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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Dec 14. 2024

[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8-

대표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고요.

*

― 강승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파악해봤어?


현민은 반석동쪽으로 운전을 하며 블루투스로 최민희와 통화중이었다. 최영은은 모임에 있다가 화를 내고 나간 게 강승민이라고 했다. 일단 최영은에게서 받은 번호로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결번이었다. 오래전 번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렌트한 차량은 블루투스 상태가 좋지 않은지 연결이 잘 되지 않아 툭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 아 대표님. 최영은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민소희와 안승민 이렇게 일단 보고 있어요. 우선 < 앤젤 메카닉 연구소>에 강승민이라는 사람은 없다는 데요. 그 회사 이름이 맞기는 맞아요? 혹시 다른 벤처 기업 아닐까요. 개명했을 수도 있죠. 최영은의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요. 비슷한 업체 몇 군데 섭외해 봤는데 찾기는 쉽지 않네요. 개인정보보안 때문에 쉽게 타인의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요.

― 비슷한 이름과 업체 검색해서 더 찾아봐. 나이는 대충 그 나이대일 테니. 방송국이라고 해. 내이름 대고 그럼 조금 의심이 덜 할거야. 연구 분야는 무엇인지. 정보가 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 놓으면 돼. 수사의 기본이야. 다른 사람은 어때?

― 모르는 번호라 안 받는지 다 연락이 안돼요. 아휴. 대표님 이제 경찰 아니잖아요. 무슨 연구 분야까지 찾아요. 최민희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 빨리 올라오셔야죠? 의뢰 몇 건 상담 대기중이에요. 이번 주 스케줄도 많고. 10년도 넘은 사건이고 기억은 이미 다 묻혔어요.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 최 실장, 이런 일은 중요해. 피해자나 의뢰인은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려. 힘내. 나도 오늘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몇 개 더 확인하고 가봐야지. 그러나 저러나 최영은이 살해됐어.  그 일 때문에 난리인 모양이야. 나도 충격이고. 며칠 전에 같이 얘기했는데.


― 네? 그건 또 뭔 일이에요? 정말이에요? 대체 왜? 미쳤네. 최영은이 살해됐다는 말에 최민희는 적잖이 놀라는 듯 했다.

― 나도 잘 모르겠어. 한정혜 사건 조사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길 바라야지. 그럼 더 복잡해 질 일인데.

― 설마? 대표님이 조사를 시작해서 살해를 당했다? 아니겠죠. 그냥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튼 일단 메카닉스 어쩌구 하는 회사하고 강승민은 조사해 볼게요. 민소희는 뭐래요다른 아이들 연락처 없대요?

― 사람들과 연락을 잘 안하는 모양이야. 없다는데.

― 경찰 인맥 좀 활용해 보세요.

― 그건 쉽지 않아. 어쨌든 빨리 진행해.

현민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했지만 최민희는 스케쥴과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현민은 말을 더 듣고 있으면 시냅스가 터질 것 같다고 하며 종료버튼을 눌렀다. 일단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차가 막히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시내를 관통하는 것이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 구 도심쪽 외각 도로로 개천을 따라 반석동일대로 들어갔다. 형주 시내를 관통해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역은 폐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이 오래전 시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구도심의 흥망성쇠가 보이는 듯 했다. 오래전에 이곳이 시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 외각으로 4km정도를 달리면 산업단지와 수산물 가공공장이 있었다. 공단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한 사건들이 빈번했다.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곳에서 마약사건과 폭행 살인사건도 발생했다. 재건축 조합 건물과 지역 개발에 대한 플래카드가 이곳에도 붙어 있었다. 빛이 바래 오래된 느낌이다.  족히 일년은 돼 보이는데 왜 아직도 철거를 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었다. 공터에 차를 대고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역의 모든 것이 노후화돼 있었다. 떨어져나간 보도 블럭과 경계석이 도로변곳곳에 나뒹굴었다. 오래전 집창촌으로 보이는 유리건물은 방치된 채 낡아 녹이 쓸어 있었고 색이 바랜 천막으로 덥혀 있었다. 간판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거대한 생물체의 살점을 떼어 놓은 듯 보였다. 길가에 세워진 담벽은 시커먼 먹물을 뿌린 것처럼 세월을 토해 냈다.


 도로변 근처에는 여인숙과 여관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자 폐철길 옆으로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것 같은 철제 패널이 세워져 있었고 폐건축자제가 길가에 있었다. 사람들이 철길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놓은 모양이었다. 철거가 이뤄져야 할 것 같은 방치된 한옥의 무너진 담장에는 담쟁이 덩굴이 갈색빛으로 변해 말라 붙어 건조한 느낌을 더했다영업이 이뤄지는 것 같지 않은 공업사와 석재사가 눈에들어왔다. 석재사 앞의 돌무더기는 무정형 형태로 쪼개져 바닥에 장마철 내린 비가 마당을 흥건히 적셔 놓은 것처럼 널 부러져 있었다. 석재상 앞에 구겨진 철문에는 마치 피가 흘러내린 것 같은 붉은 녹이 보였다. 500미터쯤 걷자 사건현장인 3층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폴리스 라인이 있었다. 철길의 방향이 바뀌는 곳으로 넓은 공터와 낙엽이 진 거대한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잎이 다 떨어져 누런 잎들이 바닥에서 바람에 날려 무정형의 춤을 추었다. 찬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포 영화 같네. 밤에 보면 볼만하겠는데. 현민은 중얼거렸다.

 공터 근처 빌라는 새로 단장을 했는지 외간은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전세 및 월세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건물 입구 위에 걸려 있었다. 낡은 푸른색 천막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흔적이 눈에 띄었다. 현민은 진출입로와 출구를 확인했다. 빌라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새로 단장을 하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단기 임대자를 위한 원룸 같은 구조였다. 최영은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이런 곳에 집을 얻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거주 공간이었다. 그녀는 이 빌라를 매매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장소에 거주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현민은 최영은의 화려한 외모를 떠올렸다. 최민희가 보내준 그녀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도 그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호텔수영장과 화려한 건물의 장소와 명품이 그를 대변하고 있었다. 사치품들은 한편으로 그녀의 외모와 잘 어울려 보였다. 현민은 근처를 돌아보았다. 낡은 상가 대부분은 문이 잠겨 있었다. 부동산에서 인기척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어떻게 오셨나? 방이나 집을 보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 하하. 사장님은 한번 쓱 보면 아나 봅니다. 현민은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군데군데 흰머리가 눈에 띄는 50대의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올려다 보았다. 체크무늬 셔츠와 검은색 모직바지를 입고 있었고 아랫배가 불룩했다. 막 식사를 마쳤는지 노란 양은냄비에 김칫국물이 절반정도 비워져 있었다. 낮은 유리테이블에 국물이 몇 방을 떨어져 우유방울이 만든 왕관과 비슷한 모양을 띄었다.

― 부동산은 눈치싸움 아니겠소? 형사나 뭐 뒷조사 하러 다니는 사람 냄새가 나.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 전 있었던 사건 때문에 뭣 좀 여쭤보려고요. 현민은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 거봐. 그럴 것 같더라니. 경찰이시오? 기자하고 경찰하고 몇 번 물어보고 갔는데 다른 데서  왔나?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시끄러운 판에 쓸 데 없는 일들은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구만.

― NBS에서 취재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 상대가 필요했는지 사장은 현민에게 자리를 권했다.

― 난리도 아니었어. 저쪽 산업단지 쪽에서 일하는 외노자들이 여기 좀 사는 편이지. 방값이 싸니까. 수산물 가공공장 있잖아. 칼부림이 몇 번 있었는데 이번에 젊은 여자가 죽은 거야. 그때 굿을 하고 있었는데.


― 굿이요?

― 여기 앞에 다세대 있잔 수. 서울 사는 양반이 투자목적으로 다세대 몇 채를 통째로 사들였어. 3층 다섯 개인가 그렇지. 무당을 섭외해 굿을 했다지. 그날 사고가 터진 거고. 한창 굿을 하는데 여덜 시쯤 됐을 거야. 흥이 오르는 중인데 싸이렌 소리가 나더라고. 여자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거야. 택배기사가 발견했고 물품이 젖어 있어서 확인하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현관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고 하더라고. 난리도 아니었지.

― 끔찍한 일이었군요. 현민은 대충 어떤 사건이었는지 짐작해 보았다.

― 폐 역사에 ktx 들어오는 건 확정적인 것인가요? 그럼 일대 재개발은 수월할 것이고. 플래카드가 많이 붙어 있는데. 2차 혁신도시도 얘기는 많은 듯 보이는데

― 사람이 왜 이렇게 둔해? 확정되고 나면 누가 매물을 내 놓나? 1차는 들어왔고 곧이어 확장 될 거다는 소문에 파는 사람은 가격을 올려칠 거고 사는 사람은 여유가 있으니까 사서 기다리는 거지. 확정 소식이 되면 이미 끝난 일인기라. 내년 선거에 국민의 당 쪽 시장이 당선되면 개발이 좀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 황의원이 좀 앞선다는 얘기가 있어요. 황의원 한테는 기회일거야. 죽다가 살아났으니 새로운 인생 살아야지 이제 또 기회가 오려나? 뭐 사실 모르겠어. 이렇게 여기서 사건이 많이 나면 그 사람한테는 유리하려나. 땅값도 떨어지니까.


― 여기 지역구가 황호민 의원이죠? 죽다가 살다니요? 낙선 했다고 죽기야 하나요? 직업정치인이 선거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  그 사람 건강이 안 좋다고 소문났어요. 장기이식 아니면 방법이 없다 뭐 그런 얘기가 있다는 것 같던데. 다시 살아나더라고. 돈이 많아 좋은 것만 먹어서 그런지. 여긴 엎치락뒤치락 하는 곳이라 황의원이 좀 더 애쓴다는 분위기는 있는데 아직은 몰라, 그는 인심을 쓴다는 듯 선거를 앞두고 판세를 설명했다


― 이거 뭐. 가뜩이나 동네 분위기도 뒤숭숭한데다 재개발 조합장하고 몇몇 사람들 지금 좀 어수선 할 테고. 젊은 여자 죽어서 안 좋게 소문이 나면 재개발 연기된다 뭐다 시끄러울수 있어. 그것 때문에 오전에는 몇몇 팀이 와서 들쑤시고 가더구만. 부동산 상가 주인은 반말과 존대를 섞으며 현민이 궁금할법한 것을 알려주었다. 하루종일 말할 사람이 없어 누군가라도 잡고 얘기를 하고 싶은 심정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영은 살해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좌우로 돌렸다. 불룩 튀어나온 배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집값하고 재개발 때문에 신경 쓰인다는 말이 좀 거슬렸다. 누군가에게 사람의 목숨은 자산의 가치와 비교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말인가. 사이버도박판 범죄자들과 뭐가 다른가.


― 살해된 젊은 여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으세요? 그 여자가 누군지.

― 나도 궁금해서 누군지 확인을 해봤는데 그 207호였나? 그 집 내가 소개시켜줬거든. 근데 그곳 말고 여기 집이 몇 채 있을 거야. 차명으로 매매했을 수도 있어. 소문나지 않게. 몇몇은 그렇게 지분을 좀 늘려놨지.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지. 딱 봐도 이런데 살 것 같지 않은 외모야. 그럼 뭐겠어? 사는 곳은 따로 있는데 투자차원에서 집을 산거지. 안 그렇 수? 1억 조금 넘게 매매계약을 했으니까. 두 채였지. 여기가 18평이니. 프리미엄이 좀 붙어 있고. ktx가 들어올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건축 조합은 설립됐고 앞으로 절차만 몇 단계 남겨두고 있으니. 아파트하고 상가 들어오면 그래도 쏠쏠 할 거란 말야.  


―그렇군요. 현민은 큰 관심은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최영은이 서울생활을 접고 내려왔다고 했고 주변으로부터 이곳의 개발계획을 들었을 수 있다. 그녀역시 건설회사에 다니기에 정보가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지분을 둘러싸고 누군가 그녀가 죽으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의 범행이거나 강도와 치정에 의한 사건일 수 있다. 그녀에게 숨겨진 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민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신효선에게 연락해 필요한 정보를 더 알아보려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문자를 다시 남겨 놓고 차로 향했다. 입구로 나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 최민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 최실장 신효선한테 연락해봤어? 통화가 안 돼.

― 네,  저도 확인해봤는데 전화가 계속 꺼져 있어요. 문자 남겨 뒀구요.

― 최영은이 살해된 곳에서 와서 정보를 좀 확인해봤는데. 최영은의 죽음과 내가 한정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뭔가 엮여 있을까?

― 대표님, 최영은 사건 탐문은 굳이 왜요? 아오, 참 일도 많은 분이 혼자 사건을 확대 하시는 거 아녀요? 최영은이 살해된 것은 안타깝기는 한데. 최영은한테 대표님이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그녀를 죽게 만든 것일 수도 있어요. 한정혜 사건과 별개로. 그건 경찰의 일이죠. 굳이 뭘 찾으려고 하세요. 관련 없는 것을 억지로 꿰맞추는 것 아닌가?

― 그렇지. 최영은의 죽음이 한정혜 사건과 연결되는지 혹시 의외의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서 그것 때문에 확인 차 알아 본거야. 민소희가 그때 정혜는 여기 와서는 안 될 아이라고 했고 마지막에 통화한 게 최영은이잖아.

― 아우. 참 대표님 너무 나간다니까. 한정혜 죽은 건 이미 10년도 넘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들이 그 나이에 채무관계로 엮여 있을 것도 아니고. 그 애 엄마가 아직 미련이 남아서 조사를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런 건데. 사람은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고요. 의뢰를 받았으니 조사는 해야겠지만. 참 프로그램 회의는 참석하셨어요? 혹시 안 가신 것은 아니죠?

― 아. 했으니 걱정 마. 오늘 금요일이니까. 최실장도 업무 정리 끝나면 퇴근해. 남자도 좀 사귀고.

― 대표님... 괜찬은 놈을 좀 소개시켜주시고 그런 말 하시고.....

― 어?.. 전화가 잘 안 들린다. 그럼 나도 이만 올라갈게..

― 대표님, 대표님? 항상 이런다니까. 쯧쯧. 최민희는 혀를 찼다.


 ktx 기차 시간을 확인 한 뒤 부동산 몇 군데를 들러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비슷한 얘기였다. 최영은 부지런히 정보를 파악해 투자를 한 모양이었다. 다른 원한이 있었는지도 모를일이다. 한정혜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처럼 보였다. 민소희와 모임에 있었던 다른 친구들을 만나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민소희를 만난 후 다른 이들을 통해 진술을 교차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현민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맞췄다. 시간을 잘 맞추면 9시 에는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했다. 민소희에게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주말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저녁때가 되자 날이 스산해 졌다. 차를 몰아 천천히 시내 중심부로 나왔다. ktx좌석에 앉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한잠 자고 일어나자 ktx는 광명쯤 도착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집안을 정리했다. 씻고 나와 소파에 누웠다.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았지만 캔 맥주만 몇 개 놓여 있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의뢰를 요청한 사람은 연락이 안 되고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은 정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 사람은 살해됐다. 조합원들의 동의를 통해 재개발이 이뤄지고 지분은 가족의 유산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그런 일을 벌인다?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낮다. 그녀는 오랫동안 할머니와 살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다. 그렇다면 치정이나 우발적인 강도가 더 가능성이 있다. 현민은 집 안 조명의 조도를 낮췄다. 보일러를 틀어 놓자 따듯한 기운이 거실을 채웠다.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한정혜 수사 보고서를 들췄다. 수사기관의 보고서는 너무도 간단했다. 타살혐의점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인과의 통화나 관계, 탐문 등을 했지만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최영은의 말과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한정혜는 감성적이고 감정기복이 있는 편이다.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다고 한다. 모임 이후 갑작스레 먼저 간다고 얘기 한 뒤 자리를 뛰쳐 나갔다는 것이다. 다음날 그녀는 형주로 돌아가 비가 오는 가운데  무녀도 쪽으로 이동한 cctv 행적이 확인 됐고 저녁때 까지 시내에서 무속행사를 보고 여러 시내를 돌아다닌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11시 무렵 형주고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후 학교에서 투신한 채 발견된 것이다. 대체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뜬금없이 학교에는 또 왜 간 것인가. 경찰 조사결과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없다.


 위스키 생각이 간절했다. 요즘 부쩍 술을 마시는 빈도가 많아 졌다. 피곤한 상태라 내일 일정을 생각해 캔 맥주를 냉장고에서 집어 들고 베란다로 나왔다. 소파에 있던 트레이닝 상의를 걸치고 발코니 문을 열었다. 염창동 뒤편의 성모산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성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공기는 차가왔지만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새벽 산 중턱에 불빛이 점멸했다. 안개는 산 정상에 끼었는지 어슴프레 보였다. 가까이서 그 형체를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남은 맥주를 마시고 베란다 문을 닫았다. 며칠간의 여러 일정을 소화해서인지 자리에 눕자마자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현민은 잠에서 깨어났다. 커피를 내리고 빈속에 해장 겸 드립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정리하고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이어폰을 끼고 저지를 갖춰 입었다. 성모산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4km정도를 왕복으로 산을 오르고 난 뒤 돌아와 근력운동을 하는 것이 현민의 운동코스였다.


 늦가을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상쾌하고 느껴졌다. 절반정도 산을 올랐을 때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사건25> 막내 작가였다. 토요일에 연락을 한 것을 보니 급 한 모양이었다. 스케줄 문제 때문에 전화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달에 진행될 콘텐츠 하나가 펑크가 났다는 것이다. 급하게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내용을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지금 취재하고 조사하는 사건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몰라 확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막내작가 수현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수현은 네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아니라고 했고 어쨌든 자신도 아이템을 찾아보겠다고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민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말이지만 시간이 되는지 묻자 그녀는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데 미안하다며 서교동에 자신이 잘 가는 단골집이 있다며 그곳에서 저녁에 보자는 답변을 남겼다. 약속을 잡고 현민은 빠르게 운동을 끝낸 후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외출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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