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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20. 2017

한효주느님

백종열- 뷰티 인사이드

얼마 만에 본 멋진 멜로 영화인가. 한효주의 존재만으로 빛나는 <뷰티 인사이드>는 중반 부분 눈물까지 찔끔 날 정도였다. 눈물의 정체가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진 건지, 연애를 하고 싶어서인지, 한효주가 예뻐서인지(<- 이게 유력)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짧은 시간이지만 배우 故 김주혁을 봐서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건축학개론>을 끝으로 한국에서 만든 멜로 영화는 죄다 형편없었다. 물론 <건축학개론>은 410만 명을 동원해 로맨스/멜로 영화 중 두 번째로 흥행하긴 했지만 이후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누적 210만여 명)을 제외하면 성공한 한국 멜로 영화는 <뷰티 인사이드> (2015년, 누적 205만여 명)을 제외하면 없다. 


*1위는 2012년 개봉한 <내 아내의 모든 것> (459만여 명)
   
사실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 감정이라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국 멜로 영화가 침체기인 가장 큰 이유는 민망한 작품성이다. 그리고 최근 저력 있는 멜로 영화가 재개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04년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2015년 재개봉해 2016년 초까지 약 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1995년 작 <러브레터>도 무려 세 번째 개봉임에도 7만 4천여 명을 끌어모았다. 워낙 명작이라 다시 보고 싶은 마음과 젊고 어린 관객들에겐 이 영화 자체가 신작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 연령층의 변화도 멜로물의 수난 이유 중 하나다. 아련한 사랑 이야기의 주된 수요층인 20대 관객이 전체 비율 면에서 줄어들고 있다. CGV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05년 전체 영화 관객 중 60.6%를 차지했던 20대는 2015년에는 35%로 줄었다. 30대 관객도 33.0%에서 28.3% 감소했다. 이에 반해 40~50대 관객은 25.1%에서 31.5%로 늘었다. 
   
이런 추세는 멜로 영화에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영화에 빠지지 않는 조미료가 사랑이란 걸 생각하면 언제든 반등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뷰티 인사이드>는 <범죄 도시> 버금가는 ‘먼치킨’ 영화다. 123명의 ‘우진’을 모조리 단 일합에 끝내버리는 이수(한효주)의 미모는 5관을 돌파하며 여섯 명의 장수를 벤 관운장, 83만 대군 속에서 작은 주인 아두를 구해오는 조자룡, 장판파에서 백만 대군을 호통으로 물리친 장익덕에 버금간다. 


우진 쪽에서 미모를 겸비한 많은 인원이 이수와 경합하기 위해 나섰지만 추풍낙엽처럼 쓰려졌다. (우진 쪽 오호대장군=박서준, 서강준, 이진욱, 이동욱, 유연석) 한효주의 미모가 가장 큰 이유지만 감독의 역량도 한몫했다. 

한효주 올킬


백종열 감독은 원래 최정상급 광고 연출가로 유명하다. 그에게 이 영화를 맡긴 것은 멜로에서 요구하는 섬세한 연출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와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의 장면이 광고처럼 아름다운 것은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영화는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필터 등의 인위적인 조명을 피하고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런 감각적인 연출은 우진(이진욱)과 이수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가장 유명한 마지막 키스신, 그리고 우진(故 김주혁)이 이수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때 도드라진다. 앞에 두 장면은 딱 봐도 알 수 있으니 눈 오는 날 언덕길을 오르며 이수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을 잠시 보자. 


헤어지는 장면을 풀 샷으로 잡아 쓸쓸함을 더했고 기울어진 도로는 심란한 우진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런 감정을 깨지 않으려고 롱 테이크로 촬영했고 이때, 故 김주혁의 구부정한 라인을 부각하여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입한다. 아련하게 켜져 있는 주황색 가로등과 복잡하게 가로질러 있는 전기선 역시 뭔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이 눈물 흘린 이유는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의 합이 관객의 감정을 잘 모아주고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감정을 터뜨리는 건 연기자의 연기다. 많은 사람이 이 장면에서 한참 먹먹해졌을 거다.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두 가지 정도 재밌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외모와 마음. 다른 하나는 다름. 


외모와 마음
 

흔히 외모는 예선, 마음은 본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갈 수 있다는 의미다. <뷰티 인사이드>가 비판받는 것 중 하나가 ‘왜 이수는 잘생긴 우진과의 만남에서만 애틋한 분위기를 연출하느냐?’이다. 못생긴 우진은 “미안. 좀 불편하게 생겼지?” 정도의 개그 캐릭터에 불과하고 사랑, 불안, 헤어짐 등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한 소재를 담당하는 것은 언제나 잘생긴 우진이라는 것은 영화가 말하는 범성애적 사랑 혹은 제목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이 강조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도 납득이 되긴 한다. 하지만 뷰티 아웃사이드여야 뷰티 인사이드가 가능하다는 팩트 폭력을 영화는 보여준다. 

ㅅㅂ...

 그런 비판보다는 모습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는 이 커플의 모습을 보면 군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군대에서 들은 이야기라 신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예전에 인터넷 보급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때, 채팅으로 다른 사람과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던 남자가 있었다. 퇴근 후 채팅방에 들어가 항상 이야기하던 사람이 로그인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고 한다. 그 당시 캠이나 홈페이지가 없던 시절이라 그 남자는 상상 속의 이성을 상상하며 매일매일 채팅을 하다가 어느 날 실제로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단다. 상대편도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만남을 허락했고 장소를 조율했다. 
   
대망의 D-day. 약속 장소에 나온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상대방도 놀란 기색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왕 만난 김에 그동안 나눈 채팅을 토대로 같이 시간을 보냈고 동성임에도 불구하고 채팅 당시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 전혀 사그라들지 않아 연인이 됐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수가 "나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 이렇게 매일 다른 모습이어도 괜찮아. 다 같은 너니까. 난 이 안의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범성애 상징

다름


"이 의자는 사용된 목재가 조금 특별해요.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참 신기하죠?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이젠 또 이렇게 의자였다가." 
   
이수가 우진과의 첫 만남에서 하는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매일 외모가 바뀌는 우진뿐만 아니라 이수도 우리도 매일 바뀐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나 애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에서 오탕와의 “왜 우리는 처음이란 걸 두려워할까요? 인생에 있어서 하루하루가 모두 처음인데. 매일 아침이 새롭죠. 우린 결코 같은 하루를 두 번 살 순 없어요.”라는 대사처럼 말이다. 

이틀 전에 먹은 점심과 어제 먹은 점심의 메뉴가 다르고, 일주일에 전에 본 영화와 이번 주에 본 영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바뀐다. 좋게 말하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우월하다. 문제는 남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 혼자만 우월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처럼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면 나는 항상 발전하지만 남들보다 발전하지 못하면 사실상 도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경우 우리의 삶을 피폐해진다. 

과거는 후회와 감상의 대상이고 미래는 불안과 기대감의 주체다. 현재가 아닌 삶은 2X2=4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부분은 과거는 후회고 미래는 불안인 경우가 많다. 과거와 미래에 집착할수록 현재의 존재감은 마모된다. 물론 이런 생각 없이 ‘오늘 죽자’라는 식의 삶은 곤란하지만 과거와 미래에 집착할수록 현재에 몰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수가 우진이 헤어진 이유는 있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다. 이 둘에게 보통 사람이 쓴 <불안>이라는 책을 소개해주고 싶다. 범인(凡人)이지만 글 꽤나 쓰더라. 

PS- 우진 역을 맡았던 고아성의 키스신이 첫 키스신이었다고 한다. 키스신이 끝나고 고아성이 ‘첫 키스신이에요’라고 말하자 한효주가 ‘하필 제가....’라며 미안해했다고.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의 모티프가 된 영화라고 한다. 색감이나 잔잔한 분위기가 일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느낌이긴 하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경영 씨가 등장한다. 얼마 나오진 않지만 이 아저씨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진짜 ‘이경영 쿼터제’ 필요한 거 아니야? 안 나오는 영화가 없다. 

아재요...



<뷰티 인사이드> 최고의 명장면. 파스텔톤 색감에 체코의 배경,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한효주'의 존재가 만들어낸 이 장면의 OST는 CITIZENS의 <True Romance>이다.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온도 차이가 있다.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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