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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Jan 23. 2018

너네도 3 포니?

알폰소 쿠아론- 칠드런 오브 맨

실제로 많은 사람이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토피아적 모습보다 디스토피아적 모습이 흥행 요소가 더 많은지 모르겠지만 최근 영화를 살펴보면 확실히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쟁, 극우정당,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철저한 감시 등은 <V For Vendetta>, <설국 열차>, <칠드런 오브 맨>에서 잘 나타나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2027년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인류는 더 이상 재생산되지 못하고 세상은 파멸에 가까워진다. 뉴욕에서는 핵이 터지고 서울은 물에 잠기는 등 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유일하게 영국만이 그나마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도 불법 밀입국자들을 개돼지 취급하고 자국민을 상대로 자살약을 나눠주는 곳이다. 


개를 안고 있는 할머니가 영화의 원작인 소설 <칠드런 오브 맨>작가 P.D. 제임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한 대 사회운동가로 활약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동력 자원부에서 일하고 있다. 가끔씩 과거 만평가이자 현재 히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제스퍼(마이클 케인)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테오는 과거 사회 운동하던 시절에 만난 전 아내 줄리언(줄리안 무어)에게 납치된다. 줄리언은 피시당(Fishes)이라는 운동단체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줄리언은 테오에게 거액의 돈을 줄 테니 한 소녀를 위해 통행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테오는 줄리언의 부탁을 들어준다. 



통행증의 주인공은 흑인 소녀 키. 테오는 줄리언과 피시당 소속인 루크, 키의 보호자 미리엄과 함께 검문소로 향한다. 그러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게 습격당해 줄리언이 사망하고 나머지 인원은 겨우겨우 도망쳐 피시당의 아지트에 잠시 몸을 숨긴다. 
   
줄리언은 죽기 전 키에게 오직 테오만을 믿으라고 귀띔해줬고, 키는 줄리엔의 말을 믿고 테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한다.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테오는 피시당 간부인 루크가 줄리언을 죽이고 임신한 키를 독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테오와 키, 미리엄은 새벽을 틈타 아지트를 탈출해 재스퍼의 집으로 도망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재스퍼의 집은 피시당의 습격을 받게 되고 테오 일행의 탈출을 돕기 위해 재스퍼는 시간을 끌다가 살해당한다.



재스퍼는 죽기 전 테오에게 시드라는 협력자를 찾아가라고 조언했고, 테오는 시드를 찾아 일부러 이민자 격리구역으로 잡혀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에게 키의 임신 사실을 들킬 뻔하지만 테오의 임기응변과 미리엄의 희생으로 고비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둘은 간신히 벡스홀 이민자 격리구역에 도착하고 시드가 미리 알려준 집시 마리카의 도움을 받아 허름한 아파트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라파엘로의 작품 같은


이 아파트에서 키는 딸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테오는 모녀를 휴먼 프로젝트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내일호(tomorrow)’에 데려다 주기 위해 움직이지만 하필 그날 이민자 격리구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영국군이 반란을 막기 위해 개입하고 피시당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본 민간인과 영국군이 테오와 아이를 위해 길을 터주고 마리카는 작은 배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노를 저어 내일호가 정박하기로 한 부표에 도착한 테오는 반란 과정에서 맞은 총상으로 사망하고 슬퍼하는 키와 갓난아이가 있는 곳으로 내일호가 도착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미래호나 내일호나


영화는 성경에서 많은 상징을 가지고 왔다. 영화 제목부터가 이미 인류의 아이라는 점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지칭하는 인자(人子; Son of Man)에 비견되는 <Children Of Men>으로 영화의 제목을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천천히 영화 곳곳에 심어져있는 기독교적 은유에 대해 살펴보자.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는 가장 낮은 곳이라고 일컬어지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영화에서 18년 만에 태어나는 인류의 아이는 난민 캠프의 지저분한 숙소에서 탄생한다. 키가 테오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곳이 젖소의 축사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테오의 사촌 미술품 보호 청장은 전 세계 미술품을 모으는 ‘방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점, 테오가 줄리엔이 처음 만나는 피쉬당의 아지트도 방주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라는 점도 재미있다. 


피시당의 아지트


사촌이 테오를 보고 한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사촌은 테오에게 “피에타는 못 구했어. 가보니 이미 파괴됐더군.”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의 뜻을 지닌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도상이다. 

영화에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파괴됐지만 영화 후반부에 살아있는 피에타가 등장한다. 물론 여기서 피에타의 도상은 슬픔이나 비탄이 아닌 생명의 순환이고 희망의 메시지다.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 새 별이 하늘에 나타났다고 한다.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 떼를 돌보고 있었는데 천사들이 내려와 구주가 태어났다고 목자들에게 알렸다. 멀리서 동방박사들 역시 새로운 별을 보고 예수를 찾아가 황금, 유향, 몰약을 바쳤다. 
(마태복음 1:18~25; 2장; 누가복음 1:26~38; 2:1~20)


상상해보자. 인류를 구원할 아이가 태어났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경외의 눈빛으로 아기 예수와 동정녀 마리아를 바라볼 것이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만지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로 돌아오자. 키가 낳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서로를 향해 무자비하게 사격하던 이들 모두 슬그머니 총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난민과 군인은 모두 감격의 눈빛으로 그녀와 그녀의 아기를 응시한다. 손을 뻗어 아이를 만지는 난민과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군인의 모습은 경건하고 성스럽다. 잠시지만 전쟁은 멈춰지고 평화가 도시에 충만해진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단연 ‘양’이다. ewe, lamb, ram 등의 직접적 언급이 742번 나온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양에 비유했다. 
   
시편 100장 3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가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민자 격리구역에서 테오가 키와 인류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 다니는 장면에서 양 떼가 괜히 등장하는 게 아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친절한 배려를 엿보았다. 혹시라도 이 영화가 성경을 모티프 삼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을 위해 양 떼를 등장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양. 양도 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칠드런 오브 맨>의 OST는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교수이자 동방정교회 회원인 존 타버너가 만들었다. 대표적인 OST 이름은 ‘Song Of The Angel’, ‘Mother And Child’, ‘Mother Of God, Here I Stand’ 성스러운 느낌이 팍팍 온다. 
   
키의 아이를 받아 상징적인 아버지가 된 테오는 요한이 비견할 만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울려 퍼지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키의 아이로 인해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남은 이야기 
 

롱 테이크          

                    

<칠드런 오브 맨>은 영화 후반 감각적인 롱 테이크 신으로도 유명하다. 핸드 핼드로 찍어낸 롱테이크 장면은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면서 전쟁의 긴장감, 18년 만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자세와 표정이 자세히 묘사되면서 영화 내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마치 관객이 영화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말이다. 
   
평균 4.7초의 쇼트로 이루어진 상업 영화들이 판을 치는 이때에 <칠드런 오브 맨>은 무려 10분에 육박하는 훌륭한 롱테이크 장면을 선사한다.           

          



게르니카         

                     

테오의 사촌 미술품 보호 청장 사무실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인 <게르니카>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스페인 내전이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때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이때 1,5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는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대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 괴기스러운 분위기, 흑백 톤의 우울함은 물론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이 그름을 전시했을 때 나치 장교가 “이 그림을 당신이 그린 것이냐?”라고 묻자 피카소가 “이건 당신들이 그린 것이오.”라고 맞받아 일화는 유명하다. 이 그림이 이주민을 탄압하는 정부 밑에서 일하는 청장 사무실의 벽에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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