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예전에 비트겐슈타인에 알아보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을 몇 권 찾아보다가 바로 PC방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내가 대충 들었던 비트겐슈타인 철학은 소위 ‘간지’가 났는데 직접 활자로 읽으려고 하니 뭐가 뭔지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고 해서 그에 대한 관심은 저기 깊숙한 곳에 넣어놨었다.
집에서 뒹굴면서 침투부를 보고 있는데 얼마 전 누나가 사 온 책 더미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최근에 그렇게 광고를 때리던 ‘지대넓얕’이군. 이리저리 책을 뒤지면서 목차를 보고 있는데 철학에 비트겐슈타인이 있는 게 아닌가. 살짝 읽어보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아주 쉽게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침착맨의 안달복달한 모습을 뒤로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다지 많은 분량이 아니어서 금방 SSG 읽었고 남은 챕터도, 다른 책도 같이 읽었다.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의 느낌은 ‘....... 응?’이었다. 아 이거 기억난다. 이건 아는 내용이고, 약간 복습하는 느낌이 나네. 이건 유명한 얘기잖아 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책은 끝난다. 마치 노트 필기를 예쁘게 잘하는 친구의 노트를 빌려온 느낌이랄까.
아 물론 저자 채사장은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
정말 그렇다. 지적 대화를 위한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 자격증은 최소한의 지식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은 스스로 정한 목표를 충실히 이행한다. 최소한의 지식에 대한 정보 말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이 1기, 2기로 나눠지고 1기는 언어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면서 ‘확실하지 않으면 패를 걸지 말라. 이런 거 안 배웠어?’라고 주장하고 2기는 가족 유사성을 가지고 자신의 1기 철학을 완전히 뒤엎는다. (확실하지 않으면 패 걸지 말라며 형....) 이 책을 읽으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나 삶에 대해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지만 <지대넓얕>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신뢰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위키피디아와 나무위키에 비트겐슈타인을 치면 얻는 정보가 훨씬 많을 정도다. 비유하자면 <알쓸신잡>은 비트겐슈타인으로 가는 교통편, 나무위키는 입장료, 전공서적은 자유이용권 정도 되겠다. 교통편이 입장료보다 훨씬 비싸고 전공서적이랑 비슷하다는 점은 함정.
다른 항목들도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영국이 섬나라인 줄 몰랐다는 이공계 출신인 내 친구를 비롯한 다소 해당 지식이 없는 사람에겐 기초 인문학적 소양에 상당한 도움을 주지 않을까? 입문서라고 얘기하기엔 쑥스러울 정도지만 어쨌든 기초공사를 하는 데는 부족함은 없을 것 같다.
상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복습 차원에서는 읽어볼 만하다. 챕터마다 분량이 길지도 않고. 그러나 그런 사람에겐 정보의 바다에서 나무위키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