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Feb 09. 2018

4시간짜리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 에드워드 양


영화는 첫 시작부터 불안하게 시작한다. 주인공들이 문 너머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데 관객은 그 장면을 정면에서 보지 못하고 문 뒤에 숨어서 겨우 목소리나 들을 뿐이다. 주인공들이 하는 이야기도 썩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샤오쓰(장첸)의 아버지가 학교 측에 입학 점수가 부족한 아들을 넣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곧이어 영화는 관객들에게 4시간의 여정에 빛을 비춰줄 단서를 제공한다. 아래의 내용이 스크린에 맺힌다.   

  


1949년, 수백만의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피난했다. 국민당 정부가 내전에서 공산당 세력에게 패배한 것이다. 이 험난한 시기에 자라난 아이들에게는 부모 세대의 불안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동류의식을 찾아 거리의 패거리를 규합하고 서로의 안전을 도모했다.     


뉴욕 타임스가 “인생의 하루를 바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평했다. 4시간, 정확히는 3시간 57분의 러닝타임 때문에 인생의 하루는 투자해야 한다. 마치 뮤지컬처럼 영화관에서도 1부와 2부로 나눠 상영한다. 집에서 본다면 몇 번이고 스페이스바를 눌러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엉덩이를 들썩 거릴 것이다. 그래도 뉴욕타임스의 평가처럼 인생의 하루를 바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대만 최초의 미성년 살인범을 소재로 만들었다. 샤오쓰는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옮기게 돼 ‘소공원’ 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양호실에서 밍(양정이)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샤오밍과 샤오쓰


밍은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 친구이다. 허니는 밍을 차지하기 위해 라이벌 조직인 271파 보스를 죽이고 남부로 은둔해 있는 상태이다. 샤오쓰는 밍에게 연정을 품지만 허니의 여자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거리를 둔다. 얼마 뒤 피신했던 허니가 돌아오고 샤오쓰는 그를 친형처럼 따른다. 하지만 271파의 샨동은 허니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고 이에 격분한 소공원 파는 271파를 살육한다.     


복수에 참가한 샤오쓰는 결국 퇴학까지 당하는데 이후 밍이 군 간부의 아들 샤오마와 사귄다는 소문을 듣는다. 이 소식을 들은 샤오쓰는 샤오마를 죽이기 위해 찾아가지만 샤오마 대신 밍을 만나고 결국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최대한 짤막하게 간추린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의 줄거리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이 영화가 이토록 가슴 아리고 연민 이상의 복잡한 감정의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가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당시 대만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다.    

 

소년과 소녀의 성장 무대는 식민과 계엄, 냉전이 상주하는 고착된 공포의 공간이다. 1949년 이후 국민당 정권은 대만을 ‘자유중국’으로써 대륙을 대신하여 중화를 대표하는 국가임을 강조했지만 1971년 UN으로부터 축출, 미국-일본과 단교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된다. 또한, 중국 대륙의 부상으로 1980년대 제기된 일국양제론을 실질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만은 스스로를 국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대륙에서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중국에 속한 지역으로 봐야 할지 모호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게 내주고 대만으로 패퇴한 장제스가 국민당 군대를 사열하는 모습


이러한 만성적인 불안함과 정체성의 혼란은 대만인들에게 자신감 결여, 불안감 등을 심어주었다. 대륙의 영토와 10억 인구를 잃은 상실감과 그로 인한 무기력을 성장하는 대만인들은 몸으로 겪었다. 국민당 정부는 이런 불안감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적인 통치방식을 선택한다.   

  

대만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청 왕조 등에 의해 오랜 식민의 역사를 겪었다. 이후 50년간의 일본 제국 식민 경험이 끝나자마자 국민당에 의한 재식민화가 진행되었다. 국민당 정부는 38년간의 계엄, 초법적인 장기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이로 인해 대만인들의 공포와 불안감, 수동적인 나약함은 계속된다.     

역사학자 김준은 “중국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유지되던 국가기구가 대만이라는 일개 지방에 덮여 씌어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국공내전을 마친 국민당의 200만에 달하는 인구의 대만 유입으로 생성된 대만 정부는 대만 원주민에겐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외부의 침입이었다. 대륙에서 대만으로 넘어온 중국인들 역시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대륙을 빼앗긴 상실감으로 인해 심리 상태는 불안정했다.     

특히 국민당 정권은 공식적으로 대만의 첫 자립 정부였다. 기나긴 식민 생활을 청산한 광복의 환희와 자립 정부의 기대에 철저하게 배신당한 대만인들의 심리 상태는 암담함 그 자체였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일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조국을 바라본 대만인의 물리적, 심리적 외상. 

1930년 대만 원주민들이 140명의 일본인을 살해하자 일본인들이 원주민들이 사는 산속에 독가스탄을 떨어트려 1,000여 명의 원주민을 살해한 사건. 대만 총독부가 설치되고 1900년까지 다섯 해 동안 일본 식민 통치에 맞서 싸우다가 처형된 1만 2,000여 명의 원주민. 



이후 자행된 일제의 경찰 통치, 황국신민화, 문화통치, 개성명 운동(=창씨개명), 대만 본토 기업의 성장 제한, 식민 자본주의 경제체제 완성 등의 일련의 사건을 대만인들은 겪어왔다. 그 이후 바로 시작된 국민당 정부의 폭압으로 인해 대만인들의 트라우마는 치유될 시간이 없었다.     

양오아가 1988년 <글 세계>에 투고한 글 <대만의 빛과 그림자>는 대만인들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했다.

     

중국 현대사 속에서 대만 민중만큼 역사에 농락당한 사람들은 없다 일찍이 청나라에 의해 일본으로 할양되고 일본에 대한 격렬한 저항 끝에 진압되고 황민화 정 책에 의해 민족의 얼까지 버릴 것을 강요받고 일군이 패전의 위기에 몰리자 일군의 소모품이 되어 대륙 동포나 아시아 민중과의 대결을 강요받았다. 광복 후에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국민당 정부의 폭정 아래서   '2·28 민변이나' ' '50년대 사건으로 ' 엄청난 희생을 지불했으며 그때부터 40년간 계엄령과 공포정치 아래서 절망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왔다.    

국민당 정부의 계엄령이 선포된 1949년부터 1954년 혹은 1959년 까지를 백색 공포, 혹은 백색테러라고 부른다. 1959년까지 10여 년간 4천 명이 총살당했고 만 명 이상이 감옥에 갇혔다. 전체 피해자는 14만여 명에 이른다. 1960년부터 1987년까지 행방불명된 사람만 해도 126,875명에 달한다.     

2.28 사건 이후 국민당은 철저한 군대식 반공정책을 이용해 국가 폭력을 자행한다. 이 기간 동안 국가총동원법, 징치 반란 조례, 동원감란시기 비첩숙청조례, 대만지구 계엄시기 출판물 관제변법, 비상시기 인민단체법 등 탄압법이 차례차례 발포된다.     

*2.28 사건- 린장마이라는 민간인을 경찰이 총신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강압적으로 단속하자 시민과 경찰이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천원시라는 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으면서 국민당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번진다. 이에 대만 정부는 3월 8일부터 일주일간 진압과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한다.    

 

이를 구하이광(股海光)은 국민당 시기 계엄의 공기를 회고하는 글을 1987년 작성한다.  

섬 전체에 공포가 없는 곳이 없고, 일종의 본능적인 반응을 이루어 이러한 반응이 마치 자동경보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이 국민당에 대하여 감히 반대하는 일들을 저지시키는데, 이러한 것은 단지 말하는 것도 예외가 아닐 정도이며,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국민당이 어떻게 그 권력을 사용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대만인이 받은 심리적 타격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공포 및 냉담을 초래했다. 그리고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샤오쓰와 친구들이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가옥의 천장에서 일본도를 찾아내는 장면이나 국가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받고 돌아온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성을 잃고 둘째 아들을 줘 패는 장면은 식민과 전쟁, 계엄령이 유발한 폭력과 공포가 시민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청소년 세대는 성숙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미숙한 어른이 된다.     

체제의 폭력은 미숙하기 때문에 더 과격해지기 마련이다. 다 성장하지 못한 미완의 신체를 야구 배트나 칼 총 같은 도구로 보완하고 성인 수준의 폭력을 완성하는 소년. 이는 대륙을 잃은 국민당 정부의 군대가 강대국에 의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대만은 미국에 경제, 군사적인 원조를 받으며 자립의 힘을 잃고 ‘의존’함으로써 생존했기 때문이다. 샤오쓰의 친구 샤오마오는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목소리로 미국인인 엘비스 노래를 부른다. 미국의 대중문화는 제국주의 열망을 숨긴 채 문화적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엘비스의 <don't be creul>가 중산당에서 열창될 때, 217파 보스 샨동의 비열함에 의해 하니는 어둠 속에서 살해된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밤 샨동에 대한 소공원파의 복수극이 펼쳐지는 장면과 그날 밤 집에 찾아와 아버지를 고문하러 끌고 간 공무원들의 장면 사이에서 첫째와 둘째는 이 영화의 영제목인 brighter summer day라는 가사를 들으며 문법에 맞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문화의 압도적인 힘은 청소년 세대는 물론 부모세대까지 ‘아메리칸드림’의 욕망을 심어준다. 샤오쓰의 부모는 공부를 자하는 첫째에게 “너는 꼭 미국에 가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나약한 아버지 어머니 세대, 그런 기류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청년들이 어른 흉내를 내야만 했던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렇게 소년 소녀는 빨리 조숙해졌지만 그들의 성장은 불안정했다. 미숙함과 조숙함은 대만 사회를 관통하는 단어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 당시 중학교 1학년 생의 나이는 국민당 체제의 대만과 같은 나이이다. 당시 국가와 소년은 2.28사건과 백색공포라는 유년기를 막 지나친 상태이다. 그때 소년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싸우고 있었다. 마치 어른처럼. 14살의 샤오쓰와 샤오마의 키스 장면은 조숙함을 넘어선 조숙함을 보여준다.  


밍도 극 중에서 6명의 남자와 교제한다. 소공원파의 보스 하니, 소공원파의 2인자 약빠리, 217파의 샤오허, 주인공 샤오쓰, 사령관의 아들 샤오마, 그리고 유일한 성인인 젊은 의사.     




샤오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당하게 크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초라하다. 영화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항상 어둡고 어깨는 구부정해 있다. 삶에서 그런 정의, 희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의 모든 소년 소녀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약빠리는 샤오밍과 치정을 숨기기 위해 샤오취를 만난다. 샤오취는 약빠리와 관계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샤오마와 눈이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샤오밍의 배신으로 충격받고 일탈적으로 샤오쓰와 교제한다. 그 자체로는 불완전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국민당 정부와 소년 소녀들은 묘하게 닮아있다.     

이성에게 의존하던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을 과시하던 말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권력과 힘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가치는 없었다.     



영화 배경의 중심부는 타이페이 고령가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표준어를 쓰고 소년들이 군부대를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고령가는 외성인들을 위해 조성된 권촌이기 때문이다. 권촌은 정부에서 외성인들을 위해 마련해준 공간으로 주로 공무원, 군인들이 집결하던 장소이다. 이곳은 영화 속 샤오마, 샤오마오의 집처럼 일본인들이 남긴 집들이 남아있는,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의 주거 집단과 겹치기도 한다. 즉, 이 지역은 두 번의 직접적인 식민화의 상징이며, 민족적 분리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거기다가 이 지역의 사람들은 권촌 외부와는 분리되는 특별한 집단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고형을 두고 왔다는 상실감과 명절에 찾아갈 무덤이 없는 곳이라는 대만지역에 대한 낯섦, 그리고 우월의식 등이 포함된다. 또, 군인들의 주거 비율이 높기 때문에 군사 문화를 부모와 이웃으로부터 체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렇게 갈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통을 배운 소년은 허니였지만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래서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은 어둡다.     

등장인물은 밤에 돌아다니며 불 꺼진 방안에 있다. 샤오쓰는 영화촬영소에서 훔쳐온 손전등으로 공간을 밝힌다. 손전등으로 밝혀진 부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이는 주변에 칠흑 같은 어둠이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빛을 샤오쓰가 어둠 속에서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게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준다.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빛은 선이고 어둠은 악이다. 야구 배트를 이용해 학교의 전구를 깨트리는 행위는 샤오쓰의 타락을 의미한다.


빛을 의미하는 손전등을 촬영장에 다시 갖다 놓은 저녁에 샤오쓰는 밍을 살해한다. 샤오밍은 샤오쓰가 자신을 바꾸려 하자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해서 안심하는 건 이기적인 것 아니니? 날 바꾸겠다고? 나는 이 세상과 같아. 세계는 바뀌지 않아.     


이에 샤오쓰는 일본인 여자가 남기고 간 자살용 칼로 샤오밍을 찌르며 “넌 엉망진창이야”라고 소리친다. 시대의 슬픔과 폭력이 삼킨 14살 소년과 폭력에 의해 삼켜진 소녀의 모습은 사무치게 슬프다.   

      

선을 의미하는 손전등을 일본 무사가 칼을 차듯 지니고 있는 모습에서 혼란과 슬픔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로튼 토마토 지수 1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