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Oct 29. 2017

개 같은 동네.

라스 폰 트리에-도그빌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미국 3부작 중 하나다. 다른 두 개는 2005년에 만든 <만덜레이>이고 나머지 하나인 <워싱턴>은 아직 제작하지 않았다. 미국 3부작이 무엇인고 하니 라스 폰 트리에가 미국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 미국에선 “미국도 안 와본 감독이 무슨 미국 영화를 만드냐”라고 비꼬았다. (라스 폰 트레이는 심각한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뿔이 난 트리에가 “너넨 그럼 유럽을 알아서 유럽 영화를 만드냐? 오냐 내가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들어줄게.”라고 결심한 후 미국 3부작을 제작하기로 한다. 미국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가 <도그빌>이다.



영화 얘기를 하기 전에 감독에 대해 알아보자. 그의 영화가 암울하고 어두운 이유는 어쩌면 라스 폰 트리에의 어머니에게 있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있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기가 막힌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네가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너의 진짜 아버지가 아니란다.”   


그의 어머니는 예술가인 자식을 낳고 싶었지만 자신의 남편은 너무 고리타분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독일계 예술가와 ‘철저하게 아이를 가지기 위한 성관계’를 했단다. 그 사실을 알려주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성공한 것인가?)   


그래서 그의 영화는 극단적이고 조금은 불편하다. 그리고 반항적이다. 그의 반항기는 1995년 토마스 빈터 베르스, 소렌 카라그 야콥슨 등과 함께 한 ‘도그마 95’를 발표하며 순수의 서약을 선언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선언의 핵심은 죽어가는 영화가 구원을 요청했고, 누벨바그가 그 요청에 화답했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누벨바그는 반 부르주아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 자체가 부르주아 미학이 됐다.   


‘도그마 95’ 선언에 참여한 감독들은 이 선언을 통해 감독의 우상화를 막고 영화가 감독 개인의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을,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주의적 시스템을 막고자 했다.   


아래는 라스 폰 트리에가 직접 서명한 ‘순수의 서약이다.’    


<순수의 서약>

나는 ‘도그마 95’에 의해 확인된 다음의 규칙들을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1. 촬영은 로케이션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소품들과 세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만약 특별한 소품이 이야기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로케이션은 그 소품이 있는 곳으로 선택돼야 한다)  


2. 사운드는 이미지와 분리하여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음악은 그 씬이 촬영되고 있는 곳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3 카메라는 반드시 헨드헬드라야 한다. 손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움직임이나 정지상태는 허용된다.(영화는 카메라가 서 있는 곳에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촬영은 영화가 발생하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4. 필름은 칼라라야만 한다. 특별한 조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노출을 맞추기에 빛이 너무 적다면, 그 씬을 잘려나가거나, 카메라에 램프 하나만 부착시켜 사용할 수 있다)  


5. 옵티컬 작업과 필터 사용은 금지된다.   


6. 영화는 피상적인 액션을 포함할 수 없다. (살인, 폭력 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7.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금지된다. (즉, 사건은 ‘현재’,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해야만 한다.)  


8. 장르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9 영화의 형식은 반드시 아카데미 35mm 라야 한다.  


10. 감독 이름은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감독으로서 개인적 취향을 자제할 것을 맹세한다.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전체보다 순간을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삼갈 것을 맹세한다. 나의 궁극적 목표는 캐릭터와 세팅들에서 진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나는 어떤 탐미주의적인 고려도 하지 않을 것이며, 가능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이것을 이행할 것을 서약한다. 이로써 나는 순수의 서약을 행한다. 


-코펜하겐, 1995년 3월 13일 월요일  


그의 초기작 <백치들>은 이 서약을 모두 적용시켜 만든 작품이다. 물론 <도그빌>은 아니지만 말이다.



<도그빌>은 프롤로그를 포함해서 10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Prologue : Which introduces us to the town and its residents(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한 소개) 

Chapter I: In which Tom hears gunfire and Meets Grace (톰이 총소리를 듣고 그레이스를 만나다). 

Chapter II : In which Grace follows Tom's plan an embarks upon physical labor (그레이스의 육체노동). 

Chapter III : In which Grace indulges in a shady piece of provocation (그레이스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Chapter IV : Happy times in Dogville (행복한 나날). 

Chapter V : Fourth of July after all (독립기념일) 

Chapter VI : In which Dogville bores its teeth (이를 드러낸 도그빌). 

Chapter VII : In which Grace finally gets enough of Dogvillem leaves the town, and again sees the light of day (도그빌에 질려 떠나는 그레이스).

Chapter VIII : In which there il a meeting where the truth is told and Tom leaves (only go return later) (회관 위에서 진실을 밝히다). 

Chapter IX : In which Dogville receives the long awaited visit and the film ends (방문객이 오고 화는 끝나다.) 



친절하게 챕터를 나눠주고 내레이션을 통해 상황이나 개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를 한다. 감독은 왜 내레이션을 넣었을까? 오스카 G. 브로케트는 영화 속 해설자의 기능을 정리했다.   


첫째- 코러스는 연극의 한 배우다. 코러스는 의견을 개진하고, 충고를 하며, 이따금씩 작품의 사건에 간섭하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코러스는 주인공과 동정관계(同情關係)로 연계되어 있다. 


둘째, 코러스는 자주 희곡의 윤리 틀을 설정해 준다. 코러스는 작가의 견해를 표하면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심판할 어떤 표준을 세워다. 


셋째, 코러스는 자주 이상적인 객이 되어서, 작가가 관객들이 반응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사건과 등장인물들에 대해 반응한다. 


넷째, 코러스는 작품의 분기를 설정하고 그 연극 효과를 제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코러스는 풍부한 설명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돕는다. 하얀색 분필로 슥슥 그려 넣은 구즈베리 덤불을 마치 생생한 풍경을 보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독은 애초에 <도그빌>을 연극적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감독은 <도그빌>에 대해 이렇게 인터뷰했다.   


기술적인 측면을 좀 더 강조할 수도 있겠고, 도그마 운동처럼 덜 강조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최소한으로 국한하는 수도 있어요. 그러면 연극적인 접근이 될 거예요. 나는 이런 방법으로 경험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라스 폰 트리에는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 어느 항구의 초라한 여관에서 궂은일을 하는 제니가 사실은 해적의 딸이며 모두를 죽인다는 내용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다.



이제 영화 얘기를 해보자.

  

7가구 25명이 사는 도그빌이라는 촌 동네에 총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금발의 여성이 마을로 숨어 들어온다. 전성기 시절 니콜 키드먼이다. (그레이스 역) 이방인의 등장으로 마을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지만 톰(폴 베터니)의 설득으로 그레이스는 마을에서 머물게 된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스에게 친절했다. 그러나 그레이스를 찾는 실종자 포스터가 붙자 사람들은 그레이스를 착취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너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살아가니 너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실종자 포스터가 수배자 포스터라 바뀌자 그레이스는 노예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그를 지켜주던 톰은 그녀를 마피아에게 신고한다.   


그런데 사실 그레이스의 정체는 마피아 두목의 딸이었다.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했지만 그레이스는 아빠에게 마을 사람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소시민이라고 방어한다. 그러자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말한다.   


“is their best really good enough?” 


이 얘기를 듣자 그레이스는 결심한 듯 도그빌을 지도에서 지우기로 한다.   


is their best really good enough? 은 ‘최선(열심)이 최선(最善)이냐?’라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선이 최선(最善)인가? 


은총, 호의를 의미하는 그레이스(Grace)의 선택은 부도덕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런 추악한 공동체는 세상의 선을 증진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유식한 말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한다.

  

개 같은 마을인 도그빌은 결국 그렇게 사라진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인 모세는 십계를 통해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 대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결국 도그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은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밥을 빼앗긴 척의 개 ‘모세’였다. 



하얀 분필로 슥슥 그린 영화의 미장센은 양식적이다. 건문들의 외벽은 존재하지 않지만 배우들은 마치 문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행동과 영화의 배경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즉 관객은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언인지를 생각할 여유와 시간을 준다. (혹은 강요받는다.)  



사실 <도그빌>은 미국의 사실을 까발리기 위한 영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친숙한 느낌을 주는 모두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파괴 혹은 공동체의 광기, 이방인에 대한 배척, 힘없는 자에 대한 착취와 그걸 묵인 혹은 똑같이 이용하는 행태들은 소름 끼치도록 현대 사회와 닮아있다.   


그레이스가 도그빌 사람들을 죽일 때 그녀의 선택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통쾌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다소 과격한 방법을 쓸지언정 청산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친놈들 사이에선 덜 미친놈이 정상인처럼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