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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1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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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 평화유지군 부사령관 이병수는 개풍군 삼악산 근처 교차로 삼거리에 차를 댔다. 그는 익숙한 듯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시간은 새벽 2시에 가까웠다. 이병수는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한 미등을 켠 차는 툴툴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엔진소리가 거슬린 듯 시동을 끈 뒤 하늘을 보았다. 늦은 가을 풀벌레는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폐부로 들어왔다. 잠시후 담배를 꺼내서 한 모금을 빨았다. 연기를 내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온 길을 뒤돌아 바라보았다. 궁데군데 달빛에 걸려 잎사귀를 떨군 나무가 흡사 가로등처럼 보였고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암흑에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이병수가 개성에 온 것은 2년 전쯤이었다. 마르크 박사가 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었기에 그는 번번이 진급에서 밀리고 후방부대를 전전했다. 평화유지군 충원과 선발대 교체 파병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병수는 파병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일단 외국에라도 나가서 돈이라도 벌 심산이었다. 파병 지역이 개성이라는 말을 듣고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을 수 있음에 안도했다. 물론 수당은 줄어들겠지만 후방에서 잡일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 도착한 개성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가전과 함께 내전에 가까운 전투가 벌어져 일부 도심은 쑥대밭이 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장비는 없었다. 치안은 엉망이었고 폭력과 살인 등이 빈번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북조선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진 듯 보였다. 도난과 총격사고로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새기 일수였다. 잦은 야간 작전에 당황스러웠고 갑작스러운 총탄 세례를 당한 적도 있었다. 건물을 보수하고 치안을 확보하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물자도 부족했고 자재도 수급이 불안정했다. 외자유치가 절실한 곳이었다


유엔평화 유지군에 대한 불만이 있는 집단과 일부 군부세력과 탈영병들은 시도 때도 없이 테러활동을 이어갔고 교전도 종종 발생했다. 목숨을 잃은 부대원도 있었고 그 역시 여러 번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개성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파견행사가 진행되었다. 의례적인 인사말과 행사들이 이어졌다. 이병수 대령은 안경을 쓴 우람한 몸의 한 사람이 멀리 행사장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를 만난 것은 행사가 있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병수는 갑작스레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보고를 듣고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집무실을 나갔다.


 이병수 대령님?

 매끈한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는 이병수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의미 있는 정보는 없었다. 연락처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이병수는 의심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잠시 후 검은색 수트 차림의 사내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흡사 오래된 외화 속 성우의 발성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번 파병에 지원하셨더군요. 지원자로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허허, 누구신지 혹시 국정원인가요? 아무래도 북쪽으로 가는 것이라 안보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저는 그냥 맡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보안사항이니 뭐니 국정원에서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직원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국정원소속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직 본론을 꺼내지 않은 것 같다고 이병수는 직감했다.

이병수 대령님이 부사령관관으로 파병을 가는 것에 저희가 조금 도움을 드렸습다만 몇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요. 대령님이 적격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음. 국정원이 아니라면 제가 도움을 받을 부분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직원을 쳐다보았다.

사실 저희는 이병수 대령님께서 여러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배식업체 수의 계약부터 각종 현물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 등 증거자료는 차고 넘치더군요. 이미 확보했죠. 뭐, 관행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여러 부대에서 해오고 있는 중이니까요.

뭐요?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이병수는 기분이 나쁘다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선 굵은 인상에다 눈에 힘을 주니 미간에 주름이 크게 잡혔다.

에... 뭐 사실 알고는 있습니다. 부모님 병치레와 장애가 있는 자녀의 돌봄비 등등 돈 들어갈 곳이 많죠. 그래서 저희도 합리적으로 생각해 제안드리는 겁니다. 이병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령님께서 추가 업무를 해주셔야 할 것은 두 개가 있습니다. 우선, 김기현 박사의 행방을 좀 알아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현재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김기현은 한국식 이름이고 마르크박사로 보통 부릅니다. 그는 2차 공단 서해산업이 설립된 뒤 연구시설을 맡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서해산업은 의약품 원료와 완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입니다. 부근의 안전관리와 경호 등 몇 가지 특별히 맡아서 진행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일은 차후에 알려 드릴 겁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진행된다면 대령님이 부대에서 했던 일은 관행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이병수는 잠시 침묵했다.

관련증거를 없애려고 해도 이미 내사가 끝났고 물증은 이미 확보되었습니다. 확답은 파병식이 있는 날까지 해 주시면 될 겁니다. 직원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긴 이들이 증거도 없이 움직일 리 없다. 이병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단 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내뱉듯 말을 꺼냈다.

네 생각할 시간은 드려야겠죠. 하지만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와 계약한 부분만 잘 처리해 주시면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연락은 저희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마르크 박사와 관련한 자료는 확인해 보시면 될 겁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능글맞은 눈웃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일주일 후 파병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병수는 그가 돌아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쳐다보고 있음을 직감했다. 군용 지프의 전조등은 길을 따라 좌우로 흔들리며 점점 그가 서 있는 곳과의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뻗어 갑작스러운 위험에 대비하려 했다. 김병철과 거래가 있었지만 어쨌든 조심해야 한다. 김병철이 차에서 내리고 옆으로 부관쯤 보이는 군인이 바짝 붙어 있었다. 그는 이병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 오랜만이군 기래. 얼굴은 좋아 보입니다. 김병철은 능글맞게 그에게 안부를 대신한 덕담을 던졌다. 이병수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그의 경직된 얼굴에서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왜 보자고 한 겁니까? 이렇게 연락 안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텐데요.

우리가 서로 잘해보자고 이렇게 만난 것 아니겠소. 지난달부터 대금회수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어떻게 됐는지 확인차원에서 만나자고 한 거요. 부사령관이 일을 허투루 처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진작 알고 있었소만.

거 왜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켜서 지금 잔뜩 예민해져 있는 거 아니요. 왜 그런 일을 벌입니까? 이러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외부의 관심이 쏠리게 되잖소. 서울에서 파견 나온 놈이 지금 들쑤시고 다니는 것 알 거 아닙니까?

아 물론 알지. 그런 놈이 혼자서 해봐야 뭘 하겠어. 그냥 관광 온 거지. 그래서 살짝 겁을 준 것 아니겠소

일처리를 제대로 하려면 아예 후환을 없애던가. 그렇게 독이 오르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요. 이제 상부에 보고해서 더 파고 들 텐데. 이러면 우리가 약속한 것은 더 어렵게 될 수 있어.

뭐라? 나는 최대한 평화유지군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야. 거기서 누군가 죽어나가면 일이 더 커지지. 최대한 겁을 줘 돌아가도록 뭔가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주려고 한 거라 다른 뜻은 없었소. 아니면 처음부터 이쪽으로 오지 말게 해야.

그건 내 권한 밖이요. 이병수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사고를 칠 거면 미리 알려줘야 할 거 아니요. 그 인간이 그냥 물러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요. 국수본이 여기에 들어온 것도 뭔가 꼬투리를 잡아보려는 심산인데 그놈이 물고 늘어질 놈인지. 대충 하고 갈 놈인지를 따져보고 일을 저질러야지. 그는 흥분했는지 말투가 조금 빨라졌다.

가뜩이나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얼마 전부터 그놈도 나타나 귀찮은 것 투성이구만. 그는 김병철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부관이 끼어들려 하자 김병철은 부관을 저지했다.

일이 수습되는 대로 조만간에 내가 연락할 거요. 따로 언질을 주던가. 그전까지는 위험하니 엎드려 있어야 할 것이고. 약속한 비율은 그때 정산해야 하지 지금은 곤란해요. 더 이상 할 말은 없으니 일단은 그렇게 알고 오늘은 그만 가보겠소. 이병수는 시동을 걸고 차를 운전해 삼거리를 돌아 나갔다. 뒷바퀴에 흙이 튀어 먼지가 자욱하게 일자 미등이 먼지를 뿌옇게 비췄다.

대장님, 부관이 김병철을 불렀다. 할 말이 있다는 투였다.

잠자코 있어라.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김병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멀어지는 빨간 미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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