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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미엄복치빌런 Feb 12. 2019

QAF, 누군가는 해야만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Queer As Folk>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 포스터

“마이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이성애자가 있어. 앞에서 욕하는 놈, 그리고 뒤에서 욕하는 놈.”


  동성애 찬반론은 아직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주제다. 누군가의 성향을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게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람들은 동성애자와 공존하는 사회에 대한 논의를 끝없이 되풀이한다. 성소수자는 늘 2등 시민의 자리로 내몰린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재작년 이맘때쯤, 체첸에서는 100명의 동성애자들을 체포하고 이들 중 몇 명을 ‘명예살인’으로 처참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대상의 혐오 범죄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구타를 당하고, 모욕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들에 관한 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는 <닥터 후> 초기 각본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성소수자, 그중에서도 동성애자를 중심 소재로 다루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크 버그를 주 무대로, 게이 군상의 삶을 그려낸 드라마다. 워낙 드라마 제목이 길다 보니, 팬들은 단어의 앞 글자만 따서 <QAF(쿼프)>라고 부른다. 이 드라마는 원작인 영국 드라마보다 리메이크된 미국 드라마가 더 유명하고 인기 있다. 그래서 원작은 10개의 에피소드를 끝으로 종영된 반면 리메이크 버전은 시즌 5까지 진행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QAF>가 영국에서 히트를 쳤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의 유료채널 쇼 타임 (SHOW TIME)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방송권을 매수했다. 왜냐하면 당시 HBO와 쇼 타임은 미국 유료 채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는데, HBO가 <섹스 인 더 시티> 같은 화제의 드라마를 여러 편 방영하면서, 쇼 타임은 최정상의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나는 <퀴어 애즈 포크>의 판권 매수는 점점 더 벌어지는 격차를 좁히기 위해 쇼 타임이 내놓은 마지막이자 유일한 히든카드라고 생각한다.  <QAF> 전 시리즈에는 성소수자 차별 법안과 투쟁하는 등 정치적 메시지가 많이 함의되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 결혼과 출산, 가족, 불화, 에이즈, 연대, 투쟁, 죽음 등등 극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다루려고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There’s nowt so queer as folk”


    웨일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오래된 속담은 간단한 문장이지만, 생소한 표현이다. 'Nowt'는 20세기 초반에 사용된 영어 표현으로, 'Nothing'의 과거형인 'Nought'의 방언이다. 'Queer'는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현대 영어로 바꾸면 “There’s nothing as strange as people”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그대로 직역하자면 “사람들 보다 이상한 건 없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사람들이 때때로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누구나 한두 가지 정도는 다른 면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QAF>의 제목은 이 속어에서 기인한다. “Queer As Folk”의 뜻은 “일반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퀴어들”이다.  


   그래서 <QAF>는 이성애자들의 일상을, 사랑 얘기를 담은 타 드라마들처럼 성소수자의 삶 또한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무려 20년 전에 나온 드라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동성 간 베드신, 게이 커플의 결혼생활,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나와도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시즌 5까지 방송을 했고, 할 수 있었다니. 핑크 산업(Pink Industry : 동성애자를 소비자로 하는 산업)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르기에 같은, 같을 수밖에 없는


"여러모로 제 삶은 여러분들과 같지 않아요. 왜 같아야만 하죠? 똑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같은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우리나라의 핵심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이 커뮤니티에는 드랙퀸, 레더 대디, 타래니 그리고 아이들을 기르는 부부들이 있죠.(…) 무지개의 일곱 가지의 색들처럼… 뒤쪽에 저의 친구들과 같이 계시는 제 어머닌 사람은 눈송이 같은 존재라고 하셨어요. 모두가 다르고 특별한 존재라고요.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같은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어주죠.” 시즌 5 마이크의 대사 中


   <퀴어 애즈 포크>에서 마이크는 성 정체성을 밝히며 자신은 남들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왜 같아야만 하냐고 되묻는다. 사람은 모두 다른데, 그게 주류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에는 무차별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이 잔혹한 현실을 지적하며 마이크는 '다름'이야말로 사회를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사실과, 그것이 갖는 ‘동일성’을 강조한다. 각기 다른 결정을 지닌 눈송이처럼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각자는 특별하다. 이 특별함은 결코 결점이 아니다. 



-일회성인 동시에 면면히 이어가야 할 고백


   듣는 사람 입장에서 커밍아웃은 일회성 고백이라고 느끼기 쉬울 것이다. 한 번 커밍아웃하면 그만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이란 수십 번을 반복해,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고백이다. 가수이자 유튜버인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은 커밍아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Troye sivan
   (만약 당신이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면) 당신은 커밍아웃을 딱 한 번 하지는 않을 거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커밍아웃을 하게 될 거다. 운 좋게도 나는 유튜브에 내 커밍아웃 영상을 게시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이 영상을 보고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 수도 있기에, 커밍아웃을  반복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커밍아웃은 두려운 일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커밍아웃을 한다. 상대방이 최대한 당황스럽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끔 말이다. 
 (중략) 하지만 나는 말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상대가 호모 포빅한 발언을 할까 봐 내가 극도로 긴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거진 매일 커밍아웃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음악 작업을 할 때가 그렇다. 내가 곡을 쓰면서 "그 사람 때문에 많이 아팠어요.”라고 하면 "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나요?"라는 질문이 온다. 그러면 나는 "아, 전 게이예요. 그러니까, 네, 음, 뭐…" 이건 당신이 평생 동안 해야 할 어색한 일이다. (중략) 그러나 그 순간에는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내비칠지 모르니까.


   드라마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이성애자'를 기준으로 하는 사회에 질린 그들은 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외면하려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고 반항이다. <QAF>는 '나'임을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박수를 보낸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상실은 많으니 애도하라. 그러나 승리를 축하하라. 승리는 드물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부분은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차별하겠다"의 동의어가 아니다. 종종 이 사실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세상에 상실감을 느낀다.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해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퀴어는 다름이다. 이것을 성찰하지 않고 함부로 혐오하는 것. 그게 바로 틀림이다. 우리는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공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제는 그래야만 한다. 


   드라마가 종영한 후로부터 약 1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얼마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을까. 또 얼마큼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Queer As Folk>를 <Folk As Queer> 즉, ”퀴어와 다를 것 없는 일반 사람들”이라고 바꿔 불러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사회를 찬성한다,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싸워야 한다. 더 이상 퀴어들이 상처 받지 않기를 기도한다. 


별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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