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Oct 28. 2017

귀여운 댕댕이들

라세 할스트림-A Dog's Purpose

영화 <A Dog's Purpose>는 브루스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개의 생애가 영화의 주 이야기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싫어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고? 


내가 주절주절 영화를 보고 혹은 책을 보고 느낀 점을 쓰는 것보다 구글에서 이런 이미지를 잔뜩 다운받아 올리는 게 조회수 올리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거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도 이런 이미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강아지가 나온다는 영화라니, 게다가 조연급으로 살짝 살짝 나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귀요미들이 꼬리를 흔들면서 나오는데 어떻게 이 영화를 나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썩 좋지 않다. 특히 가장 비중이 큰 토드와의 이야기가 그렇다. 우선 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연기력이나 배역이 날 설득시키지 못했다.     

우선 고등학교 때 학교를 챔피언으로 올려놓고 좋은 대학 미식축구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가기로 한 이든. 

어디 적당한 공대에서 미적분이나 풀 게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의 미식축구 장학생은 죄다 이렇게 생겼다.


둘 다 고등학생 맞다.

미식축구에도 재빠른 선수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선수조차 저렇게 나약하지 않다. 그런데 토드를 봐라. 일반인치고는 건장하지만 미식축구를 했을 때 이런 친구한테(사진) 스치면 바로 날라 갈 것 같은 체구다.샤킬 오닐을

상대하는 무톰보 였을 거다.  




그리고 이든를 시기해서 불을 지른 그의 친구. 불을 지른 후 불타는 집을 보면서 후회하는 그의 표정과 이를 의심해 경찰의 추궁을 받는 그의 연기는 잠깐의 분노와 긴 무기력을 선사한다. 18대 대선에서 503이 당선 확정 됐을 때 내 감정이 그랬을까. 나보다 나이 많은 누군가는 1990년 3당 합당의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불타는 집에서 뛰어내리는 이든. 운 없게도 부상을 당하는데 그 때의 연기력 또한 ....... 그때 난 빨리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이렇게 병 주고 약 준다. 그 이후 몇 가지 삶을 더 살다가 (여기서 웰시 코기로 태어나 마야를 만나는데 마야의 할머니 연기 역시 백미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분장한 것 같은 느낌이 몰입을 방해하지만 괜찮다. 이전에 이든의 연기로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첫 시작부터 심드렁하니 마지막에도 감정이입이 힘들다. 이든의 노년을 연기한 데니스 퀘이드. 



오히려 2급전문 영화배우라고 불리는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력이 너무 압도적이라 싱크가 맞지 않는 상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나중에 이든이 어렸을 때 헤어진 여자 친구와 만나고 새로 만난 개가 어렸을 때 키우던 베일리라는 걸 깨달으면서 관객에게 감동을 원했겠지만 그런 건 없다. 


돈주고 보라면 안봤겠지만 우연히 봤다면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밝혔 듯 댕댕이들이 귀엽기 때문이고 

자신이 키우던 혹은 키웠던 강아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부족하게 해준것 같고 미안한 법이다. 게다가 고양이도 아니고 강아지다. 나만 바로 보는 강아지. 




매거진의 이전글 최고의 엔딩 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