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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1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5-

8

 수원은 아버지 김주영의 죽음 이후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 그는 열 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 수원은 공부를 곧잘 해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경찰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수사관이 되고 싶었다. 정엽은 낙심해서 영정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원을 물끄러미 처다 보았다 조문을 오는 사람과 형식적으로 인사를 할 뿐이었다. 정엽은 향을 꼽고 절은 한 뒤 수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수원은 그를 힐끗 그를 쳐다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정엽은 수원의 아버지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엽도 작전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김주영에 모습과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영정 앞에 웅크리고 앉은 수원에게 정엽은 말을 건넸다.


잠깐 나가서 바람이나 쐴까? 수원은 고개를 한번 들고 정엽을 처다 보았다. 수원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두 눈은 퀭해 보였다. 며칠간 제대로 잠을 이루지도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이었다. 수원은 잠자코 정엽을 따라 장례식장 공터에 나란히 앉았다.

아버지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셨어.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엽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는 정엽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어느 정도 친밀감도 있었다. 성격도 잘 맞았고 큰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자신의 후배라고 정엽을 소개해 준 때를 떠올렸다.

 강력팀에 처음 왔을 때 아버지가 많은 부분을 챙겨주셨어. 그래서 항상 마음의 빚이 있지.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잘 와 닫지가 않을 거야. 사실 나도 너와 비슷한 일을 겪었어. 수원은 정엽을 쳐다보았다. 수원은 뭔가 얘기를 꺼내려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거야. 도움이 필요하거나 하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을 주면 돼.

장례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주영의 비위 사실에 대한 감찰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정엽은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몇 명은 귓속말로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엽도 대충은 떠도는 말들을 알고 있었다. 김주영의 몸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설마? 아냐. 주영선배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했다. 정엽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을 떠올렸다. 의식을 잃기 전 환상일까? 정확하게 본 것일까? 자신도 확신이 잘 들지 않았다. 누군가 김주영의 몸에 주사기로 무엇인가를 꽂는 마지막 모습을 그는 잊지 못했다.


 수원은 아버지의 유품을 돌려받았다. 자질구레한 서류들.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주인을 잃은 채 박스 상자에 담겨 있었다. 수원은 물건을 정리하며 아버지의 수첩을 살폈다. 내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여러 메모가 적혀 있었고 스케줄과 책의 감상 같은 것들도 보였다. 수원이 모의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장래 목표를 이뤄주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원은 모의고사를 보고 점수가 잘 나온 날 아버지와 외식을 했고 아버지가 소주를 마셔 많이 취했던 날이었다. 새록새록 추억이 떠올랐다. 근처 수목장례식장에 아버지를 묻었다. 아버지는 형제가 없었다. 명절에도 둘은 종종 여행을 가고는 했다. 처음으로 혼자 맞는 명절에 수원은 혼자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에 머물며 며칠간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숙소에 돌아와 쉬고는 했다. 몇 달 후 수능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럭저럭 서울의 중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는 만들 수 있었다. 사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담임과 상담을 하고 온 날 수원은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서자 사정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긴 꿈을 꾸고 있는 듯 착각이 들기도 했다. 수원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다 수첩을 마지막장까지 반복해 읽다가 수원은 문득 뒷부분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첩의 시크릿 주머니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어떤 수첩은 손으로 뜯어 종이나 물건을 넣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제품은 일반적인 수첩이었지만 전자메모와 음성녹음 기능이 있었다. 수원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첩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뒷장은 음성녹음이 가능했고 도구가 없이 손으로 필기도 가능했다. 김주영이 김연희기자에게 받은 레트로 전자수첩이었다. 피가 묻은 손으로 만졌는지 손가락 자국이 액정에 남아 있었다. 이게 뭐지. 수원은 경찰에서 이 내용을 경찰에서도 알고 있는 것인지. 혹시 모를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파일을 확인하고 보이지 않게 필기된 자국을 확인했다. 며칠을 고민한 뒤 수원은 고민 끝에 정엽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주말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수원은 삼십 분 정도 일찍 나와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엽이 카페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수원을 찾았다.


어떻게 지냈어? 전보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인다. 뭐라도 좀 잘 챙겨 먹고 다녀라. 수원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말이 없구나. 나한테 부탁할 것이 있니? 정엽은 조심스레 수원에게 말을 꺼냈다.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저한테 유품 전해주기 전에 아버지의 소지품은 다 검사해 보셨겠죠? 그리고 돌려줬을 테니.

그래 특별한 것은 없었고 네가 간직해야 할 것 같아서 다 보내 준거야. 수첩에 아버지가 남긴 것도 보셨나요? 수첩 뒷장에 마그네틱 필기와 음성 녹음이 가능한 부분이 있어요. 그 안에 아버지가 남긴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 거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 같은데. 뭐였어? 중요한 정보일수도 있을 거다. 정엽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아버지는 왜 저렇게 되신 거죠?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했는지.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 때문인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아요. 제가 모르고 있는 게 있는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것인가요? 아버지가 비리에 연루됐나요?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 잘 아시잖아요. 정엽은 잠시 침묵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일단 그 포켓에 뭐가 있었는지부터 얘기해 줄래? 중요한 정보가 될지도 모르니.

아뇨,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아버진 왜 저렇게 되셨고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거죠? 수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차갑고 냉정했다. 저한테는 아버지 밖에 없었어요. 친척도 없고 어머니는 예전에 돌아가시고 그런 아버지가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셨는지. 알고 싶은 겁니다. 정엽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김 선배의 아들이라고 해도 기밀을 알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수원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정엽은 말을 꺼냈다.

아버지는 마약 공급책을 수사하고 계셨다. 우리는 목표에 거의 도달했어. 그들은 카르텔도 있을 것이고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회가 닿아서 우리가 물건을 구매한다는 연락을 했고 잠복을 했지아버지가 기획수사 경험이 많고 무술능력도 뛰어나서 그 역할을 하신 거야. 그러다가 사건이 터진 거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어. 뒤따라 검거하려 했던 우리가 늦기도 했고. 우리의 잘못도 있다. 정엽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럼 이게 아버지의 목숨 값인가요? 이따위가. 이것을 위해서 돌아가신 거예요? 수원은 지퍼백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수첩과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뒷장을 보세요. 마그네틱으로 이뤄져서 비밀리에 메모를 남길 수 있어요. 거기 글자가 쓰여 있어요.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도 있고 들어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게 아버지가 남긴 거냐? 지금은 네가 어려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너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네요. 수원은 수첩을 정엽에게 던졌다. 지퍼백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갔다. 정엽은 그런 그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는 문을 열고 골목을 돌아 재빨리 사라지고 있었다.


9

 희미한 백열등 불빛이 느껴졌다. 정엽은 수원과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장례식장에서 어린 수원은 정엽을 잡고 절규했다. 수원의 얼굴은 갑자기 어머니로 변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형체가 없었다. 어머니는 정엽에게 무엇인가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주변이 낯설었다. 수원의 아버지 김 선배가 남겨준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 일지 모른다. 그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이 꿈에서 자신에게 뭔가 얘기를 한 것도 그런 이유일 수 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얘기를 잘 들어달라고.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나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집이 아닌 낯선 천장의 모양을 보고 이곳이 개성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의식이 깨어나고 눈에 조금씩 눈에 빛이 스며들었다. 희미한 형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정엽은 자신의 온몸을 만져 보았다. 팔과 다리는 멀쩡했다. 잠시 후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분명히 아니었다. 김수혁 대위가 총에 맞았고 마지막까지 차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 힘을 다했다는 기억도 있다. 온몸에 통증은 있지만 의식이 돌아온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를 살피자 병상이 보였다. 병상은 낡고 초라했다.


 눈을 뜨자 시멘트로 된 바닥에 4개의 침대가 있었다. 누렇게 변색된 칸막이가 출입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낡았지만 정돈 상태는 좋아 보였다. 머리를 만져보니 붕대가 감겨 있었고 핏자국이 만져졌다.  자력갱생, 빠른 회복이라는 액자가 문 앞에 걸려 있었다. 창밖으로 어슴푸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던가. 정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철제 침대는 움직이기만 해도 삐걱 소리를 냈다. 병실의 이불에서는 소독약과  낡은 면직물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문득 김수혁 대위 생각이 났다. 김 대위는 무사할까. 그의 생사가 궁금했다. 정엽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피와 흙으로 뒤범벅된 자신의 옷이 있었고 팔에는 수액이 꼽혀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진통제를 맞았는지 온몸이 허공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엽은 갈증을 느껴 물을 찾았다. 미닫이 문을 손바닥으로 쳐서 간호사를 불렀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문을 열고 병원 복도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동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저기 여보세요. 정엽이 차트를 보고 있는 간호사에게 말을 꺼냈다.

아.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정엽은 간호사의 말투를 듣고 여기가 남한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꿈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누군가 했더니 남조선에서 온 분이시로구먼. 잠깐만 기다리시라요. 의사 선생님 모셔 오갔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일단 병실로 가시자요.

정엽은 다시 간호사를 따라 병실로 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tv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잔뜩 모여 토론을 하는 것 같은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재해에 대비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면 다른 사람이 열심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커다란 자막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거대한 붉은 글씨가 화면중심에 거친 궁서체로 나타나는 모습은  낯설었다.


몸은 어떻습니까? 하얀 가운을 입은 50대 중년으로 보이는 작은 키의 뿔테 안경을 낀 의사가 정엽의 입원실로 들어왔다.

일단 걷을 정도는 되는 것 같고 특별하게 아프거나 한 데는 없습니다. 충격으로 허리와 어깨 쪽이 잘 펴지지 않네요. 정엽은 목 관절을  돌리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찢어져서 일단 봉합시술을 했습니다. 그 외에는 사고로 인한 큰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아마 충격으로 발생한 근육통 같은데 그만하기 천만다행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며칠 몸을 추스르고 퇴원하면 될 겁니다.

아, 저와 함께 타고 있던 김수혁 중위는 어떻게 됐습니까?

 관통상을 입었더군요.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회복실에 있는데 관통부위가 깨끗해서 다행입니다. 봉합하고 응급 처치를 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피를 좀 흘려서 수혈 후 치료가 이뤄졌습니다. 아직 의식이 없을 테니 이따가 만나 보시라요. 의사의 말투는 기계적이었고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담담했다.

감사합니다.

일없습니다.  간호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조선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던데 이번에 큰일 치르셨습니다. 유엔군에 총질을 하니 여간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 아니구먼. 총상환자는 관계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를 하도록 돼 있습니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뭐 의미가 있갔습니까. 그냥 절차라고 생각하시라요.


 정엽은 김수혁 대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환자실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정엽은 김대위가 근처 군 병원으로 호송될 것이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김수혁 대위는 몰라도 자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정엽은 일단 개성의 숙소로 움직이기 위해 평화유지군의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정엽은 이동 중 생각했다. 내가 탄 차량에 조준 사격을 했다면 그곳을 지나갈 것을 예상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우리에게 총을 쏜 것은 누구인가.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전복된 차량에다 확인사살도 가능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 평화유지군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북한 세력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인가. 의식을 잃을 무렵 어렴풋하게 본 그자는 누구인가. 정엽은 의문점을 정리했다. 무궁화 부대의 다른 부대원이 몰고 온 차를 타고 평화유지군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정엽은 이병수 대령을 찾았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정엽을 맞이했다. 특유의 과장된 톤으로 그는 말을 꺼냈다.


아이고, 어떻게 괜찮으십니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천만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수사관님이 여기까지 오셔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병수 대령은 뭔가 호들갑을 떠는 듯 보였다.

가벼운 타박상이라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이번사건을 국수본 쪽에서 조사하는 게 뭔가 달갑게 보지 않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정엽은 붕대를 감은 왼쪽 손목관절이 욱신거리는 거렸다

어허, 아무래도 몸을 생각하셔야죠. 일단 조사는 좀 미루고 월경을 해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떨지요 조사해야 뭐 별게 있겠습니다. 군 탈영병이나 반군 아니면 불순분자들이겠지요. 공단에 불만을 품은 사회주의자일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일은 일이니까요. 바로 돌아갈 수는 없지요. 참 김수혁 대위는 어떻게 됩니까? 정엽은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군 병원으로 일단 이송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엽은 평화유지군 차를 타고 군 병원 입원실로 향했다군 병원 특유의 경직된 듯 한 분위기와 느낌이 들었다소독약 냄새가 유독 진하게 느껴졌다. 가운을 입은 군의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혁은 잠에서 덜 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오른쪽 팔과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 이수사관님.

몸은 좀 어떻습니까? 의식은 언제 찾으셨나요? 병실에서 잠든 것은 봤는데요.

수사관님이야 말로 괜찮으신가요? 이쪽으로 이송되면서 깨어났습니다. 통증이 있어 진통제를 좀 맞았고요.

저는 가벼운 타박상정도라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관통상이라고 했는데.

네 뼈에는 이상이 없고 한 일주일 정도면 회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와서 이런 일을 다 겪네요.

큰일 치렀습니다.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정엽은 크게 안도하는 말했다.

군대야 뭐 총상은 언제든 노출돼 있다고 봐야죠. 여기 치안상황을 봤을 때 늘 있는 일입니다. 몇 달 전에 총격전도 있었고요.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씁쓸한 듯 웃음을 지었다. 벤처회사 직원같은 외모에서는 전혀 상상할수 없는 모습이었다.

제가 총도 두어 번 맞아봤고 폭발물도 처리한 적이 있어서 잘 알죠. 맞은 자리가 어찌나 쑤시는지 그거 쉽게 맞을게 아니더군요. 정엽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수사관님도 편하게 지내실 운명은 아닌가 보군요.  그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틀 전에 차에서 얘기한 붉은 눈 있잖습니까? 그게 대체 뭡니까? 우리에게 총격을 가한 누군가를 얼핏 본 것 같은데 멀리서 걸어오는 듯 보였습니다. 확인사실을 해서 우리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쳤고 저는 의식을 잃은듯해요. 죽이지는 않았죠.   

우리가 단순하게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요. 세상일이라는 게 우연이 영향을 끼칠 때가 있잖습니까. 우리 사고를 지나가던 평화유지군 차량이 발견했습니다. 멀리서 사고 모습을 봤다고 하더군요. 기사회생한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수사관님 말대로 확인사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음... 붉은 눈에 대한 것은 지난번에 들은 얘기가 전부입니다. 정확한 것은 모르는데 주민들한테 얼핏 들은 얘기라서 말이죠. 탈영병이라는 얘기도 있고 한 두 명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는 것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얘기를 들었다는 그 사람을 혹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폭발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후임에게 얘기를 해 두고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합니다. 일단 여기는 좁으니까 수소문을 해서 소문이 돌면 가능성이 있기는 하죠. 수혁이 통증이 있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의심스러운 부분은 조사를 해봐야겠지요.  정엽은 숙소와 돌아와 김상효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나? 건질 게 있었어?

들으면 웃으실 겁니다. 저 총에 맞을 뻔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뭔가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이대로 돌아가긴 아쉽고 뭔가 들고 가겠습니다. 어쨌든 체류기간 이 남았으니 며칠 더 정보를 캐 보겠습니다. 복직은 해야 하니까요. 폭발과 관련된 이쪽 보고서의 세부 내용들하고 여러 자료들 그리고 이곳 상황은 정리해서 보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나머지는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너 또 무슨 사고 친 것은 아니겠지? 조사는 잘 진행하고 있는 거 맞아? 부장이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물론이죠. 사고는 났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그럼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정엽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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