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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 민수르 Feb 07. 2021

앙코르와트의 일출

스무 살에 떠난 세계여행


한밤중 정적을 깨는 요란한 소리에 두 눈을 떴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장 듣기 싫은 노래가 있다면 알람 효과음이다. 혼자서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온몸을 빠르게 떨며 경쾌한 소리로 괴롭힌다. 일상이라면 3번 정도는 무시한 다음 4번째 알람이 울릴 때 눈살 찌푸리며 일어나지만  오늘은 조금 예외다.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 지 1초 만에 두 눈이 번쩍 떠졌고 자는 동안 쌓인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3시 30분. 평소라면 꿈나라에서 우주여행이  한창이겠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단번에 일어났다. 캄보디아의 랜드마크인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사실 살면서 일출을 경험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해서  가족과 호미곶 일출을 보러 갔던 유년기의 희미한 기억. 그 기억이 유일무이하다.   새벽과 설렘의 조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처음 써본 게스트하우스  8인실의 새벽은 합창단의 연주가 진행 중이었다. 고음, 저음으로 뒤섞인 코 고는 소리가 절묘하게도 화음을 맞춘다.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다인종의 콜라보.  그 전율에 경의를 표하며 방을 빠져나왔다. 숙소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미리 예약해둔 툭툭 기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유리창 없이 양옆이 뻥 뚫린  삼륜 바이크. 그 앞에서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의 미소에 몸을 맡겼다.  새벽이라 더욱 진하게 풍기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유유히 거리를 달린다. 거리에는  집단으로 이동하며 여행객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원숭이 무리가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광경에  감겨가는 두 눈을 번쩍 떠본다.


30분가량 이동하자 고대하던 앙코르와트의 실루엣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어릴 때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웅장한 자태를 실물로 보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게 앙코르와트인가 보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온전한 형태는 볼 수 없지만 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보고 추측했다.


목적지를 근방에 두고 길을 못 찾을 땐 사람이 붐벼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뭐랄까. 여행을 하면서 얻은 일종의 생활지식 같은 여행의 꿀팁이다. 앙코르와트 외부에는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빼곡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분명 늦잠을 자거나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로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기한 지 30분이 지나자 지평선 너머로 둥근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조금씩 뜰 때마다 해를 감싸는 붉은빛이 사방으로 퍼진다.  그 모습은 마치 물컵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희미해져 가는 모습과 유사했다. 그림은 완벽했고 사방에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음이 효과음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멋진 장면을 제대로 본 게 처음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과 감격스러운 감정이  교차했다.


어쩌면 우리가 잠든 사이 매일 스쳐 지나갔던. 지극히 평범한  그림이 아닐까?

누구는 학업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등교 생각에 놓쳤던, 누구는 출퇴근으로 반복되는 삶 때문에  누리지 못한 작지만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 가둬놓았던 작은 여유를  마음껏 펼쳐보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자연이 주는 예쁜 선물을 언제 누려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생각보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는 시간은 정말 짧았다.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옮긴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낭만이 일상이 되는 삶. 매일이 오늘  같은 삶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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