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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12. 2017

세 가지 기억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체호프 하면 생각나는 세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추리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일 가능성이 큼)에서 나온 체호프에 대한 묘사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체호프 소설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체호프의 소설에서 권총이 나온다면 언젠가는 그 권총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그게 체호프의 스타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복선)



두 번째 기억은 고소왕 강용석이 <썰전>에서 한 이야기다. 크림반도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쟁이 일어났을 때 썰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강용석이 크림반도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배경인 얄타가 바로 크림반도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아는 거 자랑하려고 급하게 말을 꺼낸 기억이 난다.

세 번째 기억은 내가 이 책을 샀던 이유인데 책 광고를 이렇게 하고 있었다. "박경림이 출산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잃은 책"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광고 문구지만 그 문구로 인해 <체호프 단편선>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http://news.joins.com/article/3694256

리뷰를 하기 위해 다시 읽은 <체호프 단편선>은 생각보다 담백하지 않았다. 첫 번째 기억에 따르면 내게 체호프에 대한 이미지는 미니멀리즘, 기름기 쫙 뺀 딱딱함이었는데 생각보다 담백하지 않았고, 그래서 재밌었다. 

레프 톨스토이가 체호프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의 표현들은 특이하고 이상했지만 사람들을 사로잡는 어떤 것이 있었다. 

체호프가 당시 러시아 작가들과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쓴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당시 러시아는 단어 수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러시아 소설들은 분량이 굉장히 길었는데 체호프는 반대로 간결하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를 현대 소설의 창시자, 단편 소설의 선구자라고 부른다.  

<굽은 거울> 같은 경우는 5페이지에 불과하고 <쉿>도 7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설정과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소설이 줘야 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게다가 유쾌한 내용들도 많다. (실제로 체호프도 유쾌한 성격이라고 한다.)

내가 구입한 일송북의 <체호프 단편선>은 앞 쪽엔 10페이지 미만의 짧은 소설로 독자를 모집하고 뒤로 갈수록 다소 긴 단편 소설을 소개하는 구성을 취한다. 

<체호프 단편선>은 에로틱하면서 우스꽝스럽고, 연민이 느껴지는 동시에 가증스럽다. 여성을 바라보는 체호프의 시선, 러시아 소시민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련한 시선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이 짧은 내용에 이 모든 걸 집어넣은 작가의 깔끔하고 세련된 솜씨가 대단하기만 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재밌다. 

서울대 이 녀석...


PS- 체호프 마니아 이항재 교수는 “체호프는 ‘여자 없는 이야기는 증기 없는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에 다양한 여자를 등장시켰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다. (일탈, 욕망, 순응, 윤리, 매춘, 불륜 등등) "그러면서도 여자들의 행태를 냉정하게 보여줄 뿐 그들의 욕망과 일탈을 윤리적으로 비판하거나 도덕적으로 설교하지 않았다."라고 이항재 교수는 덧붙였다.  

-그런데 사실 상상의 덧없음을 보여준 <굴>에선 여자가 나오지 않고 <쉿>, <어느 관리의 죽음>에서도 나오긴 하는데 별 다른 비중은 없다. 그리고 세상의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잔데 여자 없는 이야기가 얼마나 있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PS2- 아뉴타의 마지막 대사인 "그리고로비치, 차 마시러 오게"는 등장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를 부르는 대사인 건지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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