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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Nov 16. 2024

[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4-

살해현장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모든 단서는 현장에 있다

*

 최영은 사망 사건은 형주시를 발칵 뒤집었다. 혼자 살던 노인이 지병으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도의 사건이 아니다. 젋은 여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사건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sns와 소셜미디어에 소식을 날랐다. 네트워크 망은 바이러스처럼 자가 복제를 반복하며 순식간에 사건을 퍼트렸다. 언론에서도 냄새를 맡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가끔 일어났던 외국인 노동자 칼부림 소동과는 전혀 다른 큰 사건이었다. 재개발로 관심이 집중된 반석동 자가에서 젋은 여자가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뉴스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충분한 소재였다. 사건은 당일 지역의 톱 뉴스를 장식했고 형사 1반 김선호에게 배당되었다. 판사가 범죄와 관련된 조서와 범죄사실을 읽으며 법조문을 떠올리고 형량을 적용시키듯 형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팀장과 회의를 하며 어떤 방향으로 수사를 해 나갈지를 고민했다. 사건 현장에 빠르게 도착해 증거가 오염될 염려도 없었다. 주변을 뒤지기 시작하면 사건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김선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살해현장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모든 단서는 현장에 있다. 면식범의 소행이면 통화내역과 주변인물간의 여러 갈등을 파고 드는 것이다. 그 중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채무관계가 있고 다툼이 있다면 용의선상에 오르고 행적과 피해자와의 관계를 파악해 간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김선호가 마지막으로 수사한 살인사건은 건설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변사체였다. 근처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고 채무관계로 피해자와 자주 다퉜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들 몇 명을 불러 취조하고 증거가 될 만한 것을 들이밀어 진술을 하도록 한다. 몇 명의 수사관이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의 역할을 맡는다. 윽박지르고 이후에 친밀감을 높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기대감을 만드는 것이다. 인상 좋은 경찰 역할의 수사관이 공감해주듯 하며 자백을 받아내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복잡하거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사건,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도 종종 있다. 그런 사건은 수사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 자칫하다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제로 빠질 수도 있다. 김선호는 최영은 사건이 우발적 범행은 아닐 것 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본청으로 가기전 형주 서에서 한 마지막으로 한 수사는 20대 여대생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었다. 당시 수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왜 그녀가 자살을 해야 했는지 동기가 불분명했다. 의혹이 남아있었다. 사건의 해결은 매끄럽지 않았다. 김선호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수사는 빠르게 종결됐다. 이후 그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이후 13년이 넘어서 다시 형주로 돌아왔다.  


 김선호를 비롯한 강력계 인원들은 팀장의 지시로 수사 방향에 대한 회의를 끝내고 각자 역할을 나눴다. 우선 cctv 확보에 들어갔다. 최영은의 통신기록과 sns내역 당일행적 조사 및 원한관계에 대한 주변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당일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그녀의 사망 추정시간 전 후 건물 거주자에 대한 포괄적 조사도 팀을 나눠 동시에 이뤄졌다. 팀장은 빠른 수사결과를 요구했다. 여론도 있고 새로 부임한 서장님에 대해 신경을 써야한다고 했다. 국과수 결과가 나와야 정확하겠지만 감식팀 소견으로는 성폭행 흔적이나 금품을 노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감식팀 정현모 경위로부터 간략한 설명을 우선 들었다. 정현모는 김선호와 몇 년간 본청에서 같이 근무를 했다. 성폭행이 이뤄졌다면 유사한 범행 수법을 보였던 이들을 조사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주택가의 빌라는 1인 가구와 소득이 많지 않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데 귀중품을 훔치러 가는 것은 좀도둑이거나 10대들일 뿐이다. 외노자들끼리 칼부림이 나거나 마약사건이 터져 인식이 안 좋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결이 다르다. 젊은 여성을 잔혹하게 자창과 절창이 나도록 수 십번씩 찔러 살해했다? 범행을 들켰다고 한들 물건을 훔치러 왔다면 빨리 달아나는 것이 우선이다. 이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살해할 필요가 있을까. 팀원들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정확한 사망추정시간이 나오지 않았지만 피의 굳기와 사후 경직도로 보았을 때 현장에 도착한지 몇 시간 전에 사망한 것은 분명했다.  검시팀과 현장 감식팀의 보고서 국과수의 소견이 나와야 용의자가 좀 더 분명해 질 것이다.


― 반장님 그때 굿판이 벌어졌잖아요. 주변인들이 너무 많아요. 저들 소환하는 데만 해도 몇 주 걸릴 거예요. 하필이면 그때 사건이 터질게 뭐람. 정주현이 중얼거렸다.

― 일단 소환 범위를 좁혀 할머니를 당장 소환할 필요는 없을 것 아냐. 신형사하고 김형사 한테도 CCTV 분석 얘기 해 놨으니까. 같이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감식팀하고 검시팀 보고서 나오면 확인해. 정주현은 조사실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신원파악에 들어갔다.

― 기자들 몰려들면 쓸 대 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당분간 수사와 관련해 비밀 새 나가지 않게 입단속들 잘해.

― 마지막에 통화한 사람들 연락한 사람 누군지 파악됐지? 신원은 다 확인했어? 참고인 조사일정은 잡았고? 김선호가 물었다.

― 네, 우선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 기자더라고요. <사건 25시> 사건 취재 담당기자고 신원도 확인해 보니 맞아요. 탐정 비슷한 일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 사람 말로는 최영은이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해 만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탐정일도 같이 하는데 의뢰를 받아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최영은을 만났다고 했어요. 전에 경찰이었네요.


― 그래? 뭔가 일이 있었나? 경찰은 왜 관 둔거야. 사고야?

― 아뇨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요.

― 경찰은 7년 전 쯤 그만뒀고요. 경찰 그만두고 보험사기나 민간조사 쪽으로 경력을 살려 일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혼 증거 잡는 일도 하는 거 같고. 이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 어휴, 바쁜 사람들 많아. 난 귀찮아서라도 못하겠다. 김선호가 중얼거렸다.

― 귀찮은 게 아니라 힘이 달리는 거 아니구요? 형수님한테 좀 잘해주셔야 하는데. 집에도 잘 못 들어가고 제대로 역할도 못하면. 엣헴. 정주현이 웃으며 말을 던지고 슬쩍 눈치를 피했다.

― 야, 내가 너보다 나이는 많아도 더 팔팔해. 김선호는 정주현의 어께를 팔꿈치로 누르며 하며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를 같이 쳐다보았다.

― 아파요. 반장님 잘못했어요. 정주현은 웃으며 꼬리를 내렸다.

― 참 반장님 좀 보세요. 대단해 보이지 않아요?  

― 굿이 다 똑같은 거지 뭐 차이가 있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최영은 사건 현장을 담아놓은 CCTV를 살폈다. 그 당시 굿판은 절정에 오른 듯 보였다. 무속인은 마치 신들린 듯 보였다. 무속인은 신령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섬긴다고 했다. 그들의 몸속으로 그 기운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무당은 접신에 들렸는지 무속인은 팔과 다리를 흔들며 온몸을 뒤틀고 있었다. <에일리언>처럼 변태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가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잠시 굿을 멈춘 후 정적의 시간 이후 그녀는 또다시 온몸의 관절을 비틀고 춤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격정에 사로잡혀 몸을 뒤틀고 있다는 표현이 맞아 보였다. 몰입하던 김선호가 말을 꺼냈다.

― 이거 대단한데. 원시시대 날것의 느낌이야. 오래전 굿이 공연처럼 대접을 받았다는데 그 이유를 알겠어누군가의 한을 푸는 살풀이 같아. 아닌가? 그는 정주원을 보고 중얼거렸다.

― 그렇죠? 저도 처음보고 놀랐다니까요. 모든 굿이 다 이렇지 않더라고요. 반장님은 굿에 대해서 잘 아세요? 이건 좀 놀라 워요.

―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종류는 알지 뭐. 사건 때문에 무속인도 몇 명 만나봤거든. 굿하는 것도 봤고. 형주에서는 무속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떠돌았다. 누가 영험하다더라. 수사가 안 풀리면 가서 물어보기도 한다더라 등등의 가십거리도 가끔 있었다. 지역의 재력가나 유지도 무속과 영적인 어떤 것을 선호한다는 소문도 마찬가지였다.


― 진짜일까요?

― 뭐가? 정주현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가끔 무속인한테 사건이 안 풀리면 물어본다는 얘기가 있던데.

― 그런 게 어디 있어? 과학수사 몰라. 그는 웃으며 말했다. 쓸 때 없는 얘기에 귀 쫑긋거리지 말고 화면이나 잘 봐. 김선호는 대수롭지 않게 주원의 말에 대답했다. 정주원은 기운이 빠진 듯 화면을 보고 사람들의 신원과 인상 행적조사를 이어갔다.


 김선호도 그 말을 들어보기는 했다. 그가 형주에서 전근을 가기 전 수사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 농담삼아 ‘설화’한테라도 물어보기라도 해라라는 말이 유행하듯 돌 때도 있었다. 김선호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의 사건을 맡아 처리했기 때문이다. 김선호는 잠시 영상조사실 밖으로 나갔다가 커피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영상을 마지막까지 확인했다. 화면에서 자신들이 반석동 빌라 입구에 들어는 모습을 보고 동영상 플레이어를 정지시켰다. 김선호는 최영은 소유의 빌라 토지관계를 확인하다 지역일대의 개발계획과 관련된 정보보고 내용을 떠올렸다. 빌라 근처를 포함한 반석동 일대의 토지는 상당부분 학교법인의 소유였다. 그 집안은 형주시내 중심의 적산가옥과 일대의 토지를 소유한 부호이기도 했다. 지역 여론은 선거를 앞두고 황의원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권교체가능성이 있고 더군다나 여성 친화적이며 복지를 내세운 여당의 윤숙희 의원의 지지세보다 지역개발 여론이 앞서고 있으니 황호민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여러 빈번한 사건이 터졌고 지역 여론이 악화됐다. 이런 문제는 여당책임으로 귀결된다. 형주 학원의 학교 이전은 쉽지 않은 듯 보이기도 했다.  황의원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중추원 참의원을 지낸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김선호는 문득 그 사실이 떠올랐다. 반석동 일대 토지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것은 형주 학원 법인이었다. 형주고와 반석동 일대 토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법인 형주는 중 고등학교 부지를 넘기고 반석동일대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교육청과 거주자들과의 매각협상이 끝나지는 않았고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황의원이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였다. 피해자 신원을 다시 확인했다그녀는 이년 전에 빌라를 매입하기는 했지만 젊은 나이에 이권과 관련된 이해관계에 휘말렸을 가능성은 낮다. 최영은은 할머니와 오랫동안 낡은 구옥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다. 많은 재산도 권력도 없다. 누군가에 원한을 살만한 지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관련된 주변인들을 조사 중이었지만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없었다. 경찰에 직접 신고를 하거나 형사사건에 연루된 일도 없었다고 했다. 결국 치정 쪽으로 살펴봐야 하나. 스토킹에 대한 조사, 강도에 의한 우발적 살해의 가능성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난 여러 자창 흔적은 치정에 의한 원한이 가까워 보였다. 사체를 손상시키거나 절단하는 등의 범죄는 70% 이상 치정으로 인해 발생한다. 다만 감식팀 정현모가 현장에서 넌지시 던진 말이 김선호의 뇌리에 남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가. 정현모 선배가 이런 일에 농담을 할 사람은 아니다.


 ‘선호야. 아무리 봐도 이건 좀 뭔가 이상해. 정현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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