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외계인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컨택트)에선 외계인의 언어를 배운다. 그 오징어 같은 외계인이 참을성아 많아서 망정이지 불 같은 성격이면 어림없는 일이다.
한참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 막 전문가들이 "외계인은 분명 있습니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UFO가 발견됐습니다."라고 제보했을 때 저런 의문이 들었나 보다. 가장 설득력 있는,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답변은 이것이었다.
"노래를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뜻도 모르는 남의 나라 노래에 쉽게 감동한다. 그리고 그 가사를 알고 나면 한번 더 감동한다.
<ONCE>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 이유도,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먼 곳을 응시하면서 쐬주가 땡기는 이유는 노래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인지, 대리 제작으로 시끄러웠던 조영남인지 좋은 작품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작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고 재밌을수록 좋은 작품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몸을 흔들어대면서 보핍보핍 하는 음악도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음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안에 들어있는 가사의 내용, 감정과 감성, 알맞은 보컬, 철학 등등이 내포돼야 사람들은 '명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한다. 남이 써준 사랑 이야기와 내가 경험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를 때, 어떤 곡이 더 감정이 실리겠는가.
톰 요크가 <creep>을 부르니까 감정이 와 닿는 거지 (물론 당시 톰 요크는 나쁘지 않은 비주얼이긴 했다. 지금과 비교해서) 원빈이 <creep>을 불렀어봐라.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외계인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짧게 짧게 소개한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은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해주는 책이기 때문에 단편 소설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읽기에도 부담 없고, 노래를 들을 때 남에게 "이 노래 알아? 아 이 노래는"으로 시작하는 스마트한 설명충이 될 수 있다.
단 자연스럽게 그 노래에 대한 화제를 조성할 것. 그런 도입부 없이 설명에 들어간다? 그냥 설명충이고, 그걸 할 줄 알면 스마트 설명충이고.
하지만 잊지 말자. 둘 다 충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