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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9. 2017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왕가위-화양연화


1962년 홍콩. 우연히 두 부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날에 이사를 온다. 항상 바쁜 아내를 사랑하는 차우(양조위)와 잦은 해외 출장을 가는 남편을 둔 첸 부인(장만옥).



둘은 어느 날 깨닫는다. 차우와 아내와 첸의 부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에 둘은 분노하기보다는 같은 처지인 서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싹튼 감정을 첸 부인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윤리, 주변의 시선 때문에 차우에게 느끼는 감정을 쉽게 열지 않는 첸 부인.



신문사 편집 기자로 일하던 차우는 첸 부인에게 캄보디아로 함께 떠나자고 말하지만 결국 첸 부인은 떠나지 않는다. 차우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첸 부인에게 혹은 세상에게 전하지 못할 말을 남기면서 영화는 끝난다.


(문화재를 보호합시다)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 중 2위에 꼽힌 영화답게 <화양연화>는 짧지만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97분에 불과한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 매 컷마다 바뀌는 첸 부인의 화려한 치파오, 몇 안 되는 BGM이 반복해서 나오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왕가위 감독의 연출과 편집에서 나온다.  

 

<화양연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국숫집에서 첸 부인과 차우가 만나는 장면일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장면에서 스텝 프린트 기법을 이용해 두 사람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준다. 


스텝 프린트 기법이란 필름이 1초에 24 프레임을 찍는데 이렇게 찍힌 프리엠 수를 편집 단계에서 16 프레임, 8 프레임 등으로 줄인 다음 그 줄인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복사해 24 프레임으로 늘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스텝 프린트 기법을 사용하면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작이 반복되기 때문에 툭툭 끊키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프레임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일종의 슬로 모션 효과를 준다.   


이렇게 슬로 모션을 주어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화면이 느리게 진행되면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숫집 장면을 기억해보자. 흔들리는 도시락통, 국숫집의 흔들리는 조명,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는 첸 부인의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한다. 


차우 뒤로는 아웃포커싱으로 처리해 차우도 첸 부인만큼 허무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깔리는 시게루 우메바야시의 ‘Yumeiji's Theme’는 두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음악은 때론 대사와 화면보다 더욱 사실적일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해 영화의 더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언어가 되는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음악이 선정된 상태에서 음악의 분위기와 리듬, 시대적 배경 등에 따라 영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왕가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영화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내 영화를 위해 따로 음악을 작곡하지는 않는다. 뮤지션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다. 뮤지션들은 음악 언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시각언어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음악은 시각적이어야 한다. 비주얼과 어울려 상승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내가 찾은 해법은,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을 녹음해서 나중에 쓸 생각을 하며 잘 저장해 두는 것이다.” 



그래서 <화양연화>의 ‘Yumeiji's Theme’를 들으면 영화가 '들린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대부>의 테마송,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Hedwig's Theme’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해당 영화가 촤르륵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머글들 들리나요?)


‘Yumeiji's Theme’와 함께 영화를 지배하는 BGM은 냇 킹 콜의 냇 킹 콜의 ‘Quizas Quizas Quizas'다. 냇 킹 콜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가수다. 20세기 중반 흑인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감미로운 사랑 노래를 부른 냇 킹 콜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에 백인들에게까지도 큰 사랑을 받은 몇 안 되는 흑인 가수다.




(노래 들을 줄 아는군. 왕가위)


왕가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60년대에 홍콩엔 라틴음악이 유행했어요. 홍콩 가수 대부분이 필리핀 출신이었는데 그들이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어렸을 때 어딜 놀라가도 라틴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그래서 냇 킹 콜의 노래를 식당에서 나오는 노래로만 쓰이지 않고 그 시기를 표현하는 도구러 썼습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왕가위 감독은 1962년 홍콩으로 이주한다.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긴 설정, 두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당시의 홍콩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화양연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중국인의 정체성과 영국 식민지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이방인 같은,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 없는 모습은 첸 부인의 표정과 감정을 숨기는 마음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사장의 부인과 이웃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화려한 의상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올림머리를 고수하는 그녀. 


(옷만 사는 거냐?)


벽에 숨어서, 건물 안에 숨어서 첸 부인과 차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에서 그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비밀스러운 사랑을 꿈꾸는지, 그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은밀한지 알리는 장면과  차우가 마지막에 앙코르 와트의 퇴색한 유적의 질감으로 덧없음을 느낀다는 비유적인 장면은 <화양연화>가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일 것이다.



호텔에서 흔들리는 커튼을 통해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불안함 심리를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정서적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두꺼운 벽으로 화면의 반을 가린 장면 등으로 관객은 왕가위 감독의 시적 미장센을 이해할 수 혹은 느낄 수 있다. 왕가위 당신은 도대체....... 



ps2- 영화에서 나오는 자막은 홍콩의 소설 일부분을 가져와 삽입함. 류위장의 소설. 그 이유는 “당시의 홍콩 사람들이 생각하던 바를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ps3- 아멜리아를 보면서 <금자씨>의 금자 방을 꾸몄을 거라고 썼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이 영화에 더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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