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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8. 2017

최고의 엔딩 씬

봉준호 - 마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었는데 몇 가지 감정을 느꼈었다. 


-김혜자의 연기는 '혜자'스럽다. 


- 원빈은 바보 역할을 해도 멋있다. 


- 엄마란 어떤 의미로든 대단하구나.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름 신박한 해석을 친구에게 들었다. 


영화 내내 혜자(김혜자의 극중 이름이 혜자다.)는 아들 도준에게 몸에 좋다는 약과 허벅다리 부분에 침을 놓는다.


(이 장면에서 소변을 보는 도준의 '그 곳'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도준이 소녀(문아정)를 죽이게 되고 그 혐의로 붙잡혀 유치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도준은 5살 때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약을 먹인 것을 기억해 낸다. 


영화를 보면 초반부와 후반부에 방에서 같이 누워있는 혜자와 도진의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도진의 위치가 살짝 다르다. 초반부에는 엄마를 뒤에서 안을 수 있게 누워있고, 후반부에 기억을 찾고 나서는 등을 돌려 누워 있다. 이런 섹슈얼한 장면은 금기시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혜자가 도진과 '잠자리'에 들었다는 상상이다. 5살 때 농약을 먹고 죽을 뻔한 도진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혜자가 기억을 잃어버려 바보가 되는 약과 침을 계속 놓는 것이다. (농약을 먹고 살아난 시점부터 바보가 됐을 수도 있다.) 그렇게 키우다보니 너무 예쁘게 큰 도진을 보고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되고 도진을 범하고 그 기억을 잊게 하려고 침과 약을 계속 먹이는 것이다. 


정확한 기억을 잊은 도진이지만 무의식 저편에 '여성 혐오'의 감정이 싹트고 쌀을 얻기 위해 몸을 판다는 문아정이 자신을 바보라고 놀리자 이런 저런 감정이 겹쳐 문아정을 죽인 것이다. 그 이후 약과 침을 맞지 못하니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도진은 어렸을 때 혜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까지 기억하게 낸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의 혐의를 풀어줄 것이라는 것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서도 그렇고 혜자의 부도덕한 행위를 숨기려면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자신을 엄마 곁에 두어야 하니까.


(우리 아들이 안그랬거든요~)

도준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쓸 종팔이를 본 혜자는 정말 펑펑 운다.


"너...부모님은 계시니? 엄마...없어?"

"울지마요.."

정말 불쌍해서 울었고, 자신의 죄를 뒤집어 써야 하기에 미안해서 울었고, 엄마가 없으니 너의 무죄를 위해 뛰어줄 사람이 없구나란 안심의 눈물이었으리라. 



혐의가 다 풀리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려고 여행을 가려는 혜자에게 도진은 엄마가 가지고 있던 침 박스를 주며 이렇게 얘기한다. 

"이런 걸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자신의 죄악을 잊기 위해 혜자는 스스로 기억을 잊기 위해 허벅다리에 침을 놓고 한국 영화에 길이 남을 엔딩신을 남긴다.


지금 기억 나는건 <Knockin' on heaven's door>와 <마더>의  엔딩 장면이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엔딩 장면이 가장 강렬하게 남은 영화를 꼽는다면 말이다. 


모든걸 다 잊고 싶은 혜자 침을 놓고 춤을 추는 장면.  언뜻보면  제의를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밖에서 지는 석양고 어울어지면서 불타는 지옥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죄값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걸 다 잊고 버스 안에 있는 누군가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익명을 강조하기 위해 석양을 이용해 버스 안에 사람을 그림자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저들 중 다수는 혜자처럼 죄를 지었겠지. 그걸 잊기 위해 춤을 추는 걸거야.


(모성애를 보여준 영화가 마더라면 부성애를 대표하는 영화는 역시 클레만타인)

친구와 이런 해석에 도달하니  영화 초반에 나오는 소나무와 들판에 있는 덤불 모두 성적 비유로 보이는건 왜일까. 

(덤불을 의미하는 bush는 '음모'란 뜻도 있다. 그리고 하늘로 솟은 소나무는 남자의 성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뭔가 말이 되지 않는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반해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나르시스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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