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우방풍 라구소스

한우, 방풍나물, 시간

<파프리카, 양파, 당근, 호박, 마늘>

라구 소스를 끓이기로 했다.  금요일에 오는 손님들 상에 나갈 리조또용으로도 쓸 예정이고, 만들어두면 여러가지 쓸모가 있다.


우선 양파, 당근, 호박, 마늘, 파프리카들을 잘게 썬다. 도깨비방망이로 하면 너무 작게 나오는데 이러면 오래 끓이는 라구의 특성상 거의 식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 텍스쳐를 주기 위해서 다이소에서 파는 수동 채칼로 절단. 30번 잡아당기면 맞춤한 크기다.


<라벨라 산마르자노>


이걸 어디서 샀더라. 아마도 강릉시내 식자재마트였을 것이다. 못 보던 거라 집어들었다. 가격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 San Marzano는 원산지표기제도인 D.O.C. 토마토의 고향.


산마르자노 토마토는 씨가 적고 과육이 치밀하고 당도가 높으며 손가락모양으로 길쭉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국산 토마토는 가격도 가격이고 물기 많고 살은 단단한 채소형 품종들이다. 소스를 만들자면 못 만들 것은 없어도 국산이라는 점을 빼면 사실 쓸 동기가 많지 않은 게 사실. 소스용의 특성에 잘 안 맞는데 가격은 또 몇 배나 비싸다. 대저토마토 같은 것은 좀 재미있는 소스가 나오는데, 이건 가격이 넘사벽 수준이다. 


통조림에서도 소스제품이 아니라 홀토마토, 혹은 필드 토마토라고 라벨이 붙은 제품을 산다. 다른 것 없이 토마토와 토마토 과즙만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 거기에 요리사가 자기 색을 입히면 된다.


통조림으로는 미국산 헌트는 일단 거른다. 미국 농업에 대해서는 신뢰가 전혀 없기도 하고, 가격도 별 이유 없이 비싸다. 품질은 그만그만인데. 이 직전엔 롱고바르디를 썼는데 산미가 짜릿한 것이 특징. 많이 쓰는 제품들 중엔 디벨라가 무난한 스타일이다. 여기 라벨라 제품은 확실히 명성대로 단 맛이 조금 더 있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몇 년 사이에 토마토 제품도 여러가지가 들어오고 있으니 이것저것 써볼 예정이다.

<갯방풍>

이 갯방풍이 강릉 특산. 향이 강렬한데 식감도 거칠해서 사실 쉬운 풀이 아니다. 나물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단 허브 개념으로 사용하면 좋다. 마침 이 라구소스에는 거의 천생연분 수준. 사실 넣어서 오래 끓이면 그 향은 분별하기 힘들게 녹아들지만 요리 마무리에 오레가노나 파슬리 생으로 올리듯이 갯방풍을 좀 썰어 올리면 그 향이 아주 잘 어울린다.


뒤로 멀찍이 한우 다짐육이 보인다. 역시 토마토와는 쇠고기. 돼지고기를 써도 맛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After 12 hours of simmering>

우선은 올리브오일에 재료를 좀 볶고 그 후에 토마토를 넣고 끓인다. 중불로 놓고 끓이다가 용암같이 폴폴 기포가 올라오면 불을 더 줄이고 약불로 놔둔다. 눌어붙지 않게 저어주는 것은 물론 필수지만 10분 정도는 다른 데 갔다와도 눌어붙지 않을 정도의 불 온도가 중요하다.


라구의 핵심은 어찌보면 재료 이상으로 얼마나 오래 끓이는가다. 오래오래 끓일수록 좋다고 할 정도. 최소 하룻밤 정도 시간은 들어가야 한다.  재료 무게를 다 합치면 4킬로 정도가 들어갔지만 막상 결과물은 3킬로가 채 안 된다. 오래 끓이면서 수분이 많이 날아가고 농축이 되는 것. 한 시간만에 만드는 라구소스 같은 것은 한 시간에 끓이는 꼬리곰탕 같은 느낌이다. 꼴은 비슷하지만 절대 그 맛은 안 난다.

 

그리고 하루 정도 상온에서 시간을 보내봐야 진짜 맛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숙성 과정. 이러고 나면은 되도록 빨리 먹는 것이 좋지만 냉장보관하면 열흘 정도는 전혀 문제 없이 보관 가능하고 냉동도 못 할 것은 없다.


이번 라구는 역대급으로 맛있게 나왔다. 특히 채소의 텍스쳐를 살린 것이 잘한 결정이고 끓이기는 밤새 가게에 있을 수 없으니 낮에 몇 시간, 다음날 또 몇 시간 이런 식으로 3일이 걸렸다. 이 방법이 좋았던 것같다.


<파스타 샐러드>


득의양양해서 여기저기 써먹어보고 있다. 이건 파스타 샐러드. 밑에 채소를 깔고 링귀니면을 삶아 올린 후에 라구 소스를 얹고 페타치즈로 마무리.

사실 미트소스에는 개인적으로 펜네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날따라 펜네가 없어서...


<파스타 + 샐러드>


이건 본격 파스타에 샐러드. 파스타샐러드와의 차이는 이건 면을 소스에 재대로 볶은 것에 샐러드를 곁들였다는 것. 파스타라는 기분이면 이게 더 맛있다. 샐러드 느낌이면 전작이 나을 것이고. 별 것 아닌 차이지만 내돈내산내해내먹이면 이런 작은 차이도 스스로 만족시킬 수 있어 좋다.


<리조또>


라구소스 활용해서 리조또도 만들어 봤다. 여기에 이르러 만족했다. 천지창조를 마치고 하나님이 만족했다던데, 이런 기분이었던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강릉소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