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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12. 2017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예요

빌 브라이슨-거의 모든 것의 역사

계절학기를 듣기 위해 교정에 머무를 때면 문득 회한의 감정에 휩싸인다. 이제 졸업을 목전에 두었기에 그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나는 4년간 학교에서 뭘 했을까?’ 인간은 후회하고 망각하는 동물이라지만 4년간의 여정을 끝내야 하는 이 시점에서 회한은 감정은 지독하게도 망각되지 않는다. 재수에 반수를 거쳐 힘들게 들어온 대학교였지만 수험생 때의 전투력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졸업에 몇 학점이 부족해 계절학기를 들으며 졸업을 기다리는 신세다. 대학교에서의 시간이 회한과 후회로 점철된 시간이라고 해도 졸업을 가슴 뛰게 기다리지도 않는다. 기형도의 시 「대학 시절」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에서의 생활을 자평하자면 지독한 겁쟁이였고 발전 없는 청춘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있었지만 결국 애꿎은 시간만 보내며, 괜한 변명만 늘어놓은 채 하루하루 죽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와 맨 몸으로 사회에 내던져진다 생각하니 지독하게 다니기 싫었던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기 겁이 난다. 난 그토록 오기 싶었던 대학교에서 내가 되고 싶었던 인간이 되지 못하고 헛된 시간만 보낸 것인가. 왜 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나. 겁먹지 말고 좀 더 저질렀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머리를 쉽사리 떠나지 않고 날 괴롭힐 때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으니 어쩐지 가슴속에 있던 울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말 그대로 지구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과학을 접할 일 없는 나에겐 거부감이 든 책이다. 하지만 저자는 서문을 통해 과학의 신비로움과 성과에 대해서 너무 기술적이거나 어렵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책을 절반 정도 읽으니 저자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이 책은 충분히 기술적이고 어려웠다. 하지만 약간은 이해하고 동감할 순 있었다. 


책은 우주는 어떻게 생성됐는지, 지구는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했는지 등의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한다. 특히 책의 초반에 해당하는 우주의 출발과 태양계 등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주가 탄생을 우주론 학자들이 100억 년 전인가, 200억 년 전인가 논쟁을 벌이다가 대략 137억 년 정도의 숫자로 합의했다라던가 펜지어스와 월슨이란 과학자가 150조 킬로미터의 10억 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우주의 경계이거나 또는 그 경계의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학점, 취직, 토익, 집값 같은 현실적인 것들을 고민하다가 팽창으로 인해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였던 우주가 무려 10,000,000,000,000,000,000,000,000배로 (오타가 아니다) 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덩달아 내 걱정은 내 존재만큼이나 한없이 하찮아진다. 
물론 이것은 현실도피다. 한국 사회에선 현실도피를 패배자의 변명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크지만 때때로 현실도피는 우리 삶을 위해 필요하다. 다른 분야의 이야기지만 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콘서트를 본 팬들이 현실을 잊길 바랐다. 콘서트 안에서 일종의 ‘현실도피’를 하고 콘서트가 끝난 후 현실로 돌아가서도 ‘현실도피’했던 추억을 동력 삼아 살아가길 원했다. 비록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사망했고 더 이상 Queen의 콘서트를 매개로 현실 도피하지 못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매개체를 통해 현실도피에 성공했다. 


우주의 탄생은 내 존재의 가벼움만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철학도서가 아님에도 내 삶, 내 존재에 자체에 대해 감사함을 가르쳐준다. 책에 의하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될 때는 질량의 0.007%가 에너지로 바뀌어야만 한다. 만약 그 값이 0.007%에서 0.006%로 바뀌면, 그런 변환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이 때문에 그런 우주에는 수소만이 존재하게 된다. 그 값이 0.008%로 조금만 커지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수소는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들이 조금만 바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우리 은하계에 1,000억에서 4,000억 개의 별이 있다고 짐작한다. 그리고 우리 은하는 1,400억 개 정도일 것으로 짐작되는 은하들 중 하나이다. 가능성은 열어놔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다른 별에 존재하는 고등 생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귀납적으로 따지면 우리 은하계에선 생물체는 오직 지구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실제로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그럼 셈이다. 칼 세이건은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행성의 수는 약 1조 개의 100억 배일 것으로 추산했다. 또 그런 행성들이 퍼져 있는 공간의 크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세이건에 따르면, “만약 우주공간에 우리를 임의로 뿌린다면, 우리가 행성 부근에 떨어질 가능성은 1조의 1조의 10억 분의 1보다 더 작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확률로만 치자면 우리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다 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존재함에 대한 감사의 감정이 솟구친다. 삶에 지친 청춘들에게 한번 권할만한 책이다.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철저하게 논리와 실험으로 움직이는 과학자들이 신앙을 갖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꽤나 많은 과학자들이 신을 믿고 있고 그중 천문학자(행성, 항성, 은하 등 천체 등을 연구하는 학자군)들이 신앙을 갖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우주의 신비에 대해 연구하고 알아낼수록 기적의 연속(말도 안 되는 확률) 말고는 우주의 탄생과 태양계의 탄생 등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가 바로 이 우주에 사는 이유는 이 우주가 바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확률은 상상을 초월한 만큼 희박해 0에 수렴한다. 그런 사실을 밝혀낼수록 학자들은 비록 종교를 갖진 않아도 신앙을 갖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고 한다. 0에 수렴하는 확률을 확률 자체로 믿는 것보단 다른 존재가 (인격적 신이 아니더라도) 있다고 믿는 것이 과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내 ‘현실도피’는 길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치열한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스펙을 쌓고 내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처럼 회한의 감정에 휩싸이진 않는다. 내 고민이, 내 후회가 얼마나 티끌 같은 걱정인지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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