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된 피해자는 건설회사에 다니던 34살의 여자 최영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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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 경찰서 형사 1반 김선호 경위와 정주현 경사는 대포차량 판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중고상을 뒤지고 있었다. 의심 가는 곳을 조사한 뒤 이들은 저녁을 먹으려는 중이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몇 명이 대포차를 타고 절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탐문을 마치고 경찰서로 들어갈까 하다가 시간이 늦어질 듯해 근처 기사식당에 잠시 들렀다. 형주시 일대는 최근 대포차량이 늘어나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일반 승용차부터 화물차량까지 여러 대가 돌아다닌다는 첩보가 있었다. 시외각 공단에서 근무하는 외노자들이 이 차량을 타고 다니며 범죄를 저지른 이후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형주와 정주 시 부근의 몇 군대 중고차 매매상들이 대포차를 취급한다는 첩보를 김선호는 조폭인 정보원 ‘잠망’을 통해 들은 터였다.
― 선배님, 반석동 변사자 사건 있다고 2반에서 수사한다고 하던데. 요새 왜 이렇게 강력 사건이 많죠?
― 얘기 들었어. 그 집이 반석동에서 좀 외진 곳에 있었다며. 죽은 지 일주일도 넘었고 고독사일 수도 있고 혼자사니 지병이 있으면 그렇게 가는 거지 뭐.
― 유가족이 없는 것 같아요. 먼 친척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검시 후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되면 굳이 부검은 안 하는 것으로 하는 것 같던데.
― 정형사. 사건이 늘어난다는 말하지 마. 말이 씨가 돼. 예언처럼 들린다니까. 여기가 미국 슬럼가도 아니고.
― 근데 아는 사람이에요?
― 왜? 그렇게 보여?
― 선배님 눈치가 뭔가 좀 사연이 있는 것 같던데. 이제 눈빛만 봐도 대충 알아요. 성주현이 웃으며 말했다.
― 그 사람 딸이 예전에 숨졌어. 내가 막내였을 때 맡았던 사건이거든. 벌써 15년도 넘었을 거야. 김선호는 담담하게 말했다.
― 모녀가 이렇게 한꺼번에 숨질 수 있나? 인생 참 알 수 없네요. 부검 결과는 몇 주 뒤에나 나온다는 것 같던데. 염선배랑 얘기하다 알았어요.
―염 형사가 뭐라고 해?
―아뇨. 매일 이런저런 투정이죠. 염 선배 성격 아시잖아요. 맨날 그만둔다 어쩐다. 김선호가 뭐라고 말을 하려 하던 순간 음식이 나왔다. 정주원은 종업원이 음식을 놓자 잠시 말을 멈췄다.
―일단 먹자.
청국장에서 뜨거운 김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찌개를 덜어 절반쯤 먹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김선호는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김선호가 전화를 받지 않아 정주현에게 건 모양이었다.
― 저희 봉산 중고차 매매소 근처입니다. 반석동은 멀지 않죠. 네? 그는 숟가락을 테이블에 놓았다. 일단 출동하겠습니다.
― 사건 났습니다. 반장님 살인사건 같답니다. 정주현이 전화를 끊고 김선호를 쳐다보았다.
― 뭐? 김선호가 정주현을 올라다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골치 아프게 됐다는 표정이었다. 반석동까지는 5km 남짓이다. 멀지 않은 거리다.
― 빌라에서 사체가 발견됐데요. 112 상황실로 신고가 들어온 모양이에요.
― 또 반석동 일대야? 거기 뭔가 있나. 순찰을 늘리든가. 한동안 또 시끄럽겠 구만. 김선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석동은 43번 국도에서 시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근처에 있었다.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관공서 1차 이전이 끝나고 시 외각으로 새로운 정부청사가 폐역으로 이전한 뒤 이곳이 혁신도시처럼 재개발된다는 소문은 꾸준히 돌았다. 재개발 조합은 기세를 몰아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하려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공공기관 이전은 형주시 국회의원으로 3선을 했던 황호민이 재선을 앞두고 운을 띄운 모양이었다.
지역은 개발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땅값과 집값이 또다시 꿈틀대는 것은 당연했다. 원형동 일대의 1차혁신도시와 신청사 일대의 부동산은 원가격의 세배 이상으로 뛰었다. 투기자금 일부는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간 상태였다. 이번에는 반석동 근처라는 소문이 있었다. 폐쇄된 구 역사에 ktx역이 생긴다는 소문은 식지 않는 떡밥이었다. 반석동은 오래된 주택 밀집지역에다 집창촌도 있던 곳으로 땅과 건물의 지분관계도 복잡했고 수익성 때문에 재개발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여당의 윤숙희 의원은 지역개발보다는 도시재생을 강조하고 있었다. 곧 있을 선거에서 황호민이 물밑작업을 해 개발기대감을 끌어올려 당선을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반석동 일대는 농공단지와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빌라가 많아 강력범죄와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 기피 대상이기도 했다. 다들 빨리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뭐래 사건은? 외노자들 칼부림이야? 아님 또 지분 다툼이야? 차라리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아? 이거야 원 우리가 무슨 용역도 아니고. 김선호가 못마땅하듯 말했다.
― 일단 가보시죠. 자세한 것은 모르니. 민중의 지팡이 아닙니까? 용역은 안 돼도 역할을 해줘야죠. 정주원은 투덜거리며 빠르게 차를 몰았다. 검은색 소나타 차량은 폐 역사 근처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철길을 따라 설치된 펜스를 따라 500미터쯤 직진해 검게 변한 담벼락 앞에 차를 세웠다. 근처에 사람들의 무리가 보이고 있었다.
―아. 구경 났나? 벌써 사건이 알려졌어? 유튜브 레커 같은 것들이 뭔지가 또 와서 난리 치는 거야? 왜 저리 웅성거리고 있어? 여기가 무슨 유명 관광지야?
― 외진 곳에 뭘 볼 게 있다고 그런 애들이 옵니까? 근데 왜 이렇게 난리통이지. 자세히 보니 굿판이 벌어진 듯했다. 새로 빌라를 매수한 집주인이 금요일 저녁에 맞춰 무속인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형주시는 무속인들이 많았다. 전어철을 앞두고 풍어와 뱃사람들의 안전을 비는 굿판이 형주항과 시원 항에서 종종 벌어지고는 했다. 하지만 풍어제와 굿은 주로 여름철 그리고 11월 마지막 주에 열린다.
―아이고 참 이거. 가지가지하네. 새로 건물 샀다고 하는 굿판은 또 오랜만이네. 고사도 안 지내는 시대인데.
― 개판 오 분 전 같네요. 정주현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모두 무속인의 굿에 열광하는 듯 모두 얼이 빠져 있었다. 형주는 바닷가 근처에 있어 굿에 익숙했다. 사람들은 무속인의 말투와 몸짓에 환호하며 무당이 벌이는 굿판에 빠져든 듯했다. 굿이 절정에 올랐는지 작두도 보였다. 무속인은 곧 작두에 올라탈 기세였다. 꽹과리와 북소리와 피리소리도 들렸다. 자진모리장단처럼 고음의 폭리 점점 높아지고 빨라졌다. 격정에 찬 굿은 오랜만이었다. 빌라 촌 입구에 들어서자 현장의 후끈한 열기가 달아올랐다. 비슷하게 도착한 지구대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반석동 구역사 일대의 빌라 입구는 인파로 북적였다. 마치 오일장이나 야시장 같은 인상을 풍겼다. 경찰이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폴리스 라인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무속인의 굿과 장구와 방울소리 마지막으로 북소리가 잦아들었다. 적막이 공간에 내리 앉았다. 또 다른 두 대의 경찰 승합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빌라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현장을 정리하는 인원들은 바지런히 움직였다. 정적이 감돌았다. 굿을 멈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커졌다. 그 방향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녀는 한복자락을 날리고 방울이 달린 부채를 들고 온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접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 굿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훠이, 훠이. 장군님이 말씀하셨다. 몸이 많이 아프다. 골이 많이 아프다. 기가 내리누른다. 너를 이렇게 만든 년은 죽어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
무속인은 짧은 펌을 한 여인의 어깨에 손을 짚고 굵은 목소리를 냈다. 신의 소리라고 불리는 말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계음과 같은 굵은 날것 그대로인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여인의 몸에서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나오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무속인 앞에 무릎을 꿇은 여인은 열심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듯 고개를 조아리고 열심히 두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멀리서 보면 흡사 고양이와 수달이 먹이를 먹는 것 같은 모습처럼 보일것 같았다.
― 그년을 잡아야 해. 모든 것은 그년 때문이야.
무당은 장군을 모신다고 했다. 접신에서 거침없는 중년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 그 말이 틀리지 않은 무속인은 앞에 선 여인의 머리 양 옆으로 반월도와 같은 칼을 반복해서 휘둘렀다. 뭔가를 쫓아내는 의식과 같은 행위였다. 잠시 후 다시 칼을 들고 접신에 들린 것 같은 춤사위를 시작했다. 북소리와 장구 꽹과리와 태평소 소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굿은 절정에 도달했다. 무속인의 몸놀림이 더욱 빨라지고 사람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제복을 입은 한 명의 경찰관이 움직였다. 확성기로 사이렌 소리를 왱하고 울리자 이제야 상황이 정리가 되는 듯했다. 제사 음식이 차려진 곳에 가서 장구를 들고 있는 무속인 관계자에게 얘기를 꺼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열기가 끝난 후 그녀는 숨을 고르는 듯했다. 침묵의 시간이었다. 빌라 입구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김선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바람 탓인지 김선호는 날카로운 기와 눈빛이 공기를 뚫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선호가 시선을 무속인에게 두고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정주현이 다가왔다. 감식팀이 곧 도착한다고 했다.
감식팀의 정현모 경위와 다른 수사관 세 명이 사람들을 피해 장비를 내리고 있었다. 정현모 경위는 김선호와도 안면이 있었고 오래전 같이 본청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둘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김선호와 정주현이 뒤따랐다. 과학수사대는 현장 감식에 들어갔다. 불을 형광으로 지문을 채취하고 블루라이트를 밝혀 여러 개의 족적을 확인했다. 검시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경찰청에서 형주시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청이 직선거리상으로 사건 현장에 가까워 사건이 접수된 후 이동이 빠를 때도 있었다. 김선호는 감식팀과 함께 방 안을 살펴보았다. 휴대전화는 없었다. 젊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된 곳은 38m 2쯤 되는 투 룸의 화장실이었다. 그녀는 욕실에 머리를 박고 숨져 있었다. 피는 욕실을 넘어 안방까지 퍼져 눌어붙어 있었다. 다 굳지는 않은 듯 보였다.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다.
집안은 실 평수로는 10평이 조금 넘어 보였다. 혼자 살기에 적당해 보였다공간은 작은 침실처럼 보이는 곳과 좀 넓은 거실이 있는 정도였고 싱크대와 접이식 식탁이있었다. 공간에 물건은 많이 없었다. 방과 거실에는 붙박이 장이 있었다. 작은 침대와 책상 그리고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붙박이장에는 겨울옷가지가 몇 개 걸려 있었다. 탁자 위에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남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지만 뭔가 어색했다. 남자는 몸이 좋아 보였고 여자는 시원한 외모가 돋보였다. 다만 김선호의 눈에 둘의 관계가 좀 이상해 보였다. 친밀감과는 동떨어진 어정쩡한모습이었다마치 쇼윈도 부부나 급조된, 만들어진 친밀감을 억지로 누군가에게 과시하는 듯 한 과잉이 서려있었다.
강도. 강간?
원룸과 같은 1인가구가 살만한 빌라에 무엇을 훔칠 게 있어서 온다는 말인가. 외노자와 동일전과자가 의심됐다. 더군다나 우발적 살인이라고 보기에는 자창의 상처가 너무 많았다. 성폭행 흔적부터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만약 성폭행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원한에 의한 사건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김선호는 정주원과 방안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과 냄새가 나지 않는다. 피해자가 이곳에서 생활을 하기는 한 것인가. 싸구려 모델하우스 느낌이었다빌라 밖으로 나왔다. 지구대 경찰 사이드카의 확성기와 사이렌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굿판이 정리되고 지구대에서 현장 인원과 신분을 파악하는 듯 보였다. 수군거리며 간이 천막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고 공간은 컴컴한 적막에 휩싸였다. 촛대와 과일 북어포 떡 등 행사에 쓰인 음식과 용품이 가방에 담겼다. 김선호는 무속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깔을 쓴 무속인은 조금 전의 신들린 듯 모습은 온 데 간데없었다.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과 같은 이국적이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40대 중반에 진갈색과 색동이 있는 옷을 입고 있었고 방울과 부채가 들려 있었다. 모자에 가려진 얼굴을 김선호는 힐끗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와 갸름한 턱선 날카로운 콧날이 인상 깊었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가 보통 봐왔던 60세가 넘은 장년의 무당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잠시 후 굿을 벌이던 이들은 승합차에 올랐다. 정주현과 지구대 경찰들과 같이 움직였다. 굿을 위한 조명이 꺼지자 반석동 입구에 짙은 어둠이 내리 깔렸다. 사이렌 빛이 번들거리며 어둠 속으로 촉이 날카로운 화살을 연달아 쏘는 듯했다. 잠시 후 정주원은 김선호를 불렀다. 살해도구와 휴대폰 신분증은 발견하지 못했다. 집에서 명함이 나왔다고 했다. 피해자의 신원이 파악됐다는 것이었다. 김선호는 정주원에게 일단 가족에게 연락하고 부검을 진행해야 하니 검사와 국과수에 연락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사체는 근처 대학병원 영안실로 옮겨질 것이다. 살해된피해자는 건설회사에 다니던 34살의 여자 최영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