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건의 변곡점에서 그 선택을 뒤틀어본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훨씬 넘은 코흘리개 시절, 우연히 TV에서 '유비, 관우, 장비, 계수나무 아래서~'라고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귀가 큰 사람, 수염이 아주 긴 사람, 산적처럼 생긴 무서운 사람까지 세 명의 남자가 흩날리는 복숭아꽃잎 아래 두 손으로 술잔을 든 채 하늘을 쳐다보는 만화 장면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삼국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비디오와 만화책으로 나온 모든 삼국지 시리즈를 다 읽었고, 친구들이 만화에 빠져있던 10살 무렵, 저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 60권짜리를 해질 때까지 20번 이상 읽었고, 조금 커서는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성인들도 읽기 쉽지 않은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 10권 또한 그 목차를 기억할 때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주인공 유비부터 관우, 조운, 조조, 제갈량 등,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매 순간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며 느꼈던 신선함, 재미, 그리고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지와 관련된 꿈도 정말 많이 꿨습니다. 제 유년 시절 꿈의 대부분은 삼국지 꿈이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사춘기를 겪을 때조차 꿈에는 이성의 모습보다 삼국지의 인물들이 더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삼국지에 심취하게 된 것은 단순한 영웅담 너머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 야망, 배신, 그리고 숭고한 헌신 등 어린 제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되어 겪게 된 복잡하디 복잡한 인간관계의 축소판과 같았다고 할까요? 저는 그중에서도 그들의 선택에 주목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들이 내린 수많은 결정들의 심리적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그 순간 다른 길을 택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제 안에서 끊임없이 증폭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쌍둥이의 아빠가 된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맞아 3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삼국지 인물들의 선택에 ‘만약’이라는 변수를 결합한 대체역사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연재하고자 합니다. '만약'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최대한 논리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웅들의 선택을 뒤틀어 독자 여러분과 함께 탐험해 보겠습니다.
‘삼국지’라는 단어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두꺼운 삼국지라니, 심지어 원 역사도 잘 모르는데 대체역사라니 하면서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짧게나마 삼국지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해 본다면, 각 잡고 독서하는 것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 이름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적어나갈 삼국지는 매 포스팅마다 간략한 원 역사 소개와 주요 등장인물 설명을 덧붙여 신규 독자분들은 물론, 기존 독자분들도 해당 장면을 다시 한번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제가 적어보고자 하는 포스팅 주제의 예시입니다.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 불지 않았다면?'
'충의의 상징인 관우가 유비와 헤어졌을 때 조조에게 귀순했다면?'
'소패왕 손책이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삼국지(三國志)는 중국 후한 말 황건적의 난(184년)부터 진나라의 통일(280년)까지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조조의 위(魏), 유비의 촉(蜀), 손권의 오(吳) 세 나라가 드넓은 중원을 무대로 패권을 다투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핵심 줄거리입니다. 유비, 관우, 장비로 대표되는 촉한의 인간적인 매력, 조조라는 걸출한 영웅이 이끄는 위나라의 조씨 가문과 사마의로 대표되는 냉철한 현실주의, 그리고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강동의 호랑이 손씨 가문이 버티는 오나라.
이 세력들의 끊임없는 경쟁과 협력 속에서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과 교훈을 선사합니다. 권모술수와 배신, 끈끈한 우정과 숭고한 헌신,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들은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입니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의 욕망, 지략, 리더십과 충성심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어 오랫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필독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처럼 삼국지는 마치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삼국지라는 거대한 서사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배경 무대가 되는 중국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가장 충실한 진수의 『삼국지』는 삼국 시대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반면 가장 유명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에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극적인 재미를 극대화했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지가 되었습니다.
머리말에서 언급한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는 원문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풀어내 한국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나온 황석영의 『황석영 삼국지』는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였다고 평가받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가 가장 대중적이며, 마찬가지로 머리말에서 언급했던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60권)는 만화 특유의 그림과 함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KOEI'라는 게임 회사가 『삼국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시리즈물로 내놓아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시대에 삼국지는 동아시아를 넘어 서양에서도 사랑받는 아시아 최고의 고전입니다. 하지만 각 문화권마다 특별히 선호하는 인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뛰어난 지략과 충성심을 겸비한 제갈량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혜로운 계책으로 촉나라를 이끌어가는 그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부에서는 '교육'과 '학업'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합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용맹함과 의리를 동시에 갖춘 관우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립니다. 그의 충성심과 용맹함은 중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며, 심지어 고대부터 지금까지 관우는 아예 '신'으로 추앙받으며 모시는 신당도 지역별로 심심찮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조운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좋은데 그 이유는 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무예뿐 아니라, 흔들림 없는 충성심 때문입니다. 주군 유비를 향한 그의 일편단심과 묵묵히 책무를 완수하는 강직함은 일본 문화의 '충'과 내면의 강인함을 중시하는 '와' 정신에 부합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경우는 실용주의적인 성향 때문인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인물들이 다양한 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권에서는 전략과 지략의 제갈량과 중심인물인 유비의 선호도가 높고, 미국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조조의 선호도가 높다는 점 등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 문화권의 역사적 경험과 가치관, 민족의 정서가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라는 새하얀 눈위에 첫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제가 풀어낼 삼국지 대체역사가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삼국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흥미로운 상상이나 주제가 있다면 편하게 댓글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작가인 제가 혼자서 만드는 삼국지가 아닌, 읽어주시고 소통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삼국지를 써 내려가고자 합니다.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이렇게 글을 올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기대감에 글이 많이 길어졌음을 양해 부탁드리며, 연재는 최대한 토요일에 올려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D
이미지 : DALL·E(개발사 Open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