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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8. 2017

선명한 색감. 할아버지가 해주는 옛날이야기

웨스 앤더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유튜브를 보다 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패러디한 광고가 나온다. 광고에서도 좀 더 선명한 색감을 쓰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의 색감은 정말 예쁘다. 선명하고.


어느 장면을 캡쳐해도 현대 미술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색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사진에서 박스들이 흐트러져있는 것 같지만 나름의 형태를 갖추고 뒤에 나무 만든 삼각형 지지대로 안정적인 구도를 만든다. 나머지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안정감 있고 그 안에 가벼운 변주가 있으며 색감은 스토리의 긴장감에 맞게 배치했다. 


(에곤 쉴레의 그림따위는 덮개로 쓰는 <사과를 든 소녀>의 위엄)


조형미와 색감에 무지막지하게 신경 쓴 이 영화는 예상대로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출연진이 화려하기로도 유명하다. 버드맨에서 잔뜩 화난 사타구니를 보여준 에드워드 노튼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주 드로, 봉준호의 여인 틸타 스윈튼, 휘어진 코가 매력적인 에드리언 브로디, 볼드모트 레이프 파인스 등등. 레아 세두나 오언 윌슨, 틸타 스윈튼은 심지어 몇 분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짱짱한 출연진 속에서 주인공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톰 홀랜드를 괴롭히는 인도 친구인 토니 레볼로리다. 96년생이니까 18살 때 이런 대작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건데. 비중의 차이도 있지만 나이를 더 먹고 찍은 스파이더맨에서 보다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훨씬 좋다.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 



이 영화는 할아버지라고 옛날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올드한 느낌이니까, 미술을 전공하는 밥벌이 못하는 삼촌이 해주는 생동감 넘치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각 화면의 구도가 아름답고 안정감 있고, 그런 구도에서 나오는 스릴러 이야기는 발랄하고 유쾌하다. 

그 귀여운 이야기는 뜬금없이 끝난다. 


참으로 불친절하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본 당신은 좋은 관객이다. 이야기에 그만큼 몰입했다는 거니까. 영화 도입부를 생각해보자. 한 여성이 소설가 흉상 앞에서 그를 추모한다.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소설을 쓴 작가를 말이다. 


그러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플라톤이 들으면 기겁하고 욕을 할 이야기 속 이야기인 것이다. 그럼에도 초반의 장면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이야기 속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다 보니 우리는 그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허무하게 마지막 장면이 끝날 때 뭔가 허무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노년의 로비보이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주 스토리이니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슥슥 보면서 지나갔다면 다시 천천히 영상미를 즐기는 걸 추천한다. 


ps- 최근 한국 영화 <리얼>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상미에 도전장을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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