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Dec 16. 2017

이 신화는 언제 끝날까?

김재환- 미스 프레지던트

원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그래서 객관적이란 단어는 허구에 불과하다. 기계가 아닌 이상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어떤 사건과 평가할 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런 의견을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 위해 이런저런 살을 붙일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도 보는 사람에 입장에 따라서 입장차가 다를 것이다. 당시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감독이 곳곳에 심어놓은 풍자의 장치를 보며 즐거워할 것이고 탄핵을 반대한 사람들은 ‘애국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최대한 기름기를 빼고 보자면 <미스 프레지던트>는 감독의 정치적 성향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내가 읽었던 풍자적 장치도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장치들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해바라기가 클로즈업된다. 이 해바라기는 故 육영수 여사의 생가 겸 기념관 앞에 있는 들판에 핀 꽃이다. 이 장면 전에는 ‘박사모’ 사람들이 육영수 여사를 그리워하면서 추모했던 장면이 깔렸고 이 장면 이후에는 이 기념관에서 육영수 여사 관련 작품을 보면서 아련해하고 그리워한다. 
   
이 해바라기가 뭘 의미하겠는가. ‘육영수바라기’ 혹은 ‘박정희바라기’ ‘박근혜바라기’다. 이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우둔한 신화에 빠져나오지 못한 맹목적인 사람을 비난하는 거라고 해석할 거다. 다른 사람은 고매한 영웅을 바라보는, 의미 있는 개인을 해바라기에 투영하지 않을까?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를 존경하고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박정희 세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옛날 분들이 추억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상징하는 장면이 몇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급인 청주에 사는 조육형 씨는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에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가 터널을 통과하면서 어두워지더니 흑백으로 처리되고 곧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영상이 나온다. 

 

노골적으로 과거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나온 장면도 있다. 소(소를 이동 수단으로 삼는 옛날 모습)를 타고 가는 조육형 씨를 한 씬은 뒷모습으로, 한 씬은 원경으로 처리한 영상을 보면 과거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모습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카메라에 등을 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은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과거 왕이 죽으면 네 번 절하는 거였다며 매일 아침, 그리고 박정희 동상 앞에서도 사배(四拜)를 하는 조육형 씨는 한 개인이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고 박정희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대변한다. 


이 구도도 참 재밌다.

영화는 나름 잔잔하게 과거의 영상과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려낸다. 그러다가 황혼의 시간에 선 현실을  조육형 씨를 통해 그려내고



곧이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뉴스를 본 ‘박사모’ 사람을 그린다. 이후 내용은 우리가 지난 반년 간 지겹도록 봐온 내용들이다. 최순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 들어,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등등
  
그러다가 주관적으로 꼽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숨이 턱 막히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요 장면.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책에서 나올 법한 생상한 사례가 아닐까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이라 호흡을 가다듬고 나면 열혈 ‘박사모’회원들이 촛불 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나서 박근혜 대통령이 방긋 웃으며 청와대를 빠져나오고, 박정희 대통령 동상이 수면에 비치면서 영화는 끝난다. 




김재환 감독은 <미스 프레지던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의 영화가 아니다. ‘박정희는 잘했고 육영수는 그립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박정희 세대’에 관한 영화다. 이분들과 어떻게 대화할까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 박사모 집회에서 무대에 선 사람들과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김재환 감독은 <쿼바디스>, <MB의 추억> 등의 영화를 찍은 전력이 있고 (보수 세력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영제가 잘못됨을 의미하는 <Mis President>라는 점과 영화 개봉일이 10월 26일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감독의 말에 뼈가 있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이해할 순 있지만 공감할 순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말 배를 곯았던 시절을 살았고, 정부가 미디어를 통제했기 때문에 잘못된 지식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건 이해할 수 있다. 나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나왔음에도 자신들이 쌓아왔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이라고 소리치고 잘못됐을지언정 신념을 갖는 것도 억지로 억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은 못해주겠다. 그러니 그쪽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를 이해만 해줬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