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Nov 05. 2017

동물원의 동물은 행복할까?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전부라고 믿고 죽는 것이 나은가,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이 나은가.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행복하다.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험할 수 없다면 그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서울대가 있는 걸 알지만, 연세대가 있는 걸 알지만 가지 못하는 수험생. 유럽이 얼마나 멋진 걸 알지만 가지 못하는 대학생. 삼성과 현기차를 가서 연봉 3,000으로 인생을 시작하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취준생 등등.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다. 차라리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였다면 이런 갈망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을 텐데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나는 커지지 않는데 나를 둘러싼 세계만 확장한다. 그와 비례해 우리의 불행도 커진다. 개 같은 메커니즘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진 신세계'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모두의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다. 알파, 베타, 엡실론 계급별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촉각 영화로 멋진 유희를 선사하고, 쉬고 싶은 사람에겐 소마도 지급한다. 알파 계급은 베타 계급을 무시하고, 베타 계급은 엡실론 계급을 무시하지만 정작 무시받는 계급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각 계급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각 계급이 부여받은 권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자유, 종교, 철학이지만 그 분야를 아예 모르게 자랐고 죽어갈 그들은 불행할 이유가 없다. 


 철학에서 묻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간단하다. 나는 알베(베타, 엡실론) 계급이며 사회가 나에게 준 역할이 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사회 유지에 힘쓰고 여가시간을 이용해 촉각 영화를 감상하고, 가끔 머리 아픈 일이 있으면 소마를 먹은 후 휴식을 취하면 된다. 그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생각해보자. 야만인 존은 레니나의 행동을 창녀라고 규정짓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거부하고 밀어낸다. 레니나는 문명사회에서 길들여졌기 때문에 결혼, 임신, 어머니 등의 뜻을 전혀 모른다. 문명사회의 지시대로 그녀는 맘에 드는 남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 약을 먹고 또 다른 잠자리를 갖는다. 그녀의 규격화된 행동이 과연 잘못인가? 그렇게 배웠는데? 그 외의 삶을 알지 못하는데? 


 <멋진 신세계>는 상류 계층이지만 하류 계층의 몸을 갖고 태어나 은근한 무시를 받는 버나드 마르크스, 지적이고 멋진 상류층 헬름홀츠 왓슨,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온 존의 문명사회에 대한 반역의 이야기다. 버나드는 셋 중 가장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로 인간의 연약함을 잘 그려냈고, 헬름홀츠는 상류층의 안락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존재, 철학, 자유에 대해 갈망하고 결국 당당하게 고독을 선택한다.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된 순간부터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고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아는 지적인 인물이다. 결국 요동치는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외부로 떠난다. 


 존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담이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로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동물원의 동물은 행복하지만 자신이 우리에 갇혔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불행해진다. 버나드, 헬름홀츠, 존이 그 사실을 안 순간 불행의 시작이요, 새로운 행복을 찾는 순간이다. 


 아이슈타인. 당신 정도의 학자가 왜 배움을 멈추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원이라고 한다면 원 밖은 모르는 부분이 됩니다. 원이 커지면 원의 둘레도 점점 늘어나 접촉할 수 있는 미지의 부분도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저의 원은 여러분들보다 커서 제가 접촉한 미지의 부분이 더 많습니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데 어떻게 게으름을 피우겠습니까?"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힘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