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이틀 간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단연 발군이었다.
이래서 다들 장기하 장기하 하는구나. 절로 선창&떼창하게 만드는 강력한 후크의 노래, 이건 뭐 춤도 뭣도 아닌데 눈을 뗄 수 없는 독창적인 움직임과 표정, 헐렁한 듯 찰진 멘트, 혼자 흥분해 저 멀리 가지 않고 강약 조절하는 센스, 오늘 관객 최고다 우쭈쭈하며 추켜세우기, 그 와중에 흔들림 없는 가창력까지 진짜 어마어마한 무대 장악력이다. 공연 많이 하는 사람은 다르구나. 제일 좋았던 공연인데 정작 눈과 손과 입이 묶여(소리 지르느라..) 영상에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장기하 무대를 보고 다음날 마지막 순서인 이승환을 기대했다. 원조 '공연의 제왕'이잖는가. 혼이 쏙 빠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사실 좀 실망했다. 분명 실력은 나무랄 데 없고 노련하다. 그래.. 너무 노련하다. 이승환 공연 직관은 처음임에도 워낙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서 그런지 어떤 퍼포먼스를 할 지 예측이 되었다. 즉각 흥분 가능한 장치들(마이크 스탠드 다리 부분을 머리 위로 올린다든지)이 촘촘히 배치되었다. 관객의 호흡, 흐름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아직 본인도 예열이 안 된 것 같은데 무리해 달구려는 느낌. 여기에 더해 "페스티벌 치고 참 평화로운 분위기가 낯서네요" "(차분한 반응보고) 시작은 미미하지만.." 등등 관객을 도발하기도 하고, 가사에 갑자기 '이명박 개새끼'를 넣으며 관객을 벙찌게 만들기도 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꼰대가 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매번 새로우라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검증한 레퍼토리와 스타일은 필요하다. 관객이 오히려 그걸 기다리기도 한다. 기다리는데 해주면 진짜 가려운 데 벅벅 긁어주는 기분이다. 하지만 기계적이면 티가 난다. 관객의 수를 부지런히 읽어야 자신의 수가 안 읽힌다. 특히 성공 경험이 누적된 퍼포먼스일수록 도식화되기 쉽다. 그렇게 감정의 메커니즘을 머리로 외워버리면 영 재미가 없다.
어쨌든 정상에 있는 이승환에게 이런 감상을 남긴다는 것이 참 주제 넘기도 하고, 나는 뭐 얼마나 잘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이승환님 더 힘내주세요!가 아니라, 그냥 내가 더 잘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다. 나는 우리 콘텐츠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을까봐 항상 걱정이다. 우리가 나이들며 콘텐츠도 나이가 들까봐. 비교적 총명할 때 빨리 사업화를 해서 돈 버는 구조를 갖추고, 우리는 기획과 제작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새 사람을 넣어 새 피가 돌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그건 그냥 시간 싸움이다. 뒤에 바짝 쫓아오는 시간의 파도가 나를 집어 삼킬세라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패들링하는 거. 그거 말고 시간의 흐름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핑하듯이. 그러려면 태도가 중요하다.
관성적으로 자기 복제를 하지 않을 것
깊이를 내리든 새로운 시도를 하든 외연을 넓히는 데 있어 게으르지 않을 것
무리해 힙하고 쿨하고 새로워 '보일' 필요 없다. 진짜 내 가슴을 때리는지 심박수 점검할 것
나이가 들어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는 잘못 없다. 원래 속에 꼰대 베이스가 있는데 젊을 때는 괄약근을 잘 조이고 있다가 나이들어서 괄약근이 풀려 줄줄 새는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게 패널티가 아니려면, 괄약근을 더욱더 잘 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