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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Dec 09. 2024

[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7-

형사과장을 만나고 온 김선호는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져있었다

3

 사람이 모이면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이 없으면 범죄도 욕망도 없다. 형주에는 혁신도시와 정부 청사 그리고 산업단지가 추가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경제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공단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났고 강력사건도 증가했다. 다만 살인사건은 근래 몇 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찰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언론 사회면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사건의 경과와 일어났던 사건들을 연달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마땅한 기사거리가 생겨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의 비중을 두고 이들은 전략적으로 보도를 이어나갔다. 다행인 것은 아직 연쇄살인이나 경찰의 수사를 비판하는 등의 기사는 등장하기 전이었다. 팀장과 수사팀 형사 1과의 김선호는 팀원들과 탐문수사와 목격자 진술 당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행적을 파악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추렸지만 용의자가 좁혀지지는 않고 있었다. 최영은이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어야 하는지 이유와 동기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우발적 살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몸에 있는 기묘하고 잔혹한 자상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굳이 사체를 욕조에 집어넣고 물을 틀어 불게 만든 것도 이상한 일이다. 치정에 의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잔혹성은 이해 불가였다. 싸이코 패스나 지역 이상 심리자를 파악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는 있지만 사건 관련성을 찾기는 어려워보였다.


― 감식팀하고 검시팀에서 자료 넘어왔어?  새로운 것은? 김선호가  정주현에게 물었다.

―아뇨, 아직이요. 

―과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정주현이 슬쩍 물었다. 

― 새로운 내용이 있으면 그것부터 가져오라신다. 말은 안하지만 얼굴 표정 보면 일그러져 있어. 국과수로부터 부검 자료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검시팀은 사체에서 성폭행 흔적 등은 발견하지 못했다. 근처 빌라에 살고 있는 폭행과 상해치사 전과자가 있었지만 사건과 관련은 없었다. 행적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는 수 밖에 없다. 몇 달치 통화 기록과 소셜 미디어 문자 메시지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 작업만도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다.

― 최영은과 자주 연락하던 남자가 일단은 두 명 정도 되네요. 연인 같기는 한데. 최영은은 연락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소셜 미디어도 오래전부터 잘 안하는 것 같고 업데이트가 끊겼어요. 

― 그거도 뭔가 자랑할게 있어야 하는 거지. 관리도 귀찮아. 치정이나 이런 가능성 쪽으로 좀 더 움직여봐. 

― 서울에 사는 이만호라고 있어요. 자주 통화를 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에요. 사망 추정시간에 맞춰보면 그 시간에 회사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인이 돼요. 출근 후 계속 일한 것으로 되어 있고요. 최영은 사건을 얘기하니까 놀라는 눈치였어요. 정주현은 서류를 훑어보고 말을 꺼냈다. 

― 상황을 보니 얼마 전에 둘이 싸운 듯 하고 연락이 뜸 해요. 최영은이 살해된 날을 전후해서 연락이 없었고요. 이만호는 최영은한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습니다.  

―흐흠. 다른 사람은 누군데? 김민섭이라고 있는데 이들이 연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일단 돈 문제도 있고요. 김민섭과 최영은의 금전거래가 확인이 되고요.

― 최영은이 김민섭에게 빌린 돈이 몇 천되는 것 같아요. 채무 상환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고 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 다퉜다고도 합니다. 

― 일단 김민섭을 참고인으로 불러서 알아봐야할 것 같아요. 그날 행적도. 뭔가 건질게 있는지도 모르죠. 

― 채무관계라고 하면 동기가 될 수 있지. 김민섭 연락해봐. 당시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나머지도 조사해서 의심쩍은 게 있는지 파악해봐. 동종전과범도 다시 살펴보고.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다 훑어 내야해. 


오전에 형사과장을 만나고 온 김선호는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져있었다. 현장에 있던 인원이 어림잡아 50명이 넘었고 당시 굿판이 벌어져 상황파악이 쉽지 않았다. 2팀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신원파악과 참고인조사에 주력했고 다른 팀원도 조를 편성해 탐문을 진행해 나갔다. 현장 족적과 살해도구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었지만 살해도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정밀조사가 필요해 시간이 좀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영은의 휴대폰도 사라져 있었다. 탐문과 cctv를 확인하고 있지만 용의자는 파악은 어려워보였다. 

― 쉽지 않겠는데요. 저들부터 다 불러야 하는데......

 정주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김선호는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검식팀이 보내준 족적 자료와 지문도 대부분 그녀의 것이었다. 특정한 지문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건과 상관이 없는 근처 편의점 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자창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고 사망 추정시간은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었다. 시간을 전후 해 왔다간 택배기사들도 참고인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여러 업체에서 5명 정도가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공용현관을 잠가놓았지만 입주민들과 택배 기사들이 불편을 호소해 중앙 통로 잠금장치는 풀어 놓은 데다 출입구가 여러 곳이었다. 최영은 사망 당일 굿으로 수 십명의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김선호는 일단 탐문 팀 조사와 나머지 CCTV 자료 확인에 기대를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정문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빌라에는 사각지대가 많았고 다세대인데다 일부 cctv는 세대주인이 모형을 걸어둔 모양이었다. 현관이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많았다. 사각지대가 여러 곳 있었다. 용의자가 이를 알고 있었다면 의도적이고 치밀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  사각지대가 많아요. 다른 통로 들어온 사람들이 문제인데. 택배기사가 5명이 왔다가 갔어요. 한명이 더 있었는데 기사와 함께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이었고요. 사건과 특별한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 일단 탐문에서 뭔가 들고 오기를 바라야지. 

― CCTV는 김형사하고 남형사가 일단 더 확인하고 당일 그곳에 있던 나머지 인원 조사 일정은 최형사가 진행해. 김선호의 말투에는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 반장님 두시에 김민섭 오기로 했어요. 정주현이 김선호를 보고 말했다. 


 수사는 겉돌고 있었다.   당직실에 있던 기자들이 형사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내용을 넘겨 집고 있었다.  다음날 기사가 나왔다. ‘살해 용의자 잡나 못 잡나’, ‘뚜렷한 용의선상에 놓인 용의자가 파악되지 않아, 경찰 혼선’ 등의  기사 제목들이 눈에 띄었다. 유튜브에서는 사이버 레카의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 기사들과 영화에 등장하는 잔혹한 살해 영상을 편집해 자료화면으로 쓰고 있었다. 영상은  불쾌감을 주었지만 조회수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이렇게 먹고 사는구만’ 정주현은 유투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들은 아무 근거 없이 숨겨진 음모가 있다는 방향으로 사건을 몰아가고 있었다. 정주현이 노트북의 모니터를 막 덮으려할 때 김민섭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김민섭은 다부진 체격이었다. 펌을 해서 넘긴  올백의 머리는 나이를 더 들어 보이도록 했다. 검은색 스포츠저지의 오른쪽에는 세 개의 선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톰 브라운 제품처럼 보였고 구찌 모양의 작은 핸드백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정주현은 짙은 그의 코발트 향수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치품을 입으면 사람들의 더 대우를 해주나? 그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사치품이 품격과 재력을 대변한다면 김민섭에게서는 재력이 아닌 허세가 향수처럼 온몸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협조적으로 나오면 좋으련만. 김선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주현은 김민섭을 조사실로 안내했다. 김민섭은 헛기침을 한 뒤 뭔가 불편한지 여기저기 눈치를 살폈다. 그는 사기와 폭력전과가 있었다. 


― 휴, 씨발 여길 또 오네. 

 김민섭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주현은 기본정보를 확인했다. 사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참고인 조사 통보를 했지만 그가 쉽게 답해 온 것은 예상 밖이었다. 

― 우선 최영은씨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그녀가 사망하기 전 일주일 전에 가장 많은 통화를 하셨던데 당일 날 행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 저도 피해자에 가까워요. 다 조회했을 거 아닙니까?  변호사한테도 오지 말라고 했어요. 영은이가 죽었다고 하는 날 그 시간 저는 형주에 없었어요. 뭐 얘기할게 있어야지. 영은이가 저한테 5000만원을 빌렸어요. 그날은 원금 일부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는 주섬주섬 작은 손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책상위에 자료를 얹어 놓았다. 

― 이거 보세요. 맞죠? 채무 약정서 있잖아요. 영은이 그거 참 어쩌다가. 저도 안타까운데. 빌려준 돈은 어떻게 받습니까? 제가 25일 집에 찾아간 것은 맞아요. 문자 보내도 답변도 없고 전화도 걔 죽기 이틀 전에도 전화를 안 받아서  찾아갔죠. 


― 채무관련 다툼으로 최영은씨와 오랫동안 통화하신 거죠. 그래서 최영은씨와 다툼이 있었습니까? 

― 아 진짜.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뭔가 의심스러운 짓을 했다면 변호사도 없이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왔겠습니까? 김민섭은 흥분하는 듯 말이 빨라졌다. 정주현의 말이 뭔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듯 보였다. 

 ― 저 영은이랑 사귄지 일 년 정도 넘었어요. 영은이가 골프장에 등록하고 다닐 때 알게 됐죠. 사실 뭐 영은이 정도의 외모라면 누구나 혹하죠. 저희 둘 잘 만났어요. 이전에 사귀는 남자는 정리한다고 했으니까.

―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사건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김민섭은 한숨을 쉬고 말을 꺼냈다. 

― 전에 누굴 사귀었다고 했습니까?

― 아. 그 뭐냐. 정치인이라고 했어요. 장래가 유망한. 그런데 뭐 헤어지자고 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질질 짜더라고요. 몇 년 됐어요. 자세한 얘기는 안하고요. 

― 그러면 빌린 돈은 어디에 썼다고 하나요? 정주현이 물었다.

― 그건 저도 잘 모르죠. 몇 년 기다라면 몇 배의 수익이 나는 투자처라고 했으니. 저도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죠. 그렇게 신경 쓰이는 금액도 아니었어요. 

―  그런데 채무에 대한 독촉으로 댁에까지 찾아 가신건가요? 

― 아 진짜 형사님. 저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융통가능해요. 영은이가 얼마 전부터 제 전화도 안 받고 안 만나주고 하니까 간 거죠. 무슨 일이 있는지 해서요.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그 정도로 궁핍하지 않아요. 뭐 사고도 치고 학교도 갔다 왔지만 그 정도는 융통할 수 있죠. 정주현은 미심쩍은 듯 김민섭을 처다 보았다.


―  알겠습니다. 그럼 사건이 있었던 당일에 빌라에 찾아간 것은 맞다. 그런데 기다리다 그냥 왔다는 거죠. 문자만 보내놓고. 그리고  다시 가지는 않았다. 

― 아 그렇다니까요. 문자도 확인해보면 알 것 아니에요. 제가 그날 오후부터 뭘 했는지. 저 영은이 사건 있던 그날 시간에는 다른 사람하고 같이 있었어요. 김민섭은 정주현의 말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숨을 깊게 내 쉬자 정주현은 약한 알콜 냄새를 느꼈다.

― 영은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심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걔를 좋아했으니까. 제가 왜 그 애를 죽입니까? 그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 일단 알겠습니다. 여쭤볼게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진짜 미쳐 진짜. 씨발 진짜 신경 쓰여서 원. 

김민섭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투덜거리며 조사실을 나가고 있었다. 정주현은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김선호가 말을 꺼냈다. 그는 다면경 조사실에서 김민섭의 진술을 듣고 있었다. 정주현은 조사실에서 나와 사무실에서 김전호와 이야기를 나눴다. 

― 별거 없는데요. 김민섭의 말대로 당일 행적은 무리가 없어요. 정주현의 말에 김선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김민섭이 제일 유력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김선호도 그의 진술을 듣고 있었다. 사망추정시간에 차이는 있지만 김민섭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반석동쪽으로 이동하기는 힘든 시간이다. 증인도 있었다. 청부를 했다면 다른 상황이지만 굳이 그렇게 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김선호도 그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 반장님 어쩌죠? 정주현이 물었다. 김선호도 점점 난감한 상황이었다. 

― 일단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다 뒤져봐. 그 시간대에 누가 있었는지. 김민섭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배제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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