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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9. 2017

친절함으로 점철된 영화.

대니 보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면 가장 많이 발견하는 문장은 ‘원작에 대한 모독이네요.’ ‘이 이야기가 고작 이런 영화로 탄생하다니. 졸작입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볼 때마다 허세 어린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소설 원작의 영화들 ‘눈먼 자들의 도시’ ‘반지의 제왕’ ‘파이 이야기’는 훌륭한 영화였던 것은 물론 10p 만에 포기한 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영화로는 그럭저럭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남들은 다 망했다고 한 ‘나니아 연대기’도 리트리버같은 사자 보는 맛이 쏠쏠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자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 대한 모독이네요.’ 


(귀여워....)


활자로 찍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2011년에 읽었으니 상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는 감정은 남아있다. 물론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스토리나 설정이 일부 바뀌는 과정은 있지만 어쨌든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원작의 감동을, 적어도 나에게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내가 원작을 읽은 것은 이등병 시절이다. 눈칫밥 먹으면서 읽은 책이라는 점, 당시 암울하던 현실에서 도피시켜준 책(마치 80년대 문학소녀처럼)이라는 점에서 평소보다 훨씬 몰입하고 재밌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읽었던 <바보 빅터>는 상당히 구렸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당한 감동을 준 이야기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이 영화가 2009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큰 기대를 품게 했으나 이 영화를 보고 남은 것은 아쉬움, 아쉬움이었다.



영화가 소설(흐릿한 기억이지만) 보다 나은 점은, 영상의 힘이기도 하지만, 인도 빈민가의 풍경을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개도국 특유의 끈적한 열기나 강렬한 인도의 색상은 시각적인 측면에서의 만족은 잘 끌어냈다. 그리고 쇼 진행자 프렘이 화장실에서 주인공인 자말에게 친한 척을 한 후 정답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있다. 50:50 찬스를 쓴 자말에게 남은 보기는 2가지. 찍어도 맞출 수 있는 데다가 프렘이 가르쳐준 정답이 남아있다. 

 두근거리며 프렘이 가르쳐준 정답 B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D를 선택하느냐. 이 가슴 쪼이는 장면을 잘 묘사한 것 역시 이 영화의 묘미. (물론 책에서도 잘 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인도 사람들은 참 착하구나’였다. 

2천만 루피(약 3억 5천만 원)가 걸린 퀴즈쇼. 문제를 포기하면 지금까지 탄 상금을 주고, 도전을 선택하면 상금이 배가 되지만 틀릴 경우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뭐 평범한 설정이다. 그런데....... 그런데 인도의 퀴즈쇼는 도전자에게 다음 문제를 보여준 다음에 도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해준다. (책에선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인도의 친절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배우가 똥물을 뒤집어쓴 아이에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고, 보스의 여자 얼굴에 칼빵을 놔도 아무런 보복이 없다. 업무시간에 티비를 보는 경우는 다반사.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인도 국민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인도인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친절함에 감화됐는지 아카데미 역시 친절하게도 이 영화에게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8개 부분의 상을 수여했고 2009년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금자 씨 빰 때리는 친절함이다. 

  

Q- 덕 노비츠키가 통산 20,000 득점과 30,000만 득점을 올린 팀은 어디인가? 

1- LA 레이커스                              2- 마이애미 히트 

3- 뉴욕 닉스                                4- 샌안토니오 스퍼스  


Q- <오감도>, <날개>를 쓴 이상의 본명은 무엇인가?

1- 김해경                                        2- 이상

3- 김준                                          4- 박수진   


Q- 다음 중 마이클 키튼이 출현하지 않은 영화는?    

1- 가위손                                       2- 비틀 주스

3- 버드맨                                       4- 스포트라이트   


이런 문제만 나오면 나도 밀리어네어가 될 수 있는데. 참 아쉽다. 원래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리고 각 문제를 맞힐 수 있었던 과거 기억이 나오기 때문에 자말이 연속해서 문제를 맞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도통 권총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질문을 맞춘 건 이해가 안 된다. 그 문제에 대한 기억은 그의 형 살림이 총으로 아이를 납치해 구걸하게 만드는 마만을 쏴 죽이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것인데 어디서 발명가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ㅅㅂ 분명히 살림이 총을 쏘긴 했는데.......)


억지긴 하지만 라마신이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맞춘 것도 조금 어색하다. 그 사실을 서적이나 유적을 통해서 본 게 아니라 코스프레한 어린애를 통해서 본 것이 전부다. 찍어서도 맞출 수 있는 4지선다 문제지만 애초에 영화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적절한 경험이 있다는 설정이다. 그런 점에서 라마신에 관한 문제를 것도 썩 석연치 않더라.


(바쁜 와중에 손에 든 것을 확인하는 집중력!! 우리가 가난한 이유다.)


여주인공과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도 살짝 스토리가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감독은 영국 사람이지만) 발리우드의 꽃, 춤과 노래가 빠져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갑자기 춤추고 노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 한풀이라도 하듯 주인공과 조연들이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지만 말이다.



이제 누군가가 허세를 부리면서 ‘그 영화는 원작 소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어.’라고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허세력을 키우고 싶다면 책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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