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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Nov 30. 2024

[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6-

집에서 칼로 살해당한 듯 합니다. 수사 중인 상황이라 자세한 상황은 아직

*

현민은 휴대폰 진동소리에 잠을 깼다. 같은 번호로 8시 50분부터 2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결려온 전화번호를 눌렀다. 지역번호가 낯설었다. 새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소송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다 잠이 든 것이다. 최민희가 만든 자료도 읽어 두었다. 프랜차이즈 업체가 의뢰한 사건에 대한 내용 확인을 해 놓아야 한다. 가맹점의 외부 물품 사용 증거보강 작업이 필요하다. 곧 공판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의뢰비용을 주고 귀찮은 일들을 모두 맡겨 놓았다. 욕이 튀어나왔지만 이 바닥에서 ‘을’은 힘이 없다. 서류작업을 마치자 일곱 시였다. 어쨌든 최실장이 자료를 정리해 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전화벨이 대 여섯번 울린 뒤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관공서가 아닐까라는 예감이 들었다.


― 형주 경찰서 형사1반 정주현 경사입니다. 어떻게 전화하셨습니까? 수화기 넘어 묵직하지만 빠른 말투가 들렸다.

― 형주경찰서요? 현민이 되물었다.

― 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현민은 숙취가 느껴졌다. 새벽에 여러잔의 꼬냑을 마셨더니 머리가 무거웠다.

― 아 네. 박현민씨 되시지요? 혹시 며칠 전 최영은씨 만나신적이 있나요? 최영은씨 사망 사건 때문에 좀 뵐 수 있을까요?

― 네?

 현민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도어록 소리가 나고 최민희가 출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무슨 일인가. 며칠 전에 자신과 만나 얘기를 나눴던 최영은이 죽었다고? 경찰서에서  전화를 한 것을 보니 사고는 아닌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정주현 경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현민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갑작스레 커피가 먹고 싶었다. 방송국 회의 일정이 있기에 하루 뒤 형주서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갈 때가 종종 있었다최영은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잔잔한 호숫가에서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묵직한 바위를 옆에서 수면에 던져 넣는 것 같은 상황이다. 오전 일정을 확인하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작가들과 회의를 어떻게 마쳤는지 모를 상태에서 하루를 보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일찍 퇴근했다.

 다음날 오전 일찍 현민은 ktx를 탔다. 최민희는 굳이 뭘 거기까지 가느냐는 말투로 말렸지만 현민은 대체 무슨일로 며칠전 만난 그 젋은 여성이 죽어야 했는지 상황을 파악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그곳으로 세 시간 이상 운전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역 근처에서 차를 빌리는 것이 나을 듯 했다. 형주 역에서 내려 차를 빌려 경찰서로 이동했다. 형주서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최근에 청사를 외각에 새로 지은 모양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 왼쪽으로 들어가 형사과를 찾았다. 1반이라는 플라스틱 팻말이 눈에 띄었다. 통화한 경찰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니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현민이 형사 1반을 두리번거리자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던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펌을 한 직원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 혹시 정주현...... 말 끝을 흐리자 그가 먼저 대답했다.

― 네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물 한잔 드릴까요? 아니면 차라도?

― 아뇨.  제가...... 현빈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몇 잔을 들이켰다. 정주현은 현민을 원형 테이블이 있는 조사 장소로 안내했다.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듯 보였다.

― 정식 참고인 조사는 아니고요. 최영은씨 사망 전 통화를 하셨고 오후에 시내에서 만나셨어요. 관례상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혹시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건 25시> 라는 프로그램을 알고 계신가요?

 정주현 경사는 뜬금없다는 듯 현민을 쳐다보았다. 현민은 프로그램의 외주기자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주현도 사건의 이면을 취재해 방송하는 사회비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가끔 경찰을 비판하는 방송도 종종 등장한다. 주현은 그때마다 담당자 죽어나겠네. 라고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경찰의 초등 대응 실패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 피해 당사자가 나와 경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때는 주원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영은씨를 만난 것은 사건 의뢰를 받아서입니다.

 그는 명함을 정주현에게 주었다. 정주현은 유심히 명함을 보고 테이블 한쪽에 조심스레 밀어 놓았다. 현민은 말을 계속했다.

― 최영은은 한정혜의 친구이고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친구 중 한명이에요오래전 형주 경찰서에서 조사했던 사건이었더군요. 한정혜의 어머니가  자료를 주었습니다.  관계자와 연락해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죠.

― 아. 그러시군요. 정주현은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고 외치는 만화 주인공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최영은과의 만남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을까요? 정주현은 기대 섞인 말투로 물었다. 자신들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 뭔가 두려움을 느낀다던가. 스토킹이라던가.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 말하는 것 중 기억나는 게 있나요?

― 최영은에게 한정혜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의미있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10년도 더 된 일이고 당시의 내용은 다 경찰에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난감했습니다.

 ― 그렇군요. 정주현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마치 다 예상을 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 최영은씨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절 부른 것을 보니 사고는 아닌 듯 하고. 현민이 묻자 정주현은 좀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 뭐, 곧 알려질 일이니 말씀드리죠. 집에서 칼로 살해당한 듯 합니다. 수사 중인 상황이라 더 이상은 말씀 못 드립니다.

―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절차상 마지막에 통화를 했기에 참고인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 네, 오해는 하지 않습니다. 저라도 필요한 부분이라면 확인했을 겁니다. 음... 안타깝군요. 젊은 나이에. 혹시.

― 말씀하지지요. 정주원이 말을 꺼냈다.

― 아. 아닙니다.

 현민은 필요한 정보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수사를 방해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굳이 자신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민소희를 만났고 알쏭달쏭한 말을 들었다는 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민소희가 이사건과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이고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낼 필요는 없다. 자신은 한정혜 사건만 충실하게 조사해 신효선에게 보고하면 그만이다.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역에서 렌트한 흰색 스포티지를 타고 경찰서를 나왔다. 최영은 사망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려 신효선에게 핸즈프리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고 문자를 남겼지만 대답이 없었다.


조사기간은 한 달 정도를 생각했지만 현민은 이 사건을 그 전에 끝낼 생각이었다. 신효선은 상담과정에서 중간 보고서를 요구했다. 만난 사람 중 사건과 관련해 의미가 있거나 자신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 내용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최영은은 갑자기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살해 된 것인가. 지금의 조사와 관련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들에 현민은 혼란스러웠다. 최영은 사건은 살인사건이다. 사고가 아니다. 뭔가 복잡한 인간의 욕망이 얽혀 춤추고 있다. 최영은은 한정혜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그날 모인인원은 총 5명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마지막에 통화한 사람과 단순히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


 분명 최영은은 한정혜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4번 국도로 나와 반석동 입구로 향했다. 최영은이 살해됐다는 곳에 들러 상황을 알 수 있는 단서와 조각을 찾아봐야 한다. 최영은은 무슨 일 때문에 살해된 것인가. 한정혜가 사망한 이유와 최영은 살해 사건은 연관된 것인가. 신효선의 조건은 하나였다. 경찰이 조사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은 사건과 관련된 의심스러운 것은 다 알려 달라고 했다. 그녀는 메일 계정하나를 남겼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쪽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반석동은 경찰서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역주민들과 이곳을 원래대로 놔두라는 시민단체도 있었다. 최영은은 재개발과 관련돼 살해 된 것일까? 생각은 거기까지 미쳤다. 최영은이 죽어야 누군가 이익을 가져갈까? 그녀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 나이에 대단한 권한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최영은이 죽음으로서 누군가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일까? 현민은 차량의 속도를 높였다.


차는 천천히 미끄러지듯 폐 역사가 보이는 로터리 안으로 들어갔다. 재개발 신도시 유치와 관련된 플래카드의 숫자가 지난번에 비해 늘어난 듯 했다. 플래카드의 문구에서 재개발 추진위원회는 대단히 격앙돼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몇몇 플래카드는 노골적으로 형주고 이사장과 황호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현민은 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이 여론에 눈치를 보지 않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반석동은 오래된 구도심의 향취를 물신 풍기는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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