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기억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by Dirk

체호프 하면 생각나는 세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추리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일 가능성이 큼)에서 나온 체호프에 대한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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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체호프 소설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체호프의 소설에서 권총이 나온다면 언젠가는 그 권총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그게 체호프의 스타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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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억은 고소왕 강용석이 <썰전>에서 한 이야기다. 크림반도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쟁이 일어났을 때 썰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강용석이 크림반도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배경인 얄타가 바로 크림반도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201311050535164240.jpg 아는 거 자랑하려고 급하게 말을 꺼낸 기억이 난다.

세 번째 기억은 내가 이 책을 샀던 이유인데 책 광고를 이렇게 하고 있었다. "박경림이 출산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잃은 책"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광고 문구지만 그 문구로 인해 <체호프 단편선>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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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하기 위해 다시 읽은 <체호프 단편선>은 생각보다 담백하지 않았다. 첫 번째 기억에 따르면 내게 체호프에 대한 이미지는 미니멀리즘, 기름기 쫙 뺀 딱딱함이었는데 생각보다 담백하지 않았고, 그래서 재밌었다.

레프 톨스토이가 체호프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의 표현들은 특이하고 이상했지만 사람들을 사로잡는 어떤 것이 있었다.

체호프가 당시 러시아 작가들과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쓴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당시 러시아는 단어 수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러시아 소설들은 분량이 굉장히 길었는데 체호프는 반대로 간결하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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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에 그를 현대 소설의 창시자, 단편 소설의 선구자라고 부른다.

<굽은 거울> 같은 경우는 5페이지에 불과하고 <쉿>도 7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설정과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소설이 줘야 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게다가 유쾌한 내용들도 많다. (실제로 체호프도 유쾌한 성격이라고 한다.)

내가 구입한 일송북의 <체호프 단편선>은 앞 쪽엔 10페이지 미만의 짧은 소설로 독자를 모집하고 뒤로 갈수록 다소 긴 단편 소설을 소개하는 구성을 취한다.

<체호프 단편선>은 에로틱하면서 우스꽝스럽고, 연민이 느껴지는 동시에 가증스럽다. 여성을 바라보는 체호프의 시선, 러시아 소시민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련한 시선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이 짧은 내용에 이 모든 걸 집어넣은 작가의 깔끔하고 세련된 솜씨가 대단하기만 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재밌다.

%EB%AC%B8%EB%AA%85%EC%9D%9820%EB%8C%80%EA%B0%8020001.jpg?type=w580 서울대 이 녀석...


PS- 체호프 마니아 이항재 교수는 “체호프는 ‘여자 없는 이야기는 증기 없는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에 다양한 여자를 등장시켰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다. (일탈, 욕망, 순응, 윤리, 매춘, 불륜 등등) "그러면서도 여자들의 행태를 냉정하게 보여줄 뿐 그들의 욕망과 일탈을 윤리적으로 비판하거나 도덕적으로 설교하지 않았다."라고 이항재 교수는 덧붙였다.

-그런데 사실 상상의 덧없음을 보여준 <굴>에선 여자가 나오지 않고 <쉿>, <어느 관리의 죽음>에서도 나오긴 하는데 별 다른 비중은 없다. 그리고 세상의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잔데 여자 없는 이야기가 얼마나 있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PS2- 아뉴타의 마지막 대사인 "그리고로비치, 차 마시러 오게"는 등장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를 부르는 대사인 건지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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