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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Jan 17. 2018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곽재용-클래식


영화는 대학생 지혜(손예진)가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엄마(주희; 손예진)가 젊은 시절 연애사가 담긴 편지를 보면서 시작된다. 
   
여름 방학 때 시골 외삼촌 집으로 놀러 온 준하(조승우)는 같은 마을로 놀러 온 국회의원의 딸 주희를 만나게 돼 귀신이 나온다는 집으로 놀라가고 함께 비를 맞으며 오두막에서 수박을 서리하는 등 서로 애틋한 감정을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방학이 끝나고 수원으로 돌아간 준하에게 태수(이기우)가 연애편지를 대필해달라고 부탁한다. 상대는 태수의 약혼녀. 준하는 대수롭지 않게 연애편지를 대필해주지만 곧 태수의 약혼녀가 주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태수 몰래 만남을 가지다가 태수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한 여자만 사랑하자는 주의는 아닌 태수는 쿨하게 둘의 사랑을 돕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걸려 벨트로 줘 터진다. 



이후 태수는 자살을 시도하고 준하는 그 일을 계기로 주희와 헤어지게 된다. 준하가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으로 파병을 갈 때, 태수의 도움으로 주희는 준하가 한국을 떠나기 전 기차 안에서 겨우 만나게 된다. 
   
월남으로 파병을 간 준하는 그곳에서 시력을 잃게 되고 카페에서 주희와 재회할 때 그 사실을 들키게 된다. 주희는 결국 태수와 결혼을 해 지혜를 낳았지만 태수는 금방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곧이어 준하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이 사실을 안 지혜는 짝사랑하던 대학 선배 상민(조인성)과 연인이 되자 자신의 엄마가 짝사랑했던 남자의 유골이 뿌려진 강가에 당일 데이트를 하러 간다. 상민은 그곳에서 지혜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남겨주신 목걸이를 걸어준다. 이 목걸이는 주희가 준하에게 준 것으로 즉, 과거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이 자식들에 의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준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줄거리만 봐도 알겠지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과거의 이야기이다. 사실 <클래식>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처리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인성의 연기력 때문에 현재 부분을 대폭 자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 덕분에 조인성의 연기력은 도마 위에 올랐고 조승우의 연기력은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물론 비주얼 차이도 있지만 조승우(80년생)와 조인성(81년생)의 별로 차이 나지 않는 나이 + 너무 차이 나는 연기력 때문에 조인성 측에서도 특별출연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조인성의 연기를 보면 왜 이런 논란이 나오는지 잘 알 수 있다. 똑같이 오글거리는 연기를 하더라도 조승우는 특유의 익살과 톤으로 대사와 감정을 잘 살리지만 조인성은 장수원의 “괜찮아요?” 연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한 줄 평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촌스러워,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영화의 첫 부분, 엄마가 쓴 편지를 소리 내어 읽던 주희가 중얼거린 이 대사는 감독이 관객에게 강제한 그리고 스스로도 느꼈을 법한 영화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엽기적인 그녀>로 이름을 알린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은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소나기>에서 잔망스러운 소녀가 죽지 않았다면 그 뒤로는 어떻게 됐을까라고 상상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클래식>인 것이다. 부유한 서울 소녀와 시골 소년이 만난다는 설정, 비를 맞아서 건강이 악화된다는 설정 등은 현대판 <소나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클래식>의 OST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故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이등병의 편지’ 등. 너무 좋은 노래들을 적절한 장면에서 잘 사용해 관객의 감정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경희대학교라고 추정되는


<클래식>을 보는데 두 번 눈물을 흘렸는데, 두 번 모두 故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였다. 한 번은 월남으로 떠나는 준하와 주희가 만날 때 그리고 아마 모두가 울었을 월남에서 돌아온 눈먼 준하가 주희와 만났을 때.

 


주희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며 감정을 절제하다가 결국 넘쳐흐르는 보고픔을 이기지 못해 주희를 바라보는 준하의 연기와 준하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슬픔을 흐느끼는 주희의 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감독은 곳곳에 장치를 통해 주희와 준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주희와 준하가 처음 함께 간 곳이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이다. 폐가는 사람이 살지 않은, 인적이 끊어진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런 곳에서 시작된 둘의 애틋한 감정은 둘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주희와 준하가 만나는 수원 거리 극장 앞에 붙여진 ‘클레오파트라’, ‘로마의 휴일’ 등의 고전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그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힘없이 반짝이는 주희 집 앞의 전등, 회색 톤의 불안 불안하게 서 있는 주희의 집 건물 등은 모두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은연중에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다음 대에서 이어진 사랑은 준하나 주희(물론 똑같은 배우이지만) 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둘의 사랑은 신분 차이로 인해, 우정으로 인해 실패했고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준하는 시야를 잃었고 주희는 영화에서 묘사되진 않지만 정략결혼에 승낙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허탈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푸근한 시골 풍경에서 시작된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70, 80년대 아련한 추억과 만나 이 시대의 ‘클래식’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오글거리는 멘트들, 조인성의 발연기, 억지로 엮은 것 같은 상민과 지혜의 사랑 모두 ‘클래식’하다는 면죄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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