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 나빌레라
다음과 네이버. 라이벌이라고 하면 네이버 쪽에서 불쾌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라이코스가 망하고 야후가 망할 때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포털이다.
다음이 카페로 네이버가 지식인과 블로그로 몸집을 키웠고 네이버가 먼저 웹툰으로 웹툰 시장을 키웠고 생각보다 웹툰이 성공하자 다음도 만화세상이라는 웹툰 카테고리를 열었다.
다음 웹툰은 완결이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유료화 된다. 물론 작가들을 위해서 유료화하는 걸 비난할 순 없지만 무료로 보다가 유료화가 되면 허전한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언젠가 네이버도 유료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웹툰=무료라는 공식이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들한테 제대로 이익만 분배된다면 좋은 현상이다.
두 포털의 웹툰을 살펴보면 네이버 웹툰은 질적인 편차가 크지 않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웹툰도 많다. 그런데 다음 웹툰은 편차가 크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웹툰도 많지 않다.
네이버의 가벼움과 다음의 무거움은 조석, 마인드 C, 기안 84와 강풀, 윤태호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싶다.
질적으로 고른 편인 네이버 웹툰에 비해 다음 웹툰은 잘 고르면 대박, 못 고르면 쪽박인 경우가 많다. 최근 완결한 <나빌레라>는 다음 웹툰 중에 잘 고른 대박에 속한다.
56화로 마무리된 <나빌레라>는 일흔을 몇 달 앞둔 심덕출 할아버지가 은퇴 후 친구의 장례식에 간 후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발레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지식한 첫째 아들은 완강히 반대하면서 벌어지는 갈등, 아버지를 조용히 응원하는 막내아들과 원치 않게 심덕출 할아버지의 개인 교사가 된 이채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주인공인 심덕출이 알츠하이머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극 중에서 알츠하이머나 치매는 여성의 것이었다.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가 주연을 맡은 <노트북>, <어웨이 프롬 허>,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해피 엔딩 프로젝트>, 줄리안 무어가 주연을 맡은 <스틸 앨리스>까지 알츠하이머 환자는 모두 여성이다. 반대급부로 당장 생각나는 <메멘토>는 남자가 알츠하이머도 아니고 일련의 영화처럼 드라마 장르도 아니다. 그래서 <나빌레라>는 특별하다.
<노트북>부터 <스틸 앨리스>까지가 여성, 엄마, 육아, 희생, 약자, 순종, 사랑, 치매 등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을 잘 주물러서 만든 영화라면 <나빌레라>는 가장으로서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의 인생에서도 저런 단어들이 없을 리 만무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엄격, 근엄, 진지를 이 시대의 아버지상으로 설정해놨기 때문에 아버지와 치매를 연결하는 것보다 어머니를 치매와 연결하는 게 훨씬 효과적으로 관객을 울릴 수 있다. 엄근진 아버지와는 감정의 공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빌레라>는 첫째 아들을 이 시대의 아버지상으로 설정해놓고 심덕출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해 ‘심덕출’을 어머니 같은 아버지상을 만들어놓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첫째 아들한테 혼나고 사과하면서 심덕출이라는 캐릭터를 최대한 야들야들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독자의 분노를 받아줄 캐릭터도 만들고 말이다.
성장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칠하지만 상처가 있고 사연이 있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이채록과 심덕출의 막내아들인 심성관의 조합이 참 좋았다.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알고 있었다. 이채록과 자신과 비슷하다면 친해지기 힘들 거라고. 하지만 아버지를 위해 먼저 이채록에게 말을 걸고 채록에게 먼저 친하다고 말하고 말을 놓는 성관의 다가감이 담백하고, 그래서 슬펐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가족, 친구, 꿈, 이웃,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 잘 전달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가 자신의 연출력의 한계 같아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살짝살짝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눈물 펑펑 흘릴 수 있는 웹툰은 오래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