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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Jan 09. 2018

원래 가족이란 이런 거야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리틀 미스 선샤인

2008년과 2009년 한국에서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열풍이 불었다. 교보문구 북뉴스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자사 소설 누적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엄마를 부탁해>가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었다고 발표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해당 소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각종 매체에서 신경숙 작가와 인터뷰를 해댔고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어느 서점에나 밀레의 <만종>과 비슷한 그림이 겹겹이 쌓여 있는 신경숙 작가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ps- 사실 이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가 밀레의 <만종>을 패러디한 그림이다. 잠깐 아는 척을 하자면 살바도르 달리는 고요한 밀레의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불안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달리는 집착 했다. 달리는 <밀레의 만종에 얽힌 비극적 전설>이라는 책에서 ‘밀레의 그림은 평화보다는 슬픔이 먼저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달리 눈에는 부부 가운데에 있는 감자 바구니가 아기의 관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당시 달리의 생각을 초현실주의자의 환각이나 망상쯤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루브르 박물관이 투사 작업으로 감자 바구니를 조사한 결과, 이 감자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는 관 모양의 직육면체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아기의 관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당시 친구와 서점을 갔을 때였다.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겹쳐있는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내가 친구에게 저 책을 읽어봤는지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자기는 저런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저런 이야기가 뭐냐고 묻자 친구는 대답했다. 
   
“가족 이야기. 제목 봐. 엄마를 부탁해. 엄마 얘기로 실컷 신파 얘기하고 가족의 중요성이니 뭐니 이야기하면서 눈물 자극하겠지. 나는 그런 가족이랑 안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해.” 


우리는 가족 하면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개개인은 고귀하고 사랑스러울까? 물론 만나면 웃고 떠들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가족들도 많겠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가족들도 꽤 많다. 사실 불행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의 수만큼이나 많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자신이 만든 9단계 성공법에 취한 아빠, 이 주일 내내 치킨만 식탁에 올려놓는 엄마, 니체에 심취해 묵언수행 중인 큰아들, 미인 집착증 작은 딸, 젊었을 땐 최대한 많은 여자와 자라고 권하는 마약 중독자 할아버지, 그리고 자살에 실패한 우울증 환자이자 동성애자 삼촌. 



이 가족의 구성원을 면밀히 살펴보면 도무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가족은 작은 딸이 2일 후 캘리포니아 Redondo 해변에서 열리는 어린이 미인대회인 ‘Little Miss Sunshine’에 나갈 자격을 얻게 되자 하나로 뭉치게 된다. 그들은 부족한 재정 상태로 인해 비행기를 포기하고 노란색 폭스바겐 미니버스로 800마일에 달하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후 갖가지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으면서 결국 이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대략적인 스토리만 보면 기존의 가족 이야기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애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결코 고귀하지 않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갖가지 이유로 가족들과 언성을 높이곤 한다.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이제 결혼해야지.’ ‘어디 아들은 이번에 엄마 밍크코트 사준다고 하더라.’ ‘엄마는 왜 만날 짜증만 내?’ ‘됐어. 아빠랑은 말이 안 통해.’ 등등등. 항상 붙어 있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가족에 대해 무관심한 현실을 <리틀 미스 선샤인>은 꼬집는다. 그리고 결국은 ‘가족’이라는 진부하지만 당연한 결론에 다다른다. 


아들이 색맹인지도 몰랐던 가족의 무관심을 해결한 건 조용한 위로였다.


이 영화가 가족 간의 무관심, 증오를 이야기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이유는 영화가 전반적으로 밝은 색 톤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색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란색은 영화 포스터를 지배하고 있는 색깔이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인 미니버스의 색깔이다. 심리학에서 노란색의 상징적 의미는 회복에 대한 의지이다. 또한, 걱정이 없고 행복하며 명랑하고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이 모두 모이고, 가족이 첫 단합을 이루어내는 노란색 미니버스는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족이 다 함께 힘을 합쳤을 때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미니버스


이런 상징적 의미를 지닌 버스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었음에도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당혹스럽거나 재밌거나. <리틀 미스 선샤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빤한 신파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순간순간마다 이야기를 비튼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자신의 저서 <웃음>에서 웃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인 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결국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는 결점이다.” 
  
즉, 유연하고 생동하는 삶을 망각하고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은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모습은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할아버지를 위해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서 올리버가 춤을 출 때 극대화된다. 꼭 확인해보시길.



ps- 원제가 <리틀 미스 선샤인> 임에도 국내에서는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개봉됐다. 굳이 어순을 바꾼 것은 큰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스 코리아, 미스 유니버스 등의 미스 뭐시기라는 호칭에 익숙한 국내 관객을 위함이라고 한다. 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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