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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25. 2017

역사 영화라는 것

이원태-대장 김창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항상 갈리기 마련이고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 김창수>도 역사적 인물의 삶을 추적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한민국 건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김구 선생의 청년기를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과 비평 모두에 실패했다. (유년 시절 이름은 김창암이었으나 동학에 입교하면서 이름을 김창수로 바꿨고, 이후 37세 때 김구로 개명) 

김창수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때려죽인 후 체포된다. 결국 재판장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김창수는 조선인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면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곧 김창수가 사형이 집행된다. 사형 집행이 진행되던 때 고종이 전보를 보내 김창수를 사면하고, 김창수는 사면받은 후 탈옥한 후 조선 땅을 바라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김구하면 건국의 아버지, 임시정부의 수장, 독립운동가로 배웠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영화를 봤었다. 끝으로 갈수록 다소 내용이 부실해지고 감옥이 감옥 같지 않았고 송승헌의 연기가 다소 아쉬웠지만 그냥저냥 볼만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증이 틀리거나 해석에 여지가 있으면 공격받기 쉽다. 그렇게 기자, 평론가 평점은 10점 만점에 5점을 넘지 못했고 흥행도 참패했다. (손익분기점 25만 명. 최종 40만 명)
   
자잘한 고증은 넘어갈 수 있지만 굵직한 사건에 대한 고증이나 평가를 넘기기 어렵다. <대장 김창수>에서 김창수는 치하포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며 일본인을 맨주먹으로 죽인다. 실제 <백범일지>에서는 젊은 시절 백범이 주막에서 한국인으로 위장한 일본인을 발견하고, 그를 맨주먹으로 때려 넘어뜨린 후 난도질해 죽였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일본인의 피를 마셨다고 한다.


내 발에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검광을 번쩍이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면상에 떨어지는 칼을 잽싸게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걷어차서 거꾸러뜨리고는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았다. 칼이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 칼을 집어 들고, 왜놈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마구 난도질을 쳤다. 피가 샘처럼 용솟음쳐 마당에 흘렀다. 나는 손으로 피를 움켜 마시고, 얼굴에다 처발랐다.


만약 이 일본인이 정말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사료를 살펴보면 김창수가 죽인 조스케 (또는 쓰치다 조료)가 명성황후 시해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명성황후 살해범들은 일본으로 옮겨져 수감되어 있다가 치하포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주 전에 석방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백범일지 외에 조스케가 육군 중위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조스케는 일본 측 기록에 약장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치하포 사건을 백범 김구의 흑역사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무고한 일본 시민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때려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창수가 경인선 건설 노역을 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백범일지에도 경인선 불법 노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 속에서 간수장 강형식 (송승헌) 과의 담판을 지어 학교를 열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역사 영화가 가장 조심해야 할 ‘국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희의 담판과 버금가는 조선인을 계몽시키는 선생과 간수장과의 담판은 안 그래도 부족한 악역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나름 강하게 악역 역할에 충실했던 강형식은 이 사건 이후로 전혀 악역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직 악역으로서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김창수가 복역했던 인천 교도소가 뭔가 감옥 느낌이 나질 않는다. 좀 더 당시 일본의 악랄함을 느낄 수 있게 교도소라는 공간의 콘셉트를 잡았어야 했는데 제기도 차고앉아서 대낮에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할 정도로 선진 감옥이다. 밥을 먹는 곳은 저잣거리가 생각나는 디자인이라 일제시대는 아니지만 당시 책으로 읽고 상상해왔던 감옥의 고통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비난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면은 사형 집행 전에 보여준 조진웅의 연기와 죄수들이 함께 모여 간수에게 저항하는 장면이다. 



사실 <대장 김창수>에서 조진웅의 연기는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마지막 사형 집행 장면에서 죽음이 두려워 떠는 인간적인 모습과 간수 역을 맡은 유승목이 (이영달 역) 눈물을 닦아주자 어떤 위안은 느껴 안정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연기에선 호불호가 갈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애초에 조진웅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죄수들이 함께 모여 간수에게 저항하는 장면이 두 번째 주목할 만한 장면인 이유는 순전히 최근 읽은 <호모 데우스>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장 김창수>에서 감옥의 다수의 죄수들은 왜 소수의 교도관에게 대들지 못할까? 이 영화뿐만 아니라 다수의 을들은 소수의 갑에게 꼼짝없이 당하는 것일까? 다수의 힘이 더 강력한데 말이다.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법을 모른다고. 협력하는 방법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다 해도 성공의 과실은 소규모 정치인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곧 리뷰할 <호모 데우스> 독후감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그 책을 읽어서 그런지 저 장면이 참 찡하더라. 자신에게 가해질 폭력이 두려워, 협력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당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비록 범죄자 집단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 제대로 된 재판 한번 못 받아 본 억울한 사람들이기에) 함께 손을 엮고 갑에게 대항하는 장면은 나름 의미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대장 김창수>의 의의는 성역이었던 김구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공부하면서 ‘치하포 사건’을 비롯해 ‘김립 피살 사건’, ‘옥관빈 피살 사건’ 등 김구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사건을 알게 됐다. 물론 한 인물을 평가하는데 단순히 몇 가지 사건 가지고 만 해석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모른 채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취사선택한다면 ‘그들’과 우리가 다른 게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의 어두운 면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썩 좋진 않다. 
   
PS-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이유는 김구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시조를 안 친구들은 자기 가문의 유명한 조상을 자랑했었다. 김해 김 씨라면 ‘나는 김유신 장군의 자손이다’라던가 경주 이 씨면 ‘우리 조상은 박혁거세야’라며 자랑 및 누구 조상이 더 뛰어난가 다툼이 있었는데 나는 ’ 딱히 자랑할 만한 조상이 없었다. 이에 대해 엄마한테 투덜대자 엄마가 ‘김구가 너희 조상이야’라고 말해주는 게 아닌가? 김구라면 김유신이나 박혁거세에 밀릴 게 없다고 판단한 나는 신나게 김구가 우리 조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한 친구가 ‘어. 내 조상도 김구인데 너도 안동 김이야?’라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부안 김가'라고 말하자 ‘김구는 안동 김 씨일 텐데?’라고 되물었다. 집에서 찾아보니 내 조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아니라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김구(金構, 1649년~1704년)였다. 나의 조상 김구는 숙종 27년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신사대처분 때에도 홀로 의연히 중론에 반대했을 정도로 임금을 충직하게 섬겼으며, 국왕의 위력에도 굽히지 않고 의리에 따라 처신하였다. 병서와 도가류에 정통했고 문장이 간결했으며 글씨가 힘찼다고 한다.


김구의 아들 김재로


PS2- 이제 한국 영화를 볼 때 이경영이 나오면 웃음부터 나온다. 이제 이 양반이 안 나오면 뭔가 어색하고 섭섭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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