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1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8-

10

 저녁때가 되자 장마당은 활기가 넘쳐났다. 정엽은 시장입구에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식당 벤치에 걸터앉아 국수를 시켰다. 50대로 보이는 가게의 여 사장은 이리저리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손님이 먹은 그릇을 치웠다. 중국어와 베트남어가 들렸고 일과가 끝났는지 노동자로 보이는 이들은 음식을 기다리며 얘기를 주고받기 바빴다. 허름한 목조 건물 앞에 몇 개의 평상이 있었고 각각의 수저통에는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이 꽂혀 있었다. 누런색 천막에 검은 이물질을 닦아낸 얼룩이 곳곳에 보였다. 정엽은 자신이 마치 방콕의 한 전통시장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멸치육수로 맛을 낸 국수와 간단한 채소 절임을 내어 주었다. 그녀는 음식을 주며 그의 옷차림과 외양이 이곳 사람들과 다른지 정엽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엽은 음식을 맛보았다. 국물을 한 숟가락 들이켰다.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절반쯤 먹었을 무렵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너 댓 명의 사내들이 멀리서 정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리의 사내들은 걸음을 옮겨 정엽이 앉은자리 옆으로 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 할매 여기 국수 세 그릇 주소. 그중 한 명이 정엽을 가리키며 말했다. 

와 이 옷 좀 보라우 비싼 거 같아 보이는데. 여기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어디서 굴러먹다 온 긴가. 진갈색 점퍼를 입은 무리 중 하나가 정엽에게 시비를 걸었다. 막 일을 끝내고 온 것인지 이들의 몸에서 땀 냄새와 특유의 암내가 느껴졌다. 다들 인상이 강해 보였다. 몸은 말랐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정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국수를 먹었다. 

하. 이것 좀 보라. 이게 우리를 완전히 개 무시 하는데 그래.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던. 말을 못 함? 공화국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뭔가 소리는 내야 할 것 아니야. 정엽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외지인처럼 보이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정엽은 그의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거 웃네. 우리가 우스워 보인다는 말인가.

밥 먹는데 그러지 말고 저리들 가시죠. 정엽은 건조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 앞에 서있는 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말투를 보아하니 남조선 놈 같은데. 공단에 있다가 왔나? 남조선 놈이 여기는 뭐 하러 와서 국수를 처먹고 있어? 니들이 우리 이용해서 돈 벌어 다 뜯어가는 거 못 봐주겠는데 잘 됐구먼 그래.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상을 걷어찼다. 철그렁 소리를 내며 국수와 음식이 바닥에 널 부러져 시멘트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정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 중 한 일원을 노려보았다.  


무서워서 어디 살갔나? 마음대로 해 보라우. 정엽은 자리를 피해  주인을 찾아 계산을 했다. 이들의 출현과 소란에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것을 보니 소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정엽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식당입구에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듯 했다. 개풍군으로 이동할 때 차량이 전복됐을 때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어딜 가려고. 그가 어깨 근처에 손을 대자 정엽은 순간적으로 왼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채 팔을 뒤틀어 버렸다. 이후 상대방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신근지대를 강하게 누르고 자신의 오른쪽으로 팔을 당겨 상대를 내동댕이쳤다. 정엽이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자신의 두 손을 들고 뒤돌아보자 나머지 두 명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모양이었다. 

보통 놈은 아닌 거 같은데 어디서 굴러먹다 여기 와서 소란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슬쩍 웃음을 보이며 바지 밑단에 묶어둔 칼을 끄집어냈다.

소란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 만드는 것 같은데. 정엽은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진갈색점퍼를 입은 남자는 몸을 낮추고 칼을 양손으로 번갈아 잡으며 정엽을 노려보았다. 그는 오른손을 뻗어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크게 칼을 휘둘렀고 정엽은 주변에 있는 쟁반을 주워 들어 칼을 막아 냈다. 가슴과 목 그리고 복부를 노리며 그는 칼로 정엽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의 동작은 거침이 없었고 이미 실전에서 여러 번 칼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듯했다. 정엽은 멀리 음식점 문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에서 그 붉은 눈의 사내를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비슷했다. 순간 혹시 그날 총격을 가한 놈은 아닐까라고 정엽은 생각했다.

그때 시장입구 쪽에서 평화유지군이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한 명이 하늘로 총을 쏘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운 좋은지 알라. 다음에 보면 아마 제 발로 걸어서 가진 못할 거야. 이들 무리들은 음식점 뒤편으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정엽은 쟁반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었다. 평화유지군 무리와 같이 온 김시후가 상황을 파악하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네, 큰 문제없습니다. 이들은 누굽니까? 

이곳 일대의 조직 폭력배 일 겁니다. 평화유지군 요주의 관리 대상입니다.

단순한 폭력배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훈련을 받은 듯 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은 확실하지 않은데 총격을 가해 사고를 일으킨 놈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듭니다.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대화가 이어졌다. 상황극이 마무리된 기분이었다. 누군가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것은 아닐까라고 정엽은 생각했다. 시후와 시장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정엽은 배후가 있는지를 물었다. 

저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직 없습니다. 누군가가 뒤를 봐주고 있을 수도 있죠. 

평화유지군에서 저들부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엽은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물었다.

네 물론 그렇죠.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직접 군에 대항하고 한 적은 없어서 저희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다 둘러보셨나요. 이수사관님 외양이 여기서는 상당히 튀어 보입니다. 옷도 그렇고요. 정엽은 감색의 슈트를 입고 있었다. 

말투가 남한 말씨인데 더욱 그렇죠. 다들 모르긴 해도 한번 눈에 들어오면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장마당 사람들은 다들 기억할지도 모르죠. 시선을 좀 느끼셨나요? 여기 무기 들고 강도짓도 합니다. 무장해제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수거되지 못한 무기도 많으니까요. 정엽은 그의 말에 수긍은 하면서도 딱히 대답은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풍경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시후는 묵묵히 운전을 계속해 나갔다. 개성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상향등 라이트를 켰지만 안개와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웅웅 거리는 지프차의 디젤 엔진음이 다른 공간을 걷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주 오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차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정엽은 스스로 말을 걸고 있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조사하는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까지.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직은 종종 정엽에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한다. 작전 중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개성에서도 이런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엽은 불만은 없었다. 조직의 요구를 묵묵히 따랐다. 국수본은 마치 자신이 속해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안에서 정엽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조사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개성을 취재했던 CBN의 김희수 부장에게 들은 가이드 림영수에 대한 면담 요청도 묵묵 부답이었다.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월경 전까지 만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휴민트를 통해 당부를 해 놨지만 무소식이다. 당장 내일까지 연락이 와야 한다. 부장에게 보고할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자신을 보낸 것이 단순한 폭발 사고 조사는 아닌 듯했다. 뭔가 이 공간에 묵직하지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건이 웅크리고 있다. 사건들은 분명 조각처럼 뀌어 맞춰질 것 같은데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 조각부터 끼워 넣어야 한다. 사건들이 각자 자신들의 말과 사연으로 이야기를 걸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엽은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안개처럼 막연한 뿌연 형체만 느껴질 뿐이었다. 정엽이 돌아올 무렵 이병수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병수는 정엽의 차량이 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부관이 노크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부관은 이정엽 수사관의 행적과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를 하자 이병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엽은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받아온 자료를 정리하고 부장에게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업무 메일을 확인했지만 아직까지 폭발물에 대한 보고서 내용은 없었다. 그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만한 주체는 누구인가개인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테러인 것은 분명하다. 군이나 조직의 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노리고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가. 보고서 작성을 마치자 그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업무용 메일로 부장에서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개성에서의 며칠이 마치 몇 달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자 의식을 잃고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정엽은 꿈을 꾸었다. 갈색점퍼를 입은 남자와 싸움을 벌였던 기억이 그의 무의식을 파고들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과 싸움을 하는 것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다. 대응을 위해서는 나도 무기를 찾아야 한다. 사람이 많아 총을 꺼내들 수도 없었다. 


 연이은 몇 번의 총격으로 인한 충격이 아직도 그의 기억을 지배했다. 광장 집회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정엽은 꿈에서 남자의 칼에 찔렸다. 불덩어리가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내장의 고통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숨이 막힐 것 같은 거부감과 이물감이 들뿐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은 이후에 밀려온다. 총을 맞았을 때와 비슷하다. 다만 총은 더 묵직한 무엇인가가 몸을 누르는 느낌이 있다. 잠에서 깨니 6시였다. 눈은 아직 명암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커튼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북쪽지역의 하늘에 점점이 몇몇의 샛별이 눈에 들어왔다. 송전선으로 보이는 첨탑 끝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불빛도 보였다. 정엽은 그때 usb메모리를 떠올렸다. 사고가 나기 전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것도 아닌 듯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몸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정엽은 주머니에  usb 메모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래전 쓰던 것인데 잊고 있던 물건이라 낯설게 보인게 아닐까. 슈트 주머니에 두고 잊어버리고 있던 것인지 모른다. 메모리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혹시 중요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백업을 하기 위해 메모리를 살폈다. 낯선 폴더와 파일이 보였다. 바이러스를 체크하고 파일을 열었다. 정엽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파일들을 검토하며 깜짝 놀랐다. 과연 믿을 만한 자료인가. 하지만 거짓된 자료를 이렇게 많은 수고를 들여서 만들 이유도 없다. 자료는 이병수 대령의 비위 목록과 내용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가 받은 상납금액이 기록된 문서였다. 다른 내용들은 암호화된 파일이었기에 당장은 열어볼 수 없었다. 개성공단 운영 관련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수집목록도 들어있었다. 정엽은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다. 암호화된 파일을 열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네트워크를 차단했고 방안에 비밀리에  CCTV가 설치돼 있을지도 모르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조명을 조절해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하고 다시 메모리를 열었다.


 대체 이 메모리가 어디에서 난 것일까. 자신이 총격을 당해 의식을 잃은 순간에 누군가가 전달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순간이 있었던가. 상황을 유추해 봤을 때 그것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부대의 누군가가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의료진이 그럴 일을 할 이유도 없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외부인이 들어온 흔적도 느끼지 못했다. 정엽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이병수 대령과 미팅을 해야 하기에 옷을 갖춰 입고 숙소를 나왔다. 저 멀리 사병들의 구호소리가 멀리서 그의 귓가를 울렸다. 군인들이 웃통을 벗고 부대와 시가지 일대 새벽구호를 하는 시간이다. 이병수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빨리 내려갈 것을 종용할 것이다. 정엽도 일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부장과 얘기해 대처방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체류일정은 하루가 남았다먼저 대령에게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는 대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병수 대령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집무실 의자에 파묻혀 모니터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과잉 친절한 상점의 직원처럼 정엽에게 괜찮냐는 말로 후유증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스친 정도라 괜찮습니다. 약간 욱신거리지만요. 

이 수사관님이 아직 총을 맞아보지 않아서 그럽니다계속 통증이 느껴질 겁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보고서도 받으셨을 테고 바로 월경을 하시는 게.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총은 사실 맞아 봤습니다. 전에. 죽다가 살아나기도 했죠. 원래 광수대에 있었습니다. 정엽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웃었다. 

음……그래요? 이 수사관님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네요. 이병수는 몰랐던 내용을 확인한 듯 놀란 표정이었다. 여러 모습 중 놀란 지금의 표정이 진짜 가면이 없는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정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이곳에 수사든 조사든 하러 오셨다면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겠죠. 서슬 퍼런 국수본 아닙니까. 허허. 

네 며칠간 여러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우선 드립니다. 어제 공단 근처에서 누군가 저를 위협하더군요. 지역일대의 단순폭력배 들인 지 이권을 잡고 있는 조직화된 폭력조직인지. 탈영병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할 듯싶더군요. 저를 노리고 있는 세력들이 많은가 봅니다.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 정엽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음..... 아직까지 치안이 열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평화유지군 군복만 봐도 덤벼드는 자들도 있고. 욕보셨네요.

아뇨. 이 부분은 분명히 규명되어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공단 업체와 공단조직위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도 해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이병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수사관님, 여기는 평화유지군 소관입니다. 저희의 관할이죠.

물론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을 잃을 뻔했고 어제도 마찬가지였죠. 평화유지군이 치안확보와 수사관의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감안하셔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이번조사는 개성지역의 특수 상황에 따라 군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협조의 의무가 있습니다. 공단 폭발과 방화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가 진행된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연구 시설의 운영과 관리 주체가 서해산업이라고 불리는 업체인데. 평화유지군은 그 부분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아시다시피 상황이 그렇잖습니까? 인원은 한정돼 있고 이곳의 모든 치안을 완벽하게 틀어막는 것이 가능 키나 합니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이병수의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그래서 제가 온 것 아닙니까? 일단 오늘까지 공단 업체 몇 곳에 대한 탐문수사와 공단관리위원회 상황을 파악한 후 1차 업무를 완료하고 귀경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정된 일정 그대로입니다. 이병수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부 업체의 경우 비자금을 만들거나 횡령가능성이 있으며 불법적으로 자금을 활용한다는 첩보가 있는데 부사령관님께서는 당연히 이런 문제에 해당되지 않을 테고.... 정엽은 넌지시 그가 받은 메모리의 내용을 암시하듯 말을 꺼냈다. 이병수는 특유의 습관처럼 손으로 턱과 뺨을 쓰다듬는 것처럼 만졌다. 이후 말을 꺼냈다. 

아, 알았소. 상부에서 결정된 사항을 가지고 여기서 왈가왈부해 봤자지. 내키는 대로 해보시오. 하지만 만약 문제가 생겨도 우리에게 책임은 묻지 마쇼. 어느새 이병수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정엽은 가벼운 인사를 하고 이병수의 집무실을 나왔다. 귀찮고 성가시다고 여기는 그의 눈길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전 07화 [장편소설] 붉은 눈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