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Oct 09. 2018

두 번째가 더 어려웠던 이유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출간하며

9월이 되길 오래 기다렸다. 트래블코드의 두 번째 책 <퇴사준비생의 런던>이 나왔다.


<퇴사준비생의 도쿄>에 이어 런던의 18곳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소개한다. 런던편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방식보다는 과거를 재해석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2만 원짜리 책을 200만 원에 파는 서점 ‘골즈보로 북스’, 요일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레스토랑 ‘밥 밥 리카드’, 주류 판매 면허가 필요 없는 술집 ‘B.Y.O.C.’, 3D보다 더 입체적인 영화관인 ‘시크릿 시네마’ 등 서점, 레스토랑, 술집, 영화관이라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 


첫 줄로 껑충!


런던편에 대한 고객 반응이 빠른 편이다. 출간 2주 만에 교보문고 경제경영 5위, 3주차에는 4위에 올랐다. 확실히 도쿄 때보다는 수월하구나 싶다가도 정말 그런가 곱씹어본다. 


아니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체감상 두 배쯤 힘들었다. 

도쿄는 대표님이 트래블코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수년간 스터디하며 내공을 쌓았던 도시다. 반면, 런던은 비교적 미지의 도시여서 취재하고 제작하는 동시에 지역에 대한 스터디를 강도 높게 병행해야 했다. 

또, 도쿄는 최근 5년 동안 한국 여행객 수 5위권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인기 여행지로 여행 수요가 <퇴사준비생의 도쿄>의 판매를 견인하는 면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런던은 마니아가 있을지언정 도쿄만큼 많이 찾는 도시는 아니다. 

그리고 '퇴사준비생'이라는 컨셉이 이미 한 번 노출된 지라 신선함과 파격이 덜할 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오히려 도쿄편으로 만들어진 기대감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런던편이 도쿄편에 준하는 퀄리티를 내지 못한다면 꽤 괜찮다고 하더라도 외면받을 것이다. 어느덧 도쿄편이 우리 내부의 경쟁자이자 준거 기준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두 번째 출간이지만 처음 하는 일이 많았기에 불안하고 버거웠다. 자체 출판을 했기 때문이다.  



자체 출판 -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첫 단추

자체 출판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교정교열, 편집 디자인, 인쇄, 물류, 서점 영업, 마케팅 등 출판사의 업무가 고스란히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의 크기와 범위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봉사가 코끼리 다리 더듬듯 하나씩 하나씩 클리어해갔다. 각오는 했지만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출간 일정이 조금씩 밀렸고, 또 어디서 일이 터질지 불안했다. 다 하고 나니 코끼리의 전라가 드러났고, 다행히 다음에는 코끼리 정도까지는 아닌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렇듯 인고의 자체 출판을 감행(!)한 것은 콘텐츠를 원소스 멀티유즈(OSMU, One Source Multi Use)하는 것이 트래블코드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은 시간, 돈, 사람 등 자원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트래블코드 콘텐츠는 해외 취재라 투자 규모가 크다. 일단 콘텐츠가 세상에 나왔으면 그 생애 가치를 멱살 잡고 끌어올려야 한다. 도쿄편만 해도 출간 후 1년이 지났지만 강연, 여행, 영상, 컨설팅, 디지털 콘텐츠 등으로 꾸준히 멀티유즈하며 생명 연장을 하고 있다. 반대로 책이 잘 팔리면 멀티유즈도 수월해진다. 여기에 다음 편이 나오면 이전 편의 판매량도 동반 상승한다. 이렇듯 트래블코드에게는 구간과 신간의 경계가 없다.


그런데 출판사는 명확히 신간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형 출판사의 경우 매월 많게는 수십 종이 쏟아져 나오는데 신간에 마케팅 예산과 인력이 배정되고 나면 구간이 설 자리는 좁다. 또, 멀티유즈가 출판업의 핵심이 아니다 보니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적극적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속도를 내기 전에 방향을 잘 고쳐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좀 느린 것 같아도 그래야 힘의 손실 없이 멀리 간다. 단순히 인세 외 출판사 수익을 추가로 확보하고자 자체 출판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번 자체 출판은 우리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기초 작업에 가깝다. 



한정판 제작 - 사례가 될 마케팅

그리하여 자체 출판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이어갔다.


김소영 전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책발전소'와 함께한 초판 저자 서명본 이벤트가 그 출발이었다. <퇴사준비생의 런던>의 첫번재 목적지인 '골즈보로 북스'를 벤치마킹해 한국에 최초로 적용했다. 골즈보로 북스는 책을 제품이 아니라 작품으로 만들어 2만 원짜리 책을 200만 원에 팔 수 있는 서점이다. 출판사와 협업하여 책의 한정판을 제작하고, 그 한정판에 예술작품처럼 넘버링을 하여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한정판은 일반책과 내용이 같지만, 일반책보다 책값이 비싸고, 저자의 유명세, 어워즈 수상, 영화화 등의 이슈에 따라서 책값이 오르기도 한다.


이 골즈보로 북스 모델을 본따 ‘책발전소’와 함께 <퇴사준비생의 런던> 한정판을 만들었다. 한정판은 다음의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예술작품처럼 500권의 한정판에 넘버링을 했고, 오리지널로서의 가치를 더하기 위해 사인을 인쇄한 것이 아니라 대표 저자인 이동진 대표님이 직접 서명했다. 또한 책 혹은 서점의 미래를 상상하며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한다는 의미를 담아 책발전소 김소영 대표님도 직접 서명했다.


둘째, 낮에는 일반판과 다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표지 하단에 디자인한 런던의 풍경과 비경 이미지에 야광으로 빛이 들어온다. 일반판의 표지는 런던을 여행할 때 쉽게 마주하는 풍경을 빅벤과 타워 브릿지로 표현하고, 트래블코드가 발로 찾은 18개의 목적지들로 비경을 표현했다. 여행하며 풍경 뿐 아니라 숨겨진 비경도 함께 경험했으면 하는 취지다. 여기에 야광이 더해지면서 또 다른 비경이 생겼다. 


셋째, 한정판은 일반판보다 책발전소에서 1주일 가량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저장할 수 있도록 포스트잇을 굿즈로 제공한다. 포스트잇은 책발전소 책소개의 시그니처인 크래프트지로 제작했다.


9월 7일, 100권 한정으로 온라인 사전 주문을 받았는데 주문이 폭주해 180권으로 서둘러 마감했다. 이어 14일 오프라인 판매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후 1주일 만에 잔여량을 완판했다. 물론 책방계에 다시 없을 셀럽 김소영 대표님의 유명세도 크게 한 몫 했다. 여기에 다음편을 기다리던 도쿄편 독자들과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는 눈 밝은 이들의 성원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그 후 감사하게도 4주 연속 당인리 책발전소와 책발전소 위례의 판매 랭킹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 한정판 제작은 품이 많이 들고 리스크가 있다. 야광 부분으로 인해 원가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제작 기간도 3~5일 더 소요된다. 제작 업체나 우리나 이렇게 정교하게 야광을 입힌 것은 처음이라 샘플 제작으로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파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책이 나오고 나서도 사인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곧 온라인 배송이 안 되는 추석 연휴라 그 전에 판매 기간을 최대한 확보해놓아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약간씩 지연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만약 기성 출판사와 진행하기로 했다면 모두 무리수였을 시도다. 우리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니고, 삼성 그룹 회장님도 아니고... '아이디어는 좋은데요, 그런데...'라고 사장되었을 거다. 게다가 한정판이라는 건 원래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추후에 내는 게 일반적인데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의 한정판이라니. 정말이지 자체 출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일에 치여서, 타이밍을 놓쳐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을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미처 알리지 못했다. 이렇게 뒤늦게라도 글을 남기는 이유는, 책을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직접 취재한 사례에서 받은 영감을 실제로 직접 벤치마킹한 사례가 좀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앞으로도 책의 OSMU의 일환으로 책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10월, 11월에 하나씩 차례대로 오픈될 예정이다. 일단 10월은 '마지막 페이지가 없는 책'을 시도한다. 책이 하나의 주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마지막 페이지가 필요하지만, 크리에이티브가 넘치는 도시에서 틀을 깨는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퇴사준비생의 여행’ 시리즈와 같은 콘텐츠는 하나의 도시에 대해 마침표를 찍기 어렵다. 도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크리에이티브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는 10월 중에 <퇴사준비생의 런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온라인 페이지(bagtothefuture.co)와 연계해 이어나갈 계획이다. (11월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컨피덴셜인 부분. 후훗)



세 번째는 조금 덜 힘들기를 바라며

혹여라도, 앞서 숨가쁘게 주르륵 적어낸 이야기가 마치 다 내가 한 것 마냥 들렸다면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건 트래블코드 이야기다. 대표님이 런던편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했던 이야기를 내가 소화한 만큼 전하고, 트래블코드는 입이 없으니 내가 보도자료마냥 대신하는 것 뿐이다. 나는 트래블코드이면서, 동시에 트래블코드가 아니다.


트래블코드를 시작하고 2년 넘게 늘 바빴다. 정확하게는 마음이 바빴다. 회사는 늘 나보다 먼저 성과를 냈다. 당연하고 기뻐할 일인데 조바심이 났다. 늘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작 내가 이룬 건 없는 듯한 괴리감, 이것 저것 갖은 일들을 해내고 있지만 나는 과연 뭘 잘 할 수 있는 사람일지 때아닌 진로 고민에 시달렸다. 회사와 나를 지나치게 동일시한 탓이다. 차라리 이미 다 커버린 회사에 들어왔다면 회사의 영향력과 나의 영향력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을텐데, 겸허하게 차근차근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면 됐을텐데. 회사가 작다보니 자꾸 회사가 한 일을 내가 한 일로 생각하려 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 끝없이 낙담했다. 내게 두 번째 책이 더 힘들었던 건 앞서 말한 자가 출판, 소포모어 증후군 등으로 인한 부담감 뿐 아니라, 미처 다 떼지 못한 과거의 계급장을 걷어 내고 민낯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담력이 아닌 실력으로 퇴사하라고 퇴사에 있어 '준비'를 역설하는 우리 책과는 달리, 나는 퇴사 준비 없이 퇴사해버린 퇴사생이었다. 


이제야 회사와 건강한 거리감을 가질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감히 나와 회사를 동일시하지 못하게 회사가 쑥쑥 잘 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동일시해가고 싶다. 회사는 이제 막 잘 나가(려)는/앞으로 잘 될 전도유망한 친구니까, 내가 그를 좀 더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멀리 돌아 왔지만, 회사와 나를 가능한 동일시하고 싶은 점은 여전하다. 다만 순서가 다르다. 과거에는 일단 동일시해버리고 나를 채찍질했다면, 지금은 차이를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이후에 간극을 좁히려 한다. 




이번엔 출간기조차 오래 걸렸다. 사실 첫 번째 책의 출간기는 책이 나왔다는 걸 하루 빨리 알리고 싶어 몸이 달았다. 지인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아쉬운 소리하고 홍보글 하나라도 더 쓰려고 안달복달이었다. 그런 것들이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도 안 되고. 대표님 및 회사 공식 채널로 홍보하고, 개별 글보다는 똑부러지는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해 알릴 수 있도록 한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내부인이 아니면 누구도 이렇게 낱낱이 기록하지 않을 것이기에 누군가 관심있게 찾아볼 이를 위한 아카이빙의 목적이다. 휘발성이 강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고 브런치에 먼저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덕분에 긴 호흡이어도 부담이 덜하고, 시의성을 우선하기보다는 시차를 두고 다듬어 담는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 느낀 나의 소회도 꼼꼼하게 담기 위해서다. 어쨌든 내 글의 첫 독자는 나니까, 오래 두고 반복해 돌아 볼 나이테를 만들자는 차원에서. 세 번째 책과 출간기는 좀 더 쉽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콘텐츠 맛집의 비법 전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