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옥수수와 나
알쓸신잡을 시작으로 맥주 광고까지 찍은 핫가이 김영하 작가. 그런갑다하면서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집에 2012년 제 36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 대상이 김영햐 작가 아닌가. 장편은 아니지만 김영하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갈하기엔 적합한 듯 싶어 책을 읽었다.
프롤로그
한 정신병원에 철석같이 스스로를 옥수수라 믿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납득한 이 환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귀가 조치되었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아 혼배박산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의사가 물었다.
"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
환자는 몸을 떨며 아직도 닭이 자기를 쫓아오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환자는 말했다.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슬라보예 지젝이 즐겨 인용하는 동유럽의 농담
대상이 좋긴 하다. 대상은 대상 수상작, 자선 대표작, 수상 소감, 문학적 자서전, 작가론, 작품론까지 약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의 3분의 1을 할애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ㅠ
이상이라는 괴랄한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라 그런지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의 결말은 괴상하다.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이 겨드랑이 밑에서 날개가 돋아 날아간 것처럼 <옥수수와 나>에선 주인공이 죽은건지, 환각 증세가 일어난 건지, 약자인 자신과 강자인 사장에 대한 비유인지, 정말 옥수수로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번뜩이고 전위적인 결말이다.
다만 이상만큼 문체나 분위기가 음울하지 않다. 평소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피로했던 해석하기 애매한 문장도 많이 없고 술술 읽힌다. 함께 실린 문학적 자서전 <나쁜 버릇> 역시 문장이 재치있어 읽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멋진 신세계>의 문학가 버전이랄까.) 간결하고 철학적이지 않다. (문체가 철학적이지 않다는 뜻) 단편이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로 꽤나 빨리 읽은 책 중 하나다.
문장이 간결하다보니 상당히 괴랄한 전개나 결말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야기같은 느낌을 줘 가독성과 흡입력이 괜찮다. (물론 미모의 여자와 질펀하게 얽히는 장면도 가독성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결말을 보고 '정말로 주인공이 옥수수로 변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일수도.
함께 실린 <그림자를 판 사나이>, <나쁜 버릇> 역시 간결한 문체로 큰 어려움없이 금방 읽었다.
여담으로 스크린에 맺히는 김영하 작가의 모습은 뭐랄까, 조금 무섭다. 약간 사시끼가 있어 시선이 뭔가 흐트러져 있어서다. 연기자 마동석이 스크린을 응시할 떄 느끼는 섬뜩함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