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같이 걸을까
가수를 옛날엔 ‘딴따라’라고 해서 공부 안 하고 노는 날라리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머리가 좋은 걸 학벌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머리가 좋은 건 그다지 취급을 안 해준다. 근데 이적은 머리도 좋고 음악도 끝내준다.
패닉 시절부터 참 좋아했던 가수였는데 알고 보니 천재더라. 이적의 천재성은 많은 동료들이 인정한다. 카니발로 함께 활동했던 김동률은 “카니발 작업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서로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에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타일 자체가 난 노력형에 가까운데, 이적은 천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많은 팬들이 이적의 작사 능력에 찬사를 보내는데 이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온다. <지문 사냥꾼>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고 중3 때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시를 썼는데 이를 보고 故 박완서 님이 감탄을 했다고 한다.
습한 얼굴로
AM 6:00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 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중략)
- 엄마의 하루
23세 때 <거위의 꿈>을 작사했고 아내를 위해 만든 노래인 <다행이다>, 무한도전에서 뚝딱하고 만든 노래를 들으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저음이긴 하지만 깔끔하고 좋은 발성으로 쭉쭉 뻗는 가창력도 훌륭하다.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처음 들었던 게 마지막(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시티 브레이크’였다. 록 페스티벌에 발라드 가수가 왔다고 쑥스러워하던 그가 불렀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3만 명이 더 모였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묘한 긴장감만 감돌면서 조용했던 그 느낌은 참 생경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깊숙한 곳부터 올라오는 환호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몸이 떨린다.
이적이라는 예명은 그의 책에서 <지문 사냥꾼>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내 이름은 적입니다. 피리 적(笛)입니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고 싶습니다.”
윤종신과 함께 예능 이미지로 ‘맹꽁이 형’으로 불리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피리 부는 사나이에 홀린 아이처럼 멍하니 듣게 된다.
초기엔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노래도 많았지만 최근엔 사랑 노래와 힘든 인생을 토닥토닥해주는 노래가 주를 이루지만 가사의 깊이가 있기 때문에 양산형 노래와는 결을 달리한다.
3집 <나무로 만든 노래>의 <같이 걸을까>도 힘내라고 말해주는 노래다. 무한도전 BGM으로 삽입돼 (평창 동계올림픽 염원 기념으로 멤버들의 스키점프대를 오를 때 삽입된 노래) 대중에게 다시 알려진 노래다. 잔잔하지만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감성적인 가사 때문에 새까만 밤에 들으면 위험한 곡.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까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우린 이미 오래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니까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 채 다시 일어나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