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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Nov 05. 2017

글에서 꿀 떨어져유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인생의 가장 큰 복은 만수르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생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다음 복은 로또 당첨이다. 정 안 되면 연금복권이라도 괜찮다. 확률에 의하면 벼락을 맞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다시 벼락을 맞을 확률이라고 하는데 나처럼 비루한 삶을 살 확률도 저거랑 비슷할 텐데 왜 우리에게 확률은 좋은 쪽으로 움직여지지 않을까.



이런 높은 위치에 있는 행복을 지우다 보면 꽤나 상단에 있는 행복의 조건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 벌어먹고 살기’ 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프로 게이머가 되길 원하고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게 유명 BJ나 파워 블로거를 꿈꾼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이 드신 양반들은 알고 있다.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생각보다 즐겁지 않은 업무 때문에 일도 잃고 취미도 잃을 확률이 크다. 엄마 눈치 봐가면서, 학원 땡땡이치면서 하는 게임이 즐겁지, 게임을 임요한처럼 혹은 페이커처럼 하루 10시간씩 집중하면서 머리를 써가면서 하면서도 즐거워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은 일이니까. 

물론 일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이 주는 경제적 보상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는 즐거움 때문에, 성취감과 자기개발 때문에 일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그중 최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왜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유식한 말로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고 한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그런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면 부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야릇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다.  


故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이런 감정은 오롯이 느껴진다. 


몇 마디 미사여구로 문화재를 보고 찬양하는 글 쯤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깊이 없고 진심 없는 글은 금세 탄로 난다. 그래서 문장이나 글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교만한지, 겸손한지, 일에 대한 열정이나 삶에 대한 자세는 어떠한지 등등을 말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다 보면 작가가 한국의 미술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몇 대목을 소개하면  


자개장 

조선시대의 나전칠기들이 멋지다는 것은 얼른 보면 수답스럽고 화려한 그 장식 의장 속에도 우리의 조촐한 생활 감정이 어려 통일과 조화의 아름다움이 근사하게 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롱지는 자개 빛의 변화 있는 고움, 그리고 여기에 곁들인 은빛보다 더 은은한 백동장식의 매력은 아마 조선인들의 담담한 꿈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신라 토우

점토를 떡 주무르듯 주물러서 비정 만든 소박한 신라시대의 토우들을 보고 있으면 무딘 듯하면서도 재치 있게 다룬 몸체의 자세라든지, 웃는지 우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같은 인간들끼리 통할 수 있는 따스한 정과 서글픔을 아울러 느끼게 된다.  


후원과 장독대

장독대에는 비록 함박꽃처럼 화려하고 푸짐한 즐거움은 없다. 그러나 햇살을 받은 장지문의 은은한 한지의 멋, 그리고 삼베 생모시 같은 소박하고도 정다운 아름다움이 오직 독개 그릇이 지닌 착하디 착한 아름다움과 어울려 함께 살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애인을 바라보는 연인의 눈빛처럼 뚝뚝 떨어지는 꿀 내음이 진동하는 문장과 시선을 읽다 보면 그의 심미안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사랑하는 일이 직업이 된 (비록 지금은 고인이시지만) 그에게 묘한 질투심이 느껴지고도 한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문화재를 보고 싶어 진다.   


단순히 문화재를 나열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짤막하게 곁들인 게 아니라 서두에 한국의 미(美)에 대한 기본적인 강의를 하기 때문에 독자는 그 같은 심미안을 갖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해체 도구 혹은 안경을 들고 문화재를 탐방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소개하는 문화재를 검색하면 고배율, 컬러, 다양한 각도까지 엄청난 양의 사진을 볼 수 있지만 흑백의 사진은 그대로 고즈넉한 멋이 있어 좋았다.   


서문에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평소에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미술과 문화재에 눈을 뜰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지체 없이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때의 선생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책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좋은 선생, 좋은 책으로는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상이 없다는 대답까지 해오고 있다.   


내 기억으론 이 책의 지문이 수능인가 평가원 모의고사에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불티나게 팔리고 많은 화제를 낳았는데 한국이 ‘저녁 있는 삶’으로 변해서 인문학, 역사,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져 한 번 더 이 책이 날아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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