굴 도중 일어나는 인명피해를 바라보는 대니엘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분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니엘과 H.W, 대니엘과 이복동생 헨리, 집중하지 않으면 영화 내내 혼란에 빠질 수 있는 목회자 일라이와 그의 쌍둥이 형 폴, 플레인뷰의 경쟁 석유사업자. 자신의 분신은 하나의 라이벌이자 믿을 수 있는 핏줄이다. 또한, 분신은 자신의 사업을 돕는 이미지이자 인생을 망쳐놓는 철천지원수이기도 하다. 모든 분신에 직간접적으로 걸쳐있는 대니엘 플레인뷰는 분신이 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인물이다. 대니엘이 남성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성격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다니엘은 자신의 분신인 헨리와 함께 바닷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명백한 명암의 대비로 부각되는 이 장면은 본체와 분신을 구별한다. 동시에 분신이 거짓이라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이처럼 PTA(폴 토마스 앤더슨의 애칭) 그뿐만 아니라 훌륭한 감독들은 화면 구성과 연출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 물론 이 사진들에 나타난 황금 비처럼 모든 장면을 구성하진 않겠지만 특유의 예술 감각으로 인물의 등장과 배치, 소품의 비율 등을 동물처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이 계속되면 실력인 것처럼 PTA는 그의 작품에서 이런 연출을 계속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친놈처럼 계산하진 않았겠지만
아름다운 좌우대칭

<There Will Be Blood>는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Oil!>을 영화화했다. 그러나 원작 소설 전체가 아니라 앞의 분량 일부만을 다뤘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영화와 너무 연관성이 없어 굳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어도 됐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주연들의 연기력도 한몫했다. 
   
원래 일라이 선데이는 ‘켈 오닐’이라는 배우가 맡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니엘 루이스 역의 연기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스스로 촬영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에 PTA는 엘라이의 형 역할로 딱 한 장면에 출연하기로 했던 폴 다노를 쌍둥이로 만들었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다노 같은 배우에게 이처럼 작은 역을 줬다니”라는 고백과 함께.



이 에피소드는 주연을 맞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폴 다노의 무지막지한 연기력을 잘 보여준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There Will Be Blood>로 1991년이 어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H.W를 역할을 한 딜런 프레이저는 실제 배우가 아니라 촬영지인 텍사스주 근처에 거주하던 초등학생이었다고.)



엄청난 극찬과 패러디를 만들어낸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I Drink Your Milkshake!”, 영화 내내 대선배의 연기에 눌리지 않는 광기와 찌질함의 연기를 펼친 폴 다노는 이 영화가 BBC 선정 가장 위대한 영화 3위에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PS- 리틀 보스턴에서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과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번호 77중 제3악장 알레르고 지오코소다. 


전체적인 BGM 과는 상당히 생뚱맞은 음악이다. 높은 현의 경쾌한 현소리로 시작하는 이 음악은 다른 BGM과 통일성은 없지만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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