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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Nov 13. 2024

[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1부 -1-

존재가 얼굴을 드러냈다.  휴대폰 불빛에 기괴한 형상이 드러났다.

기쁨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은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더 뚜렷한 법이다.

- 단테, 신곡 지옥


 프롤로그



 하늘은 흐렸다. 곧 빗방울이 곧 떨어질 듯 울고 있는 듯했다. 검은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진득한 구름이 뭉쳐 낮은 하늘을 뒤덮었다. 형주 도심의 서북쪽은 오래된 주택가가 늘어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늘어서기 시작한 적산 가옥과 일본인 고위 관리가 살았던 서양식 주택은 해변가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다. 서북쪽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면 오래된 폐역사가 있다. 역사 주변은 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 지역인 반석동 일대였다. 재개발과 관련된 논란이 된 폐역사 일대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집회와 시위가 들끓었다. 오래전 날품을 팔거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삶을 이어온 곳이었다. 주거지와 상업지가 뒤섞여 있었고 지역의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지분관계가 복잡한 곳이었다.  역사가 들어선 초기에 늘어섰던 오래된 빌라와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진 단층 주택은 홈이 파인 낡은 시멘트를 지지대 삼아 힘겹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곳곳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동네의 단조로움을 줄였다. 역사 주변에 오래된 식당과 다방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중심지에서 시 외각 바닷가 근처 농공단지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낡은 빌라와 단층주택에는 싼 값에 거주가 가능해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피해자는 반석동 오래된 단독 1층에 살고 있었다. 2층 세입자는 이미 이사를 나가고 없었다. 그녀는 형주시 외각 평탄읍에서 무당집을 운영했다. 원래 이곳 출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철원 근처 북쪽에서 살았다. 남한의 가장 북쪽 지역가운데 하나였다. 평탄읍에서 반석동으로 이사를 온 것은 10년이 넘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그녀도 곧 이사를 나갈 예정이었다. 그녀는 단독주택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2층 오래된 단독은 낡았지만 아직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었다. 파쇄석을 깐 마당에 작은 잔디밭과 꽃이 심어져 있었고 문 앞에는 대추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현관옆 작은 텃밭에는 고추와 오이 토마토 등을 기르기도 했다. 이곳은 오래전 나름 고급주택으로 불릴만한 곳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덧 시퍼런 감을 누렇게 물들였다. 비가 내릴 기세였다. 습기를 머금은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신효선은 이곳이 지긋지긋했지만 정도 들었다. 몇 달 전에는 집 앞에 걸려 있는 무속깃발을 걷어 마지막으로 태워버렸다.


오크색 4인용 야외테이블 위에는 맥주 두 캔이 놓여 있었다. 마른안주를 씹으며  10여 년을 전을 떠올렸다. 이사 갈 곳에 과거의 것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 이곳 기억도 마찬가지다. 무속인으로서 삶도 버릴 것이다. 신기는 이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접신할 때 온몸을 내리누르는듯한 고통 영가라고 불리는 것들의 뜬금없는 자극은. 참을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의 경멸과 비웃음 그리고 멸시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접신상태가 되면 기억이 없어지기도 하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때도 많았다. 무당은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나?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말이다. 신효선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담벼락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리적인 무게감이 나가는 실체가 있는 느낌이다. 영가는 아니었다. 무엇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도둑이나 강도? 여기에 뭐가 있다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재활용 스티커도 붙여 있지 않은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 골목 전봇대에 놓여 있어 외국인 노동자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물건을 주워 가며 소리를 내기도 한다. 신효선은 신경을 집중했지만 인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 누구 있어요?

 소리가 난 쪽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평소와 같았다.  피식 웃으며 그녀는 잘못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은 맥주를 유리잔에 따랐다. 빗소리가 강해지더니 주기적으로 굵은 빗방울을 떨구곤 했다. 겨울을 알리는 늦가을을 비였다. 신효선은 현관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더 꺼내 현관으로 나왔다. 공기 중 습기 때문인지 에일맥주에서 들큰 한 밀 향기가 났다.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마른안주를 몇 개 집어 먹었다. 비 때문인지 흙냄새와 아몬드 향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마른안주에 빗물이 조금 떨어졌다.


- 에이 참.

그녀는 짜증이 난 듯 쟁반을 집어 물을 털어 냈다. 타닥소리가 강해졌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자리를 접을 생각에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때 기묘한 느낌이들었다. 누군가 이 공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실체가 있는 존재였다. 이상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삭 소리와 함께 전기가 끊어졌다. 정전인 줄 알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저 멀리서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비추고 있었다. 잠시 후 강한 악력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흡......

소리를 질렀지만 음성은 공기 중으로 퍼지지 못했다. 숨이 막혀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집 안 왼쪽 구석에서 우비 망토로 머리를 가린 작은 체구의 인물이 신효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우비를 입은  그 존재는 한 발씩 걸음을 옮겼다. 공포가 밀려왔다.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길한 무엇인가가 그 사람에 덮여 씌운 듯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불길하고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있는것 같은 정체 모를 기괴한 느낌의 혼령? 사신의 걸음을 연상시켰다. 그녀의 귓속에 검은 비옷을 입은 존재가 중얼거렸다.


‘너는 이제 곧 죽어’  

그 존재는 망토를 벗고 신효선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흐릿한 불빛에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효선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은 사색이 됐다. 갑작스레 목이 메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숨이 막혀왔다.


― 알아보시겠어요?


존재가 얼굴을 드러냈다. 신효선의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 그는 휴대폰 불빛을 비춰 시야를 밝혔다. 살짝 웃음을 띤 얼굴이었다. 푸른색 휴대폰 불빛에 비친 얼굴은 한층 기괴해 보였다. 잠시 후 신효선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마비가 오고 있었다. 상반신이 흔들렸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져 테이블 위로 중력의 몇 배나 되는 무게처럼 떨어졌다.


 ‘퍼석’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빗소리에 묻혀 울림은 크지 않았다. 의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호흡이 가팔라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집어 먹은 마른안주에는 시안화칼륨 즉, 청산가리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맥주잔을 앞에 두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내려 했지만 쉰 목소리처럼 컥컥 거리는 소리만 간간히 빗소리를 뚫었다.  움직임은 곧 멈췄다. 낡은 현관 어닝이 수분을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물방울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현관 포치도 습기가 점령했다. 침입자는 한동안 숨을 멈춘 대상을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의를 입은 존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봉지를 씌워 족적이 드러나지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주방까지 샅샅이 뒤져 물건을 찾아 가방에 담았다.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았다. 안방의 탁자 서랍에서 사진도 챙겼다. 신효선의 휴대폰도 챙겼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존재는 망토를 올려 쓰고 대문 밖을 조심스레 살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추적추적하는 빗소리만이 공기중으로 울려 퍼졌다. 간간히 멀리서 차량소리가 도플러 효과를 내며 멀어지고 있었다. 침입자는 조용히 대문을 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cctv는 없다. 그가 떠난 잠시 후 빗방울을 더욱 굵어졌다. 당분간 이곳을 찾을 사람은 없다.  사체가 발견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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