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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Nov 05. 2017

아날로그의 힘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때론 남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된다.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내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힐링 도서로 꼽히는 이유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극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작품은 한동안 베스트셀러 도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를 즐겨보진 않는다. 그런데 평생 책 한 권 안 읽는 친구가 읽어보라며 이 책을 선물해줘서 읽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대중적인 일본 소설답게 문장과 단어가 담백하다. 쉽게 술술 읽을 수 있어 400p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시작하면 금방 읽을 수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시간의 왜곡은 나미야 할아버지의 엉뚱하지만 가슴 따뜻한 발상을 동력 삼아 일어난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에도 굳은 머리를 쥐어 싸며 끙끙대는 잡화점 주인의 모습은 훈훈하다. 

투병생활로 고민 상담에 대한 답장을 하지 못하자 자신을 잡화점으로 데려달라고 한 후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계속 받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열정적이었다.   


다양한 사건을 시공간을 왜곡해 흥미롭게 재배치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벌어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3인조 강도 중 가장 까칠한 아쓰야의 마음까지 돌려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현대 사회는 다양한 SNS 서비스로 어느 시대보다 많은 소통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볼까 봐, 손가락질받을까 봐, 뒤에서 수군댈까 봐 내면의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만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나미야 잡화점의 아날로그 방식은 고민 해결을 의뢰한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준 진정한 소통이다.         


명확하진 않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나미야와 환광원을 설립한 아키코의 애잔한 사랑일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제시하면서 소설의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 것은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힘일 것이다. 

단순히 가슴 따뜻한 이야기의 배치 정도로 끝날 법한 소설의 인과관계를 여지는 있지만 잡화점의 기적의 힘을 설정해놓은 것은 추론과 증거로 서사를 끌고 가는 추리소설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누구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벌어진 일이 실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감동적인 이야기와 타인에 대한 배려, 허구를 그럴듯하게 꾸민 작가의 장치로 인해 이 소설은 긴 여운을 준다.  



나미야 잡화점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답장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 셔터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편지를 쓸 때 묘하게 감성적이게 되는 느낌, 편지를 받을 때 기쁜 마음을 모른다고? 여자는 연애할 때, 남자는 군대에서 다 느낄 수 있다. 

하두 편지를 안 써봐서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미야 영감님께 편지를 보내보자. 주소를 모른다면 지인 중 훈련병이나 일, 이등병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최고의 차선책이다. 

그러나 상, 병장에게 보내는 건 비추다. 


ps-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코믹스 웨이브 필림즈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제작한다. 내년 2월에 개봉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달력에 적어놓으시길 (실사화는 이루어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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