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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Nov 03.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13-

‘김전호 이 새끼가 결국 나를 없애려고 하는군.  모든것을 까발려주마

*

  김수필은 사장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 펼쳐질 것을 직감했다.    


김수필 대표님. 지금까지 일을 잘 처리해 오셨는데 이제는 정리하셔야 할 때가 된 듯 합니다. 목소리의 톤이 낯설지 않았다. 수필은 공단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던 그 때의 낮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기분나쁠정도의 낮은 중저음.

국수본에서 사장님을 캐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회사에서 나오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겁니다. 당분간 멀리 나가 계시거나 따로 저희가 일정을 알려 드릴 겁니다. 사장님과 관련된 서류와 자료들은 챙겨 나오시기 바랍니다. 참, 김포에 농가주택은 언제 매매 하신 겁니까? 그 쪽에서의 일 때문에 모두가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사전에 우리와 상의를 하셨어야죠. 왜 그런 위험한 일을 벌이신 겁니까? 계약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아 그것은 오래전에 별장으로 쓰려고 구매해 놓은 것인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터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것도 있던데 일단 얘기하기 번거로우니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연구동 재건축 문제 정리를 하려면 며칠 걸릴 수 있을 텐데요. 지금  복구 작업하고 새로운 생산인력과 관련된 문제 관리위원회와 책임과 관련된 보험 등의문제가 남아 있는데.

김수필 사장님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십니까? 당장 그곳에서 나오란 말입니다. 차분하던 목소리는 바로 고성으로 바뀌었다. 김수필은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부사장 성문에게 얘기해 계약관련 급한 일로 월경을 한다고 얘기하고 나머지 현금과 물건을 챙겨  공단을 나와 출입국 시간에 맞춰 남쪽으로 내려갔다. 출입국 관리소 옆에 주차된 차를 몰고 그는 강변북로에 들어서 휴대전화를 켰다텔레그램 메시지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파기 하라는 것이었다. 김수필은 배터리를 분리하고 휴대전화를 부러뜨려 도로변으로 던져버렸다.  상도동 집에 도착한뒤 차를 세우고 여러 은행을 번갈아 가며 돌며 현금을 인출하고 나머지 금액은 암호화폐로 바꿔 디지털 지갑에 담았다.


 대림동으로 이동해 김성호의 부하 명의로 대포폰과 선불폰을 구매하고 근처 모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연구동에서 진행한 일들이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인가? 국수본이 수사에 들어가 내 뒤를 캐고 있다. 이정엽이라고 하는 놈이 냄새를 맡았을것이다.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당분간 좀 쉬라는 말인가. 하긴 돈은 충분히 벌어 놓았고 어디 가서 몇 년 돌아다닌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겠지. 여차하면 저들과 관련된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설마 이대로 나를 버려두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불어버린다고 하면 저들도 곤란할 테니. 창문으로 확성기와 시위 소리가 들렸다. 산발적 집회가 또 발생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고 희미한 최루탄 냄새가 창문 틈으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 씨발, 욕이 튀어나왔다. 시끄럽다고 좀.  

 그는 문을 닫아버리고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긴장이 좀 풀리자 몸이 나른해졌다.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동안 잠이 든 것인가. 잠에서 깨어나자 밤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모텔 밖으로 나가 그는 밥을 먹고 가산 디지털역 쪽으로 향했다. 안양천 주변을 걸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 보았다. 서울로 내려온 지 며칠이 지나자 개성의 상황이 궁금했다. 성문한테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고 필요하면 자신이 먼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안보실에서 움직였다면 분명히 월경을 한 이후 국수본의 그놈이 다시 왔을 테고 만약 연구동의 지하 2층까지 내려갔다면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럼 모든 게 끝이다. 이 나라를 떠나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으로 그럭저럭 몇 년을 버틸 수 있을 것이고 해외에 나가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있기에 안보실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문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 보는 것이 먼저다. 다음날 수필은 성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까지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았고 운영위원회의 보험건과 새로운 연구동의 설계 용역과 관련된 업무를 진행했다고 알려왔다. 수필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고 성문에게 자신이 모아놓은 자금 일부를 건내 줄테니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했다. 성문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이틀 뒤였다. 국수본과 평화유지군이 와서 서류를 모두가져갔고 연구동 지하시설까지 모두 확인하고 갔다고 알려왔다. 수필은 상황을 파악하고 성문에게 비자금일부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수필은 성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은 자금을 가져와야 해외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네 형님. 오랜만입니다. 번호는 또 언제 바뀌셨나? 남은 판매자금이요? 아, 수금 마쳤습니다. 언제 뵙고 드릴까요? 내일요?

응, 계약 건 때문에 내려왔으니 이번에 받아서 다시 올라가야지. 그때 그 장소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성호에게 남은 금액을 받고 밀항선을 알아보면 모든 게 끝날 것이다. 다른 것들은 다 정리가 된 상태였다.

김수필인가?

 석철은 성호의 통화가 끝나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석철은 폐 공장에서 김성호와 함께 앉아 있었다. 이들은 김포의 숙소에서 이동 한 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성호에게 연락을 하자 그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폐 공장 근처에서 이들은 며칠간 숨죽이며 최종 목표에 이르기까지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다. 석철은 김성호에게 김수필이 아직 남은 금액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성호는 김판수의 죽음을 생각했다당분간은 이들이 하자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게 좋다고 판단을 내렸다. 산업단지 근처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이들은 주로 이곳에서 12시 반 정도에 만나 자금을 주고 받았다. 바다에는 거대한 화물선의 붉은 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며칠간 푸근했던 날씨 때문인지 해무가 뿌옇게 시야를 뒤덮었다.

성호는 약속장소에서 부근에서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한겨울 산업단지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뱃고동 소리가 멀리서 정적을 깨웠다. 성호는 나와서 담배를 피운 뒤 잠시 후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트를 끄고 주위를 주시했다. 수필로부터 텔레그램이 왔다. 장소를 옮긴다는 것이었다. 성호는 ‘씨팔 번거롭게 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차를 움직였다. 장소는 영종대교 밑 운염도였다. 성호의 차량은 영종대교로 진입했다. 중간쯤에서 다리를 빠져나와 섬으로 내려왔다. 비포장 길을 달리자 저 멀리 영종대교의 점멸등이 눈에 들어왔다멀리도 오라고 하네 제길. 그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하자 멀리 차량의 미등이 보였다. 김수필이 나와 손을 흔들었다.


뭘 여기까지 이렇게 힘들게 오라고 한 거요. 사람 빡치게.

너한테 미행이 붙었나 보려고 한 거지. 나랑 통화한 뒤 이상한 것 없었어? 있긴 뭐가 있소. 장사 한 두 번하나 제길. 판수 형님 그렇게 되고 넘 예민해 진거 아뇨? 김수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판수는 누가 제낀 거냐? 수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나도 모르지. 판수형님 노리던 인간이 한둘이요. 성호는 뒷 자석에서 가방을 하나 꺼내서 김수필의 차량에 던졌다.

밀항선은 알아봤어? 성호는 수필에게 쪽지를 하나 주었다.

여기로 전화해 보슈. 중국쪽으로 배가 뜰 텐데. 궁평항에서 출발해 아마 공해 상에서 태워줄 수 있다고 하니. 내가 몇 배 준다고 얘기해 놨소. 요새 단속이 심해서 어렵다고 했는데 간신히 잡아 놓은 거요. 잘 해보시오.

알았다.

그때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보이지 않았지만 비포장도로를 움직이는 차량 소리가 분명했다.

너 이 새끼. 김수필은 김성호를 노려보았다.

난 모르는 일이요.


김판수는 차에 올랐다. 재빨리 차량을 움직이려하는 순간 상대방은 상향들을 깜박였다. 곧이어 한명이 차에서 내렸다. 수필은 이들의 모습을 보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감정과 감각이 없는 듯 한 표정과 눈흐트러짐 없는 표정과 넋이 나간 듯한 기묘한 눈빛이 연구동에 있던 이들을 떠올리도록 했다. 이들은 붉은 눈이었다. 한명은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한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강한 완력으로 김수필을 잡아 끌었다.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김성호는 김판수가 죽던 기시감이 들어 온몸이 얼어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붉은 눈은 김수필을 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김수필은 곧 바닥을 기어 그에게서 멀어졌다. 김수필은 숨을 헐떡였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총을 꺼냈다방아쇠를 당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탄알은 붉은 눈의 머리를 관통했다. 통나무가 쓰러지듯 그의 상체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김수필은 숨소리와 함께 붉은 눈의 공격으로 접질린 다리를 끌고 나머지 한 명이 타고 있는 차량쪽으로 움직였다. 차가 움직이려 하자 김수필은 운전석유리창 부근에 연속으로 총을 발사했다. 다른한명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수필은 김성호한테 다가왔다. 손을 든 김성호는 자신은 아니라고 했고 김성호의 턱에 총을 가져다 댔다.


 난 아니오. 저들이 내 전화를 감시했을 수도 있소. 형님이 전화를 했잖소. 김수필은 총을 내려놓고 밀항은 진짜냐고 물었다. 전화를 해서 확인을 요구했다.

김성호는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 새벽에 왜 지랄이야.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밀항 건은 분명한 거지. 이거 깨지면 너나 나나 같이 죽는 거다. 김수필은 김성호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잠시 후 스피커 폰으로 큰 소리가 들렸다.

아, 씨발 몇 번을 얘기해. 돈이나 정확하게 가져오라고 해. 준비는 다 됐으니까. 스피커폰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김성호는 수필에게 손짓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시체 처리는 애들을 불러서 네가 하든지 해. 김판수는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 나갔다.


 ‘김전호 이 새끼가 결국 나를 없애려고 하는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이곳을 벗어나면 네놈들이 한 모든 짓을 다 까발려주지’ 시흥과 화성방향의 한 국도를 달리며 김수필은 중얼거렸다. 김판수도 결국 그놈이 처리를 했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한다. 그는 생각했다. 차는 속도를 높여 화성을 지나 서신면 쪽으로 향했다. 한밤중의 국도는 반대편 차선의 몇몇의 차량만이 간간히 오갈 뿐이었다. 김수필은 개성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그곳으로 가게 된 상황 안보실 관계자를 만나 서해산업의 대표가 된 것. 연경을 만난 순간도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모든 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중국으로 간 뒤에 거기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듯 했다.

 여권 전문가를 찾게 되면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성호가 알려준 배는 모레 출발한다. 이틀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궁평항으로 가서 차를 버리고 생각하자. 김수필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몰았다. 서신면을 지나 궁평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네 시였다. 그는 잠깐 차를 이면도로에 댔다. 가을 걷이가 끝난 국도변은 황량했다. 곳곳에 얼음이 얼어 있는 웅덩이가 들어왔다. 짓다만 건물의 출입구는 거대한 동물이 아가리를벌리고있는 듯 흉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누가 오지는 않겠군. 수필은 그렇게 생각하고 차를 건물 뒤로 몰았다. 창문을 조금 열고 시트를 끝까지 밀어 몸을 뉘었다. 긴장과 장시간 운전은 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김성호는 폐 공장에 돌아오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김수필은 만나봤나?

네, 석철 대장과 같은 놈들이 따라왔습니다. 나와 김수필의 통화를 캐고 이동위치를 파악한 모양이요. 내 뒤를 밟았다면 여기까지 왔을 텐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오면서 확인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 명의의 전화는 이제 당분간 쓰지 않을 거구요.

김수필은 안산? 궁평항 근처로 움직였나?

밀항 소개하는 놈한테 얘기를 했고 직접 통화를 했으니 그리로 갔겠죠. 이틀 후입니다. 출항 위치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 그럼 성호는 다음번 거래에 보도록 하지. 석철은 공장을 빠져나와 동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식아, 김수필은 내가 처리하면 될 거다. 여기 성호한테 김수필이 어디로 움직일지 들었고 장비도 챙겼다. 너는 나머지 인원하고 청화수가 요청하는 대로 해서 집회 참여에 대비해.

알았소 대장. 동식이 대답했다.

 석철은 김수필의 동선을 생각하고 움직였다. 성호의 말에 따르면 밀항루트는 궁평항에서 배를 타고 공해상에서 중국의 화물선에 타 선원으로 위장하는 방식이었다. 그 배를 타고 청도로이동하는 것이다. 출발은 하루 뒤 밤 11시였다. 미리 도착해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계약은 취소된다고도 했다. 그의 출발시간을 늦추도록 하거나 아니면 그 전에 그를 처리해야 한다고 석철은 생각했다. 수필이 잠에서 깬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근처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그는 항구 쪽으로 차를 몰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미리 위치를 알아둬야 시간에 조급해지지 않을 듯 했다. 근처 모텔에 투숙했다. 맥주를 한잔 마시자 긴장이 풀리고 마시고 잠에 빠져들었다. 석철은 지하철로 이동해 오이도역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고 곧장 궁평항으로 향했다. 짙은 검은색의 백팩을 메고 있었고 두툼한 검은색 야상을걸쳤다. 택시기사는 그를 보고 농담 삼아 첩보원이 아니냐. 누구를 처리하러 가는것이냐. 밀항하러 가느냐는 말로 농담을 했지만 석철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기사는 멋쩍었는지 운전을 계속했다.

날이 춥습니다.

 석철은 한 마디를 한 후 창밖을 바라보았다. 목적지에 도착 한 후 궁평항 선착장을 돌아보았다. 공해상으로 나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 이곳 말고 다른 곳은 없었다. 성호가 알려준 장소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그는 근처의 전망대 카페에 들어가 차를 두어 잔 마셨다. 이후에 선착장 근처에 있는 CCTV의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 저녁때 쯤 성호에게 전화를 해 출항시간이 변경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그는 김판수가 배를 타러 오기를 기다렸다. 항구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항구에는 수산물도매시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도선시설이 자리했다. 멀리 등대에서 붉은색 등이 점멸했다. 석철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였고 목표물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하는 스나이퍼였다. 그는 선착장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간간히 근처를 지나가는 차량이 전부였다. 밤바다의 바람은 얼굴과 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11시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체형과 맞지 않은 긴 외투를 입은 170정도의 펑퍼짐한 체형의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커다란 보스턴백을 들고 차 문을 닫았다. 석철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김수필이었다. 수필은 조심스레 그의 뒤를 따랐다. 추운날시 때문이었는지 김수필은 빠른 걸음으로 선착장 근처로 몸을 움직었다. 석철은 뒤에서 그를 불렀다.


 김수필,

 수필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후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철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100여 미터 앞으로는 몸을 숨길만한 공간과 건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좌우로 묶여 있는 배가 이들의 추격을 지켜보는 관객처럼 바람에 움직였다. 석철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여유롭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선착장 근처에 도착하자 건물보수를 위한 비계 뼈대가 드러나 있었고 인명구조대 컨테이너 그리고 바닷물을 담을 수 있는 횟집용 트럭 3대가 선착장 옆에 오브제처럼 서 있었다.   


서두를 것 없소. 아직 배가 오려면 시간이 있으니까.

수필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전화를 꺼냈다.

전화를 어디에다 하게. 전화를 하면 잡혀 가지 않나? 당신이 물건으로 취급했던 실험체를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극적이지 않소? 석철은 마치 수필의 연구동에서 했던 것처럼 절대자처럼 굴고 있었다. 김수필의 생사에 대한 권한은 마치 자신에게 있는 듯. 석철은 연구동에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당신도 나처럼 말했지. 저것들은 그냥 물건과 도구라고. 노동 교화소에서 죽을 것들이라고 말이야

잠깐만. 수필은 손으로 그를 막으려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주겠소. 수필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려 했다.

혹시 총을 찾나? 그는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수필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뛰어가 가방을 발로 걷어찼다. 내용물이 흩어지며 시멘트 바닥에 총기와 옷가지 그리고 여러 물건들이 쏟아졌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추운겨울 한밤중에 선착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철은 수필에 가까이 다가가 힘껏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는 헉 소리와 함께 곧바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석철은 수필의 짐을 들고 그를 부축해 선착장 근처로 가서 물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수필은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하의 추운 날씨와 입고 있는 옷으로 인해 몸은 계속 가라앉았다. 김수필은 팔을 허우적거리며계속 물을 먹었다. 살려달라고 말을 했지만 석철은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수필은 움직임을 멈추고 물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의 마지막을 확인 한 뒤 석철은 수필의 가방을 들고 선착장을 걸어 나갔다. 멀리서 수필을 태우러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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